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전직 특수부 검사의 ‘전두환 경험’과, 한국의 법치 or 율치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기자 2019.11.25 09:10:29

(CNB저널 =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이번 호에는 전직 특수부 검사였던 문규상 변호사의 칼럼 ‘특수부 검사로 엿본 전두환 비자금 세 장면 … 利로 똘똘 뭉친 그들?’(48쪽)을 실었습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1995년 12월 2일 연희동 골목에서 전두환 씨가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하기 전날에 휘하의 수행원-경호원 등에게 무려 10억 원 씩이나 무기명 채권으로 나눠줬다는 겁니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뭉텅뭉텅 10장씩 종이 봉투에 넣어 나눠주는 과정에서 어떤 이에게는 11장이 들어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워낙 경황이 없고 급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지만, 1억 원 정도는 전씨 일가에게 ‘큰돈이 아니었기에’ 그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압구정동 아파트의 가격이 2~3억 원 하던 시절이니, 압구정동 아파트 네 채를 살 돈을 나눠준 셈이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50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일 테니 수하 인물들이 놀랄 만도 했겠지요.

전두환의 10억 금일봉이 감동이라굽쇼?

이렇게 너무나 큰 금액을 금일봉으로 전 씨가 줘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에 대한 충성심이 넘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많은 수행원-경호원들이 전 씨가 준 10억 채권을 거의 환전해 쓰지 않고 갖고 있다가, 전 씨가 구속되자 “생활비로 쓰시라”며 전 씨 일가에 되돌려줬다는 스토리도 문 변호사의 칼럼에 나옵니다. 아름다운 충성의 감동적인 일화로 읽는 분도 있겠지만, 문 변호사는 이를 ‘의(義)가 아닌 이(利)로 뭉친 소인배들이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한국의 ‘핵심 연합’ 규모는 큰가 작은가?
 

‘독재자의 핸드북’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Bruce Bueno de Mesquita와 Alastair Smith)은 지구상의 정치 체제를 ‘민주주의냐 독재냐’로 나누는 방식에 대해 “표현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저 편리하기만 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48쪽)고 경고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외형을 갖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독재일 수 있고(최근 일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되지요), 독재의 형태를 갖지만 내용적으로는 민(民)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들은 ‘핵심 연합의 규모’로 정치 체제를 나눕니다.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개념으로서 한 나라의 정치 체제를 보지 말고,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 있느냐로 나눠보는 게 더 유효하다는 주장이지요.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왕가(王家)의 구성원으로부터만 동의를 받으면 권력의 최정상에 오를 수 있는 나라가 있고, 한국처럼 전국민의 직접투표를 거치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지요.

동의를 얻어야 하는 ‘핵심 연합’의 규모가 작을수록 그 핵심 연합에 뭉텅이 혜택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사우디 왕가의 구성원에게는 ‘만수르급’ 혜택을 줄 수 있지만, 한국의 전국민 유권자에게 그런 과도한 혜택을 줄 수는 없지요.

정치 형태를 이렇게 ‘핵심 연합의 규모’로 나눈 뒤 저자들은 조사의 결과를 이렇게 씁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자들은 독재자들보다 국민의 생활수준을 크게 향상시키지만 집권 기간은 더 짧다”고. 한국인들도 경험했고, 또 앞으로 계속 경험할 내용이지요? 민(民)을 이롭게 하는 민주주의자 대통령 또는 민주주의를 믿고 실천하는 대통령 또는 정당은 단명(短命)하고, 民을 억압하고 재벌과 한 편을 먹는 정권은 장수(長壽)했다는 경험을 한국인은 갖고 있고 또 앞으로도 자주 경험할 준비를 확실히 하고 있으니까요….

‘독재자의 핸드북’의 내용은, 전두환과 그 휘하의 10억 수고비와 정확히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자택 압색을 하는 대상과 안 하는 대상

조국 전 장관 자녀의 표창장 위조 혐의에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분노하고, 검찰 특수부가 총동원되다시피 하면서 수십 군데 압수수색이 진행되지만, 광주사태급 대량 출혈을 부를 것이 뻔했던 박근혜 정권 말기의 ‘친위 구데타 모의’에 대해선 기소중지가 착착 잘도 진행됩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수사를 맡은 검사도, 이를 보도해야 할 언론도, 군부세력이 이 나라의 핵심임을 알고 있고, 그걸 건드려봐야 자신에게 좋을 일이 하나도 없으므로 그냥 모르는 척 덮어두고 있는 게 아니겠냐’고.

결국 전두환의 휘하든, 전두환 식의 쿠데타를 모의한 자들을 그냥 방치해두고 있는 검사든, 또 조국 사태에 대해서는 엄청난 양의 기사를 써댔지만 쿠데타 모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을 않는 언론들이든 스스로를 ‘성 안의 사람 또는 최소한 성 안 분들을 모시는 같은 편’ 정도로 생각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너무 따끈해 한겨울에도 반팔로 지내야 하는 ‘성 안’과, 추위가 살을 에이는 ‘성 밖’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국인이기에.
 

20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017년 작성된 기무사 계엄 문건이 19대 대통령 선거를 무효화하려 기도했다는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성 안’에 영주하고픈 한국 기자들

한국 법조계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한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저자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이렇게 썼습니다. “기자는 시민들이 법원과 검찰을 이해하기 위해 보낸 의사소통의 사신인데(285쪽)” 외형적으로 본다면 기자는 시민들이 법조계에 파견한 인원들인데, 실상은 법원-검찰과 한 편을 먹어버렸다는 고발이지요.

문 변호사의 칼럼이 의미있는 건, 단지 과거의 전두환 군사정권의 치부를 경험담으로 전해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른바 “좌파 정권”(유럽 기준으로 치자면 중도 보수 정권에 불과하지만)이 집권해 있다는 우리 사회, 한국 법조계의 현재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해당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전직 검찰 최고위직을 지낸 변호사가 3년 만에 활동을 시작한 로펌에 사건 당사자들이 상담을 위해 순서를 기다릴 정도로 사건이 몰리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 로펌의 구성원은 현 정권과 연고가 있는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로 채워져 있고, (중략) 또한 참여정부 시절 고위 법관 출신의 모 로펌 대표변호사와 법무장관을 지낸 판사 출신의 모 변호사가 모두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연고를 내세워 재계의 순위 안에 들었던 모 기업 전직 총수가 1심에서 법정 구속된 사건의 항소심 재판의 변호사 수임료로 깜짝 놀랄 정도의 거액을 요구하였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정권은 보수(극우)에서 진보(사실상 중도 보수)로 바뀌었다지만, 정권과 가깝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왕궁’에 근접한 변호사들)이 또한 엄청난 예우를 받고 있음을 비판한 내용입니다.

법치가 좋은 건, 진시황을 위해 가혹한 법을 만든 상앙이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걸려 몸이 둘로 찢기는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이 증명합니다. 법이란 항상 지배자, 지배층, 양반을 위해 만들어지고, 이른바 ‘아랫것들’을 돕도록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절대로 없지만, 일단 법이 만들어진 뒤에는 ‘윗분’들도 법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법학자들은 말합니다.

상앙의 허리 자른 상앙의 법

하지만 이런 법가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마자 상앙이 그랬듯 죽임을 당하고, 진나라 멸망 뒤에 다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는 실제 통치는 법가적으로 했다지만, 겉으로 내세운 통치 이념은 유교였습니다. 일단 정권을 잡고 나면 ‘인(人: 양반들끼리는)은 예(禮)로 서로 접대-교류하며, 민(民)은 형벌로 다스린다’는 유교가 더 편하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법은 있되 사람에 따라(인이냐 민이냐, 또는 성 안이냐 성 밖이냐, 또는 우리 편이냐 저쪽 편이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면 그건 법치가 아니라 율치(律治: 형벌로 아랫것들만을 엄벌하는 체제)입니다.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전두환류의 한국인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일단을 보여준 문 변호사의 칼럼을 실으면서 우리 사회의 율치 또는 인치(人治: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통치)가 언제나 종결될지를, 그래서 1만 명에게만 아니라 만인에게 법이 적용되는 법치가 제대로 설지를 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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