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소송전’ LG화학-SK이노베이션, 양사 CEO 회동에도 진전 없나?

경찰, 신학철-김준 대화 이후 SK이노베이션 두 차례 압수수색

윤지원 기자 2019.09.24 08:20:20

LG화학 신학철 부회장(왼쪽)과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 사장. (사진 = 각 사)

경찰이 20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이노베이션 본사와 충남 서산공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사이 ‘전기차 배터리 기술 유출 소송’과 관련해 17일 SK이노베이션 본사와 대전 대덕기술원 등에 한 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한 지 3일 만에 이루어진 추가 압수수색이다.

이번 두 차례의 압수수색은 LG화학이 지난 5월 초 서울지방경찰청에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SK이노베이션 형사 고소하고 수사를 의뢰한 데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며 SK이노베이션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렵게 CEO 대화의 장 마련됐지만

앞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16일 오전 양사 최고경영자(CEO)간 회동을 성사시키며 갈등이 대화로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을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중재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이 15일 일정을 조율한 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직접 만날 자리를 만든 것.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이 회동에 참석하지 않고 두 CEO만 독대했다. 업계에서는 민간기업 간 갈등에 정부가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바라봤다.

두 회사의 이번 갈등은 지난 4월 29일(현지 시각)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당시 LG화학은 소송 사실을 발표하면서 SK이노베이션이 2년에 걸쳐 100명 정도의 LG화학 전 임직원을 채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LG화학의 배터리 양산 기술 및 핵심 공정 기술 등을 제공할 것을 요구해 영업비밀이 대거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이 지난 6월 국내 법원에 LG화학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그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달 3일에는 미 ITC 및 연방법원에 LG화학과 LG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까지 추가로 제기했다.

처음 소송이 제기된 이후 4개월이 넘도록 양사는 서로와의 직접적인 대화의 창구는 마련하지 못한 채 소송과 보도를 통해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며 팽팽하게 맞서 왔다. 그런데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 두 회사의 수장들이 직접 만나 담판을 짓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날 대화의 열매는 맺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양사 관계자는 회동 후 두 CEO가 소송과 관련한 각사의 입장을 이야기했다면서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 날 경찰은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양사는 각각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여전히 뚜렷한 온도차만 재확인했다.
 

LG화학 오창공장 임직원들이 배터리셀을 제조하고 있다. (사진 = LG화학)


LG화학 “기술 빼간 증거 충분, 압수수색은 정당해”

LG화학은 첫 압수수색 소식이 알려진 17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압수수색은 경찰에서 경쟁사의 구체적이고 상당한 범죄 혐의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한 결과 충분한 증거를 확보함에 따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여러 정황을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당사의 2차전지 관련 국가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을 불법적으로 취득한 사건으로 보인다”며 “선도업체의 영업비밀을 활용해 공격적인 수주 활동을 벌이며 공정시장 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번 수사를 통해 경쟁사의 위법한 불공정행위가 명백히 밝혀져 업계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가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이 더욱 강화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LG화학은 이미 지난 2년간 SK이노베이션에 두 차례 내용증명 공문을 통해 ‘영업비밀, 기술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고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발견되거나 영업비밀 유출 위험이 있는 경우 법적 조치를 고려할 것’을 경고한 바 있으며, 올해 1월에는 대법원의 전직금지 가처분 판결을 받아내 승소했다.

하지만 LG화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이노베이션은 불법적인 채용 행태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며 지난 4월 미국 ITC 등에 ‘영업비밀침해’로 제소하고 5월 초 경찰에 형사고소한 배경을 밝혔다.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 연구원이 배터리셀을 들고 있다. (사진 =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여론전 자제하고 대화로 풀자”

한편, SK이노베이션 역시 17일 입장문을 통해 “여론전을 자제하고 대화로 푸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경력사원 채용 과정에서 LG화학의 인력을 채용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빼오기 채용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100여 명의 채용자 주장에 대해서도 “LG화학 출신 지원자 중 10%만 뽑았고 모두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일 LG화학이 입장문을 통해 “여론전을 그만두고 소송에만 성실히 임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실제로 본 사안이 발생한 이후 두 회사의 공식적인 발표를 비교하면 LG화학이 두 배”라며 여론전을 하는 쪽은 LG화학이라고 지적하고 “이제부터라도 이성적 대응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으로부터 피소를 당한 직후부터 “법적인 절차들을 통해 확실하게 소명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줄기차게 밝혀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밝히고 “그럼에도 배터리 산업의 성장을 보면 소송보다는 협력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소송 비용이 각 사의 사업 경쟁력 강화에 투입되는 것이 낫다면서, 양 사가 주력하는 파우치 방식 배터리 제품을 취급하는 기업이 두 회사를 포함 단 세 곳 뿐인 만큼 외국의 경쟁사가 이번 갈등의 어부지리를 얻어갈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룹 경영진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

이처럼 인력 및 기술 유출과 관련한 양사의 갈등이 장기화, 본격화 되고 있지만 해결은 요원해 보이는 상황이다.

민간 기업간의 사안임에도 정부가 중재에 나서고, 이에 CEO들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음에도 평행선의 간격은 좁혀질 기미가 없다.

양사가 각각 발표한 입장문도 연휴 이전과 달라진 입장은 찾기 어렵고 오히려 더 날카롭게 서로를 비판하고 있어 16일 CEO 회동에서도 깊이있는 대화 대신 신경전이 오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전이 LG와 SK의 그룹간 갈등으로 비화할 것을 우려하며, 구광모 LG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선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SK이노베이션에 대해 두 번의 압수수색을 진행한 경찰은 향후 압수 자료에 대한 분석이 끝나는 대로 SK이노베이션 관계자 및 LG화학에서 이직한 직원들 등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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