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협력사 도와 수출 KT … 공수처 생기면 더 동반성장?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기자 2019.10.28 09:33:29

(CNB저널 =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대기업의 하청사 착취를 당해본 사람은 치를 떤다. 필자가 아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한 대기업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다. 납품 과정에서 대기업 과장급 담당 직원 측의 명백히 잘못으로 큰 손해가 발생했는데, 그 손해를 잘못을 저지른 대기업 과장이 책임지는 게 아니라 하청업체들에 대해 “너희가 잘못한 것으로 밝히고 책임을 져라. 그래야 계속 관계를 유지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 손해를 떠안은 그 하청업체 사장은 “이 사연을 때가 되면 언론에 터뜨려 그 재벌 기업과 과장을 혼내주겠다”고 별렀지만, 시대는 박근혜 직전 대통령 시절. 그의 울분을 들으면서 필자는 “그 억울한 스토리를 그 어떤 언론사에 말하더라도 절대 다뤄주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에 그저 측은한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고양이가 새끼 쥐 다루듯 하는 한국의 대기업-협력사 관계에서, 대기업 KT가 ‘쥐구멍에 볕든 날’ 같은 혜택을 줬다고 해서 화제다. 바로 KT의 SCM전략실 윤경모 상무가 이뤄낸 동반성장 정책의 결과다. 이번 주 CNB저널의 기업문화 커버스토리다.

윤 상무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5G 이동통신을 시작했기에 한국산 장비나 모듈, 소자들에 다른 나라들이 관심을 보인다. 거기에 KT 브랜드를 가지고 협력사들과 함께 진출하면 바이어의 신뢰를 얻는 무기가 될 수 있다”며 520억 원 수출 성과의 바탕을 설명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4차 동반성장이 되는 것 같다. 협력사 아이디어를 보호해 주는 것이 동반성장에서 중요하다”는 얘기도 했다. 컨베이어 벨트에 맞춰 대량생산-대량소비를 하던 2차 산업혁명 시대엔 노동자가 개미처럼 찍 소리 않고 일하는 게 중요했지만, 개개인의 창의-창발성이 성패를 결정하는 4차산업혁명-5G 시대엔 협력사의 기를 살려줘야 함께 발전하는 시너지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협력사-하청업체를 거의 개-돼지 수준으로 보면서 ‘단가 후려치기’를 상시적으로 하거나, 아니면 일껏 하청업체가 개발한 신기술을 빼돌려 외국 업체로 하여금 생산케 하는 등 찬란한 수탈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산업계에선 참으로 보기 드문 협력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MS 최고경영자가 대학생에게 전화 건 이유

일본 아베 정권의 “한국엔 핵심 소재 안 팔아”라는 해괴한 정책 뒤, 소재-부품 산업(곧 중소 협력사들의 영역)을 키우고 살려야 한다는 大각성이 한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가장 앞서나가는 5G 관련 부품을 협력사들로 하여금 수출케 하는 동반성장 정책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2000년대 중반 미국의 이른바 ‘닷컴 경제’ 시대에, 미국에선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초거대 기업들이 대학생들의 IT 아이디어들을 거액을 주고 사들이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었다. 당시 한 대학생의 신기한 경험담을 한 언론에서 읽었다. 이 대학생이 “인터넷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했는데 며칠 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 경영자 중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천금을 주고 네 아이디어를 사겠다’고 제안해 깜짝 놀랐다”는 얘기였다.

 

KT와 협력사 임직원들이 ‘Global Together KT Partners’ 문구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 KT 제공

기자는 전화를 건 MS의 중역에게 “왜 대학생의 아이디어에 그렇게 큰돈을 주겠다고 했냐?”고 물었고, 대답인즉 “참신한 아이디어를 방치했다가는 구글 같은 신생 기업이 순식간에 생겨나 우리를 위협할 수 있고, 또 대학생의 발표 아이디어와 유사한 기능 또는 제품을 우리가 내놓았다가는 표절 혐의로 엄청난 배상금을 물을 수 있기에 미리미리 참신한 아이디어를 사들이거나 아니면 그 아이디어의 주인공을 MS 직원으로 만들어 놓는 게 내 임무”였다는 기사였다.

당시 귀에 쏙 들어온 문장은 ‘표절 혐의로 엄청난 벌금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였다. 미국 법원은 MS 같은 대기업이 청년의 사업 아이디어를 탈취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상상을 초월하는 벌금을 때리기도 한다. 이런 벌금을 맞느니 자금력이 풍부한 MS는 미리미리 아이디어를 거금을 주고 사거나, 그 청년을 직원으로 눌러 앉히는 게 더 안전하고 저렴한 방법이기에 그 임무를 최고경영자 중 한 명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최후 조정자는 결국 법원 판결인데…

이래서 결국 사회의 최후 보루 또는 방향 제시자는 법원이기 쉽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법원이 일벌백계 차원에서 ‘소기업의 기술-아이디어 탈취 대기업에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린다’는 원칙을 보여준다면 그 다음부터 업계 분위기는 싹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맨앞에 예를 든 ‘한국 대기업 과장에게 당한 하청업체 사장’ 얘기처럼, 한국에서는 그런 판결을 법원이 내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뿐 아니라, 대기업 과장의 못된 짓을 “함부로” 발설한 협력사 대표가 한국에 머물 수 없어 이민을 가야 하는 신세로까지 내몰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법원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탈취는 법 정신에 합당하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 말장난의 과학’이란 책을 쓴 최덕규 변리사(명지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명판결문을 읽으면 감동에 눈물이 흘리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 대법원의 판결문은 95% 이상이 개판이었다”고 했다. 눈물과 분통의 차이가 바로 미국과 한국 사법부의 차이를 말해준다.

미국에 공수처는 없지만 검사장을 주민투표로 선발하고, 법정에 시민 배심원을 적극 개입시키는 등 사법 민주주의가 한국과 달리 분명히 작동한다.

이처럼 나라의 수준도, 협력사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도 결국 법원이 결정한다면, 한국처럼 법조계의 전관예우 같은 해괴망측한 전통이 살아숨쉬는 곳에서는 도대체 어째야 한다는 말일까?

 

필자가 읽은 책 중에서는 베이징대학교 국제정치학과 판웨이 교수의 책 ‘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모델론’의 다음 구절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어떤 사회구조는 결코 독립적인 법률인 ‘체계’ 혹은 집단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양의 특수한 역사적 현상이다. 법관의 독립을 공인하는 것은 저열하고 원시적인 사법 형태로서 사법의 부패를 촉진한다. 법관이 개인의 정치적 이념에 따르도록 하고 소송을 통하여 제도를 바꾸고 정치를 어지럽게 한다. 법제를 정치라는 공인된 구렁텅이(법관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로 빠뜨릴 것이다. 중국의 정치적 조건에서 볼 때 사법의 통일에 대한 당의 정치적 지도는 극히 중요하다.”

중국의 조건에서 볼 때 사법 독립의 인정은 법관과 나라를 모두 망친다는 것이다. 판웨이의 해결책은 ‘당이 강력한 정치적 지도’다. 공산주의 국가다운 해결책이다. 그의 논의를 한국화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한국의 조건에서 사법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의 부패와 국가의 난맥상만 더할 뿐이기에, 시민이 강력한 정치적 지도를 해야 한다’로.

공수처가 법조계에 대한 이런 교정 작용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법치 후진국인 한국에서 KT가 5G 시대의 동반성장을 시도해 성과를 올렸다는 점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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