[아트&기업] PART 1. 전시장 불이 꺼지면 비로소 빛나는 전동민 작가의 이야기

신한은행,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와 장애예술 작가 기획전

김금영 기자 2019.09.05 10:29:29

신한은행과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의 협업으로 마련된 전동민 작가의 전시 ‘아워스토리(OURSTORY) 3’가 열리는 신한갤러리 광화문 전시장 입구.(사진=김금영 기자)

환한 전시장에서 마주한 그림은 알록달록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전시장 불을 끄자 그림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마치 바다의 적막한 어둠 속에서 길을 알려주는 등대처럼, 고요한 어둠이 깔린 전시장에서 빛을 발하며 그림을 보는 이를 자연스럽게 작품 앞으로 인도했다. 이 작품은 전동민 작가의 손길에서 탄생했다.

신한은행이 서울시 중구 광화문에 위치한 신한갤러리 광화문에서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전동민 입주작가의 기획전 ‘아워스토리(OURSTORY) 3’을 9월 21일까지 연다.

 

전시장이 환할 때의 전동민 작가의 작품(위)과 불을 껐을 때의 모습. 전동민, ‘광화문 야경’. 한지에 채색, 130 x 190cm. 2019.(사진=신한은행)

지난해 신한은행은 서울문화재단과 문화예술 프로그램 관련 사업을 확대하기로 하고, 광화문과 역삼 갤러리에서 각각 잠실창작스튜디오 전·현직 입주 작가의 개인전 및 그룹전을 진행한 바 있다. 이번 전시도 잠실창작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마련됐다.

청각 장애가 있는 작가는 세상의 소리를 선명하게 듣지는 못하지만, 눈에 아름다운 세상을 가득 담았다. 특히 그의 마음에 들어온 건 야경이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나는 걱정거리가 있을 때,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본다”고 고백한다.

 

불을 꺼놓은 신한갤러리 광화문 전시장은 전동민 작가의 야경 작품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사진=김금영 기자)

야경에는 어둠과 밝음이 공존한다. 작가에게 야경 속 어둠은 방황, 괴로움, 외로움의 시간 그리고 그 가운데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불빛과 색채들은 숨 막히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의 빛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건 마치 거대한 우주 속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를 한 눈에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고.

더 나아가 야경은 작가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와도 같이 느껴졌다. 그는 “내 눈에 비치는 야경은 인고의 시간이 끝난 뒤 시야에 들어오는 환희로 가득한 환상, 환영이나 마찬가지”라며 “빛과 어둠의 경계는 마치 삶의 희망과 생명의 역동성으로 가득 찬 도시와 생명을 찾아볼 수 없는 우주와의 대비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전시 서문 또한 야광 재료를 사용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도시의 야경을 통해 우리네 삶과 죽음 고찰

 

전동민 작가는 도시의 야경 속 어둠과 불빛에 주목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야기하는 작업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이전 작업에서 작가는 열상 카메라를 통해 드러난 열을 사물의 내면으로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일을 반복한 결과물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에는 열상카메라로 촬영한 정보를 토대로 감지된 모든 빛이 살아 있는 생명으로 표현됐다. 특히 평소 작가가 사용하던 야광물감에 빛을 모으는 축광 도료를 더해, 도시가 품은 수많은 사람, 사물들의 색채가 생명력을 발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 아이디어는 장서윤 신한갤러리 광화문 큐레이터와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 탄생했다. 장서윤 큐레이터는 “단순 초대전이 아니라 작가와의 긴밀한 소통과 협의에 기반을 두고 전시를 꾸렸다”며 “작가와 야경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둠을 환하게 비추던 빛이 시간이 지나면 꺼지기도 하고, 수많은 빛 사이에서도 더 밝은 빛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평소 즐겨 사용하던 야광물감에 빛을 모으는 축광 도료를 더해 작업했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는 이어 “또한 암흑 속에서도 달이 빛나면 생명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선을 긋듯 명확하기보다는 모호한 경계 속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며 “이 과정에서 작가가 작업에 축광 도료를 더하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 작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야광 효과에 이용되는 블랙라이트를 같이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작가에게 제안했다. 작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현재의 불을 꺼두는 전시장이 꾸려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서윤 큐레이터는 “사람의 피부가 죽은 각질을 밀어냄과 동시에 새 세포를 재생시키고,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떨어뜨리듯, 모습을 유지하는 존재 안에서는 끊임없이 죽음이 일어나고,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또 다른 삶이 시작되기 마련”이라며 “살아가기 위해 삶에서 죽음으로,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작가는 야경 속에서 포착했다”고 짚었다.

 

전동민 작가는 열상카메라로 촬영한 정보를 토대로 감지된 모든 빛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보고 자신만의 회화로 작품을 표현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8월 19~20일 초등학교 1~6학년 25명 내외를 대상으로 전동민 작가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야경 그리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장서윤 큐레이터는 “체험 프로그램 소식에 150명이 몰릴 정도로 많은 문의가 이어졌다. 전시장에 불이 꺼진 가운데 반짝반짝한 야경을 담은 작품이 관람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전시 주제 또한 일상과 밀접한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측은 “지난해에 이어 훌륭한 작가의 멋진 전시를 선보여 기쁘다. 10월에 진행될 신한갤러리 역삼에서의 기획전도 기대가 크다”며 “신한은행은 앞으로도 메세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따뜻한 금융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어두운 전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전동민 작가의 작품은 바다의 심연 속 길을 밝히는 등대처럼 관람객을 작품 앞으로 인도한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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