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33)] 미디어펑크: 믿음 소망 사랑

검은 죽음이 밝은 빛 비추는 영상이 믿음직?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19.10.14 09:24:30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움직이는 이미지가 쏟아지는 시대이다. 영상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끝없이 발전해왔고, 그것의 소비도 증가해왔다. 2019년 오늘, 우리는 누구나 영상을 만들고, 편집하고, 보여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원한다면 언제든 내 삶의 순간들을 남길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우리가 받는 영향도 커졌다. 많은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람의 삶을 영상을 통해 들여다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 간다. 내 앞에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내 앞에 존재하는 누군가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눈을 뜨면 인터넷에 접속한다. 거기에는 수많은 영상이 나를 기다린다. 영상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기도 하고 거짓을 밝혀내기도 한다. 내가 한 번도 가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대신 해주기도 한다. 넓고 넓은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영상의 조작, 사실이 아닌 영상이다. 그러나 사실과 거짓을 검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누군가는 현실이 아닌 영상의 세계에 함몰될지도 모른다. 세상을 보다 넓게 보게 해줬던 영상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단절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노재운, ‘보편영화 2019’(2019), 인터페이스,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촬영: 홍철기)

백남준 이후 많은 작가들이 비디오 아트(video art)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것이 순차적인 내러티브를 갖는 것이든, 내러티브를 해체하는 것이든 예술 작품으로서의 동영상은 일상의 동영상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실재하는 현실을 촬영해 보여주기도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창조할 때도 있다. 현재의 관객들은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경험케 하는 작품에도 익숙해졌다. 그 안에 담기는 이야기들도 다채롭다. 소소해 보이는 개인의 삶에서부터 인간의 실존에 대한 성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까지 아우른다. 이미지와 영상 그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도도 중요한 부분이다.

 

아르코아카이브 섹션(포트폴리오, 출판, 미디어아카이브프로젝트),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촬영: 홍철기) 

아르코미술관의 전시 ‘미디어펑크: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와 영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전시된 작품들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미지의 진실과 거짓, 내러티브의 형성과 해체, 영상 시대의 현재와 미래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낼 수 있을까? 진실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가 믿는 것은 보는 것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생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앞에 밝은 혹은 어두운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딜레마 생기는 지점에서의 작업 즐겨”
김미정 큐레이터, 함정식 작가와의 대화


Q. ‘기도 퍼포먼스 버전’(2015)을 보자마자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이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강렬한 작품이다. 경쾌하고 유머러스한데 묵직한 어두움도 담겨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설명해 주면 좋겠다. 기독교적 믿음을 다루는 것인가?

A. 함정식 작가: 모든 의미는 직접적이고 단순하다. 당시에 ‘하나님은 빛’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인상적이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그처럼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기독교적 상징들을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직설적으로 가져와 완전한 아이러니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빛은 신, 검은 옷을 입은 존재는 죽음, 악마이다. 악마가 절대 선인 신을 상징하는 빛을 들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을 어떤 꾸밈도 없이 보여주는 거다. 당시 내가 살았던 동네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고 여길만한 지역이었다. 주말이 되면 교회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을 보고 ‘어떻게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조악한 이미지들을 보고 믿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작업에 담겼다. 그래서 성스럽지도, 숭고하지도 않은 종교의 이미지를 담게 되었다. 현재는 냉담 중이지만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함정식, ‘기도(퍼포먼스 버전)’(2015), 단채널 비디오, HD, 3분 58초,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촬영: 홍철기)
함정식, ‘기도(퍼포먼스 버전)’(2015), 단채널 비디오, HD, 3분 58초,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촬영: 홍철기)

Q.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로서 함정식 작가의 많은 작품 중에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A. 김미정 큐레이터: 작가 조사 중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너무 이상하다’였다.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이 요란한 빛이 나오는 조명기구를 들고 어두운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배경음악은 유행가처럼 편곡된 찬송가인 데다 교회의 십자가와 점집의 간판이 교차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궁금증이 쏟아지는 작품이라 생각했고 어둠, 종교, 낡은 골목, 미신 등의 기호가 충돌되는 장면에 시선이 갔다. 이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반복되는 장면들을 본 관객들이 어떤 서사를 만들고 어떤 감각을 느낄지 그 반응이 궁금했다. 사실 현실에서도 이처럼 모순적으로 충돌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다만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Q. 종교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과거에 비해 종교가 인간의 내면에 끼치는 영향이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A. 함정식 작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설교를 들으면서 현재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도덕과 윤리를 말하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괴리감을 느끼는 거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통용되는 새로운 윤리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늘 의심하고 있다. 신적 존재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 호기심 역시 항상 갖고 있다. 그에 관한 생각도 많이 한다.

Q. 종교에 대한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 부담감이나 어려움은 없었는가? ‘원수를 경마장에 데려가라’(2018)나 ‘경마장 이야기’(2017) 등은 경마를 다루는데 이 역시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주제 같다.

A. 함정식 작가: 작업을 진행할 때는 없었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본 사람들이 양분된 반응을 보였다. 길을 걷다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듣게 되었는데 옛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당시 내적으로 예민한 시기여서인지 감정적으로는 좋지만 합리적으로는 의문이 생기는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딜레마가 생기는 지점에서 작업하길 즐긴다. 경마장 연작의 경우도 나의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경마 영상을 제작하는 업체에서 3년 정도 일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경마와 관련된 경험과 소스가 쌓였다. 경마라는 소재가 특별히 마음에 들거나 매력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소재보다는 형식 실험에 집중하는 편이다. 나는 익숙하지만 온전한 이야기가 생성되지 못한 영역들을 다룬다. 경마도 여기에 부합했다. 그렇다고 내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작업을 보는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Q. ‘기도 퍼포먼스 버전’을 비롯해 많은 작품에서 음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음악을 먼저 선정하는가?

A. 함정식 작가: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음악을 들으며 떠오르는 이미지에 근거해 작업을 진행한다.
 

김해민, ‘두 개의 그림자’(2017), 3채널 비디오 설치, 8분 35초,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촬영: 홍철기)

Q. 영상 작업은 대중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러닝 타임이 있으니 영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 봐야 온전히 감상하는 것인데 그냥 지나치는 관객도 꽤 많다.

A. 함정식 작가: 앞으로 더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영상의 시대가 되면서 러닝 타임이 있는 작품을 즐기는 관객도 늘어났다. 물론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작가는 영상 작업이 미술의 영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와 같은 고민을 항상 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특정한 시공간에서의 설치라는 차별성이 있다. 특별한 상황에 놓인 영상을 본다는 것은 남다른 경험이다.

Q.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을 것 같다.

A. 함정식 작가: 학생 때부터 둘을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제적인 독립이 이뤄져야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방식대로 작가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에 과몰입하는 것도 막아준다. 또한 여러 일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야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다.

Q. 전시 ‘미디어펑크: 믿음 소망 사랑’ 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A. 김미정 큐레이터: 오늘날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은 (편집된) 영상 이미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질문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영상들을 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과 버스에 탄 사람들만 보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다. 정보 검색도 텍스트가 아닌 영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영상이 송출하는 정보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앞에 놓인 편집된 이미지들을 그저 감상하고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자 했다.

Q.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부제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A. 김미정 큐레이터: 앞서 언급했던 편집된 영상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태도나 활용되는 모습을 보고 이 단어들을 금방 떠올렸다. 이미지 하나에 열광적인 반응과 찬사, 혹은 정반대의 비난과 논란이 끝없이 반복되고 하루아침에 진실이 거짓이 되어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도 한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회를 이롭게 하는 선으로 통용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이미지에 둘러싸인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단어로 작동한다.

Q. 과거에도 정보가 조작될 수 있었겠으나 오늘날 그 문제가 더 심화된 것 같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남아야 현실이 되는 시대인데 정보의 진실성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다.

A. 김미정 큐레이터: 과거에서부터 매스미디어를 통해 생산되는 이미지의 진실성에 대한 논의는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개별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영상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기에 조작도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미지로 인해 진실과 거짓이 융합되어버리는 상황은 흥미로우며 많은 예술가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 앞에 엄청난 양의 이미지들이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쏟아질 것이고 수용자의 태도도 그에 따라 변해야 한다. 즉 과거와는 다른 보기와 읽기의 판단이 필요함을 인지해야 한다. 본 전시는 이러한 논점을 함께 공유하고 논의해보고자 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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