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 경쟁력이 KT 경쟁력 … 4차산업혁명은 4차동반성장 필요”

KT 윤경모 SCM전략담당 인터뷰 "갑을관계 없다”

이동근 기자 2019.10.21 08:49:31

10여 년 전만 해도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철저한 ‘갑’과 ‘을’의 관계였다. 대기업이 구매를 해 주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운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불리한 계약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심한 경우에는 기술탈취까지 당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이같은 역학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동반성장정책을 적극 진행하고 있는 KT다. CNB저널이 KT 경영기획부문 SCM전략실 윤경모 SCM전략담당(상무)과 만나 KT의 동반성장정책에 대해 들어보았다.

 

협력사 해외 매출 7배 성장, KT가 지원한 이유는?

KT는 최근 23개 협력사는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아시아와 유럽, 중동의 주요 글로벌 전시회 4곳에서 유명 해외 통신사와 수출·MOU 등 13건의 계약을 체결해 총 520억 원의 해외 매출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8년 기록했던 협력사 해외 매출 70억 원을 7배 이상 뛰어넘은 것이다.

이같은 실적은 단순한 숫자로 바라보기보다 KT가 앞장서서 협력사들의 실적을 올려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타사들도 협력사들과 함께 한 실적을 발표하긴 하지만, KT 처럼 아예 협력사가 단독 실적을 올릴 수 있도록 돕는 경우는 드물다.

윤경모 상무는 최근 CNB저널과 인터뷰에서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협력사의 경쟁력이 KT의 경쟁력”이라며 “남들이 10을 한다면 15를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KT 경영기획부문 SCM전략실 윤경모 SCM전략담당은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협력사들의 재정 건전성이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며 “10년 전부터는 아예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협력사들과 손을 잡고 일정 물량을 보전해 주는 형태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촬영 = KT 홍보팀


윤경모 상무는 ‘동반성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중소기업(협력사)들의 재정 건전성이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며 “최대한 장기적으로 건전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상무에 따르면 예전에는 KT가 5개 정도 협력사가 있다면 매년 경쟁을 붙여 3개씩 선정했다. 2개사는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으로 운영을 하니 결국 가격 경쟁 형태가 돼 협력사의 경영상태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납품 품질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이에 10년 전부터는 아예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협력사들과 손을 잡고 일정 물량을 보전해 주는 형태로 운영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운영은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도 협력사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윤 상무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협력사가 제품을 개발, 공급할 때 몇 년 주기로 신형 제품이 구형 제품이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 과정이 끝나기 전에 협력사는 차세대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이 때 KT는 차세대 모델에 대한 아이디어를 검증해 펀드 형태로 개발비를 지원한 뒤 개발에 성공하면 1년 정도 물량을 보전해 준다. 이같은 시스템이 운영되면 협력사는 구형 제품에서 차세대 제품 생산에 이르는 교체 과정을 경영상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다.

최근 발표한 해외 수주 실적 발표도 협력사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면에서 진행됐다.

윤 상무는 “협력사들의 고충을 들어 보면, 한 장비가 도입기(막 개발돼 신형 제품일 때)에서 쇠퇴기(구형 제품이 됐을 때)로 갈 때 쇠퇴기가 너무 길다고 한다. 그러나 보니 차세대 장비로 넘어갈 때 도산하는 협력사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ICT(정보통신기술) 측면에서 ‘퍼스트 무버’(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기업)다. 그러다 보니 협력사들의 기술력은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5G 등이 도입기에 들어가는 나라에서는 경쟁력이 있다. 우리가 세계 최초 5G를 했는데 인프라에 들어가는 여러가지 장비나 모듈이나 소자들이 결국 지금 시작하는 나라 입장에서는 관심이 많다. 거기에 KT 브랜드를 가지고 협력사들과 같이 진출하면 바이어들의 신뢰를 얻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운영을 위해서는 KT 측에서 협력사의 상황을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는 부연했다. 예를 들어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방문 면담을 통해 KT에 공급하지 않는 장비에 대한 것까지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신뢰 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한번 협력사가 되면 10년 이상 같이 가는 경우가 많고, KT 관련 매출이 50% 넘는 곳도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뢰관계가 형성된다고 한다.

 

인터뷰가 이뤄진 KT 광화문 웨스트 건물(구사옥). 사진 = 이동근 기자


“경쟁 아닌 관리, KT에 오히려 도움 된다”

이같은 운영은 협력사들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시스템이지만, 가격 경쟁을 통해 저렴한 제품을 납품 받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일반적인 사기업에서는 취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윤 상무는 오히려 이같은 정책이 KT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납품 장비의 품질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제거하고 안정적으로 장비 등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협력사의 건전한 경쟁력이 KT의 경쟁력이다. 부실한 협력사들이 많으면 결국은 품질 비용,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결국 고객들이 고충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비용은 다 KT가 부담해야 한다. 협력사를 케어 안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당연히 ‘갑을관계’ 같은 것은 형성되기 어렵다고 그는 지적했다. 협력사들이 KT에 많은 도움을 주다 보니 타사에 넘어가는 것이 두렵고, 오히려 자신들이 ‘슈퍼 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갑을관계가 아니라는) 마음가짐도 중요하고, 직원들에게도 주지시키는 편이다. (직원들의) 말투가 오해를 사더라도 협력사들의 이야기가 저에게 들어오면 피드백 해왔다. 문화적으로 갑을관계는 없다”고 단언했다.

4차산업혁명을 필두로 고도화되는 산업화 과정도 협력사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윤 상무는 설명했다.

예전에 KT는 전화, 인터넷, 미디어의 분야를 다뤘다면 이제는 실감형 미디어, 커넥티드 카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고, KT가 그 모든 분야를 커버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 분야에 관련된 수 천 개의 벤처, 스타트업 기업들을 우군으로 만들려면 동반성장 프로그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협력사를 대상으로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협력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비슷한 분야의 협력사들끼리는 소통이 잘 되지만 다른 분야의 협력사들과는 소통이 잘 안 되는 편인데, 다양한 분야의 협력사들끼리 교류할 수 있도록 엮어주었을 때 시너지가 나고, 그것이 KT의 사업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윤 상무의 설명이다.

특히 KT가 매년 말 여는 ‘파트너스 데이’는 이같은 교류의 장이 된다. 처음에는 인프라 분야와 공사하는 업체들을 붇돋아 주는 행사였는데, 지금은 물자공사, 소프트웨어 신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KT 그룹사의 협력사들까지 다 어우러지는 장이 되고 있다. 행사에서 협력사들은 그동안 KT에 노출하지 않은 것, 그리고 성과를 얻은 다양한 것들을 전시하고, KT 모든 임원들은 이를 관람한다. 이는 다음 해에 협력사에게 기회로 돌아간다.

 

윤 상무는 4차산업혁명을 필두로 고도화되는 산업화 과정이 협력사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사진 = KT 홍보팀



협력사 아이디어 보호부터 폐기 후 관리까지 ‘Tech Care’

이같은 협력 과정에서 도출될 수 있는 ‘아이디어 탈취’에 대해서도 KT는 고민, 지난 6월 결과물을 내놓았다. ‘Tech Care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협력사가 KT에 제안한 기술과 아이디어 등 중요 사업 정보를 보호하고 현재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기술 거래 입증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그간 담당자별로 따로 관리했던 아이디어 제안과 기술 자료 제출 창구를 일원화하고, 열람 권한 부여, 보관, 폐기 등 관리 전 과정을 완전 자동화한 것이다.

과거에는 개인의 부주의로 관리 과정 중 일부에서 협력사 사업 정보와 아이디어가 유출 또는 유용될 위험이 있었으나, 시스템 구축으로 이러한 리스크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 KT 측의 설명이다.

윤경모 상무는 “사내에 모든 연구소가 협력사들에게 아이디어를 받을 때는 이 시스템으로 접수해야 한다. 왜 이 아이디어를 받아야 하고, 협력사에게 어떤 댓가를 줄 것인지도 기재하고, 사업화가 안 됐을 때는 자동적으로 폐기를 해야 한다. 자료를 갖고 있으면 안되고 협력사에게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업화를 못하게 됐고, 자료를 폐기한다는 내용 등을 이메일로 피드백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부적으로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자유롭게 논의해야 하는데,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도입기라 예전에는 100개 업체를 만났다면 지금은 50개 업체밖에 못 만난다. 이 시스템으로 좀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제는 4차산업혁명이 ‘4차동반성장’이 되는 것 같다. 협력사 아이디어를 보호해 주는 것이 동반성장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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