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로봇 덕에 ‘일이 준다’와 ‘일자리가 준다’ 사이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기자 2019.12.09 09:09:32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국수 한 그릇을 뚝딱 요리해낸다는 ‘로봇 셰프’ 이야기가 이번 호 44~45쪽에 실렸습니다. 로봇 팔이 국수를 말아내니 신기하기도 하지만, 설치 업소 점장은 “이전까진 직원이 뜨거운 육수가 있는 조리대 앞에서 상주하며 반복적인 일을 했었지만 로봇 셰프가 들어오면서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분담하게 됐고, 따라서 직원들은 고객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좋은 일이지요. 단순반복 업무에는 로봇이 딱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움직이는 생명체’(동물)이기에 뭔 일을 하건 매번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고 또 조금씩 달라지는 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인간에게 좋습니다. 하지만 식당에서 요구하는 일, 예컨대 국수를 삶아내는 일 등은 매번 일정한 게 최고입니다. 국수 면발이 매번 조금씩 달라지면 곤란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인간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 중에는, 인간의 ‘동(움직이는)물’적 본성을 거부하고, 기계적 동일함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예컨대 부동자세를 취하는 일 등이 포함됩니다. 본성에 거슬리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이세돌 9단도 퇴직시키는 인공지능인데…

앞에서 점장이 “로봇 덕에 뜨거운 육수 조리대 앞 일(단순반복 작업)은 로봇에 맡기고 직원(사람)들은 고객 서비스(변화무쌍 작업)에 더 집중하게 됐다”니, 로봇과 인간이 아주 효율적으로 어울리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봇의 직장 내 활용은 위의 예처럼 ‘단순반복 작업은 로봇이, 변화무쌍 작업은 인간이’라는 단계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문제입니다. AI(인공지능) 이전 시대에서야 기계에 ‘뇌’가 달린 게 아니니 위처럼 업무 나눔이 가능했지만, AI가 인간의 뇌를 뛰어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변화무쌍 작업마저도 로봇 또는 AI가 가져갈 것 같은 시대가 현실이 돼가고 있습니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 그런데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졌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AI에게 바둑을 배워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인간에게 졌다면 그 고수께 배우면 되지만, 기계에게 배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바둑을 떠난다”고 한 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바둑처럼 최고절정의 변화무쌍 세계에서도 AI-로봇이 인간을 앞섰는데 그 어떤 분야가 온전히 “이 작업은 단순반복 작업이 아니니 로봇에겐 줄 수 없고, 영원히 인간 몫”으로 분류해 놓을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한국적 ‘사람 대신 기계’의 세상
 

‘사람으로 안 되면 기계로’란 구호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 현대-기아자동차에서도 실행되고 있습니다.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의 책 ‘가보지 않은 길 -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한 번 보지요.

일본은 (중략)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거의 손끝으로 고쳐요. 장인을 중심으로 현장 생산직 노동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에요. 한국에서는 조립공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즉각 수정을 요구하죠. 그러면 엔지니어들이 도면을 수정합니다. 노조가 세니까 (중략)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면 도면과 부품이 완벽해져요. 도면과 부품이 완벽하면 미국이든, 인도든, 슬로바키아든 다 통합니다. 일본보다 빠르게 해외진출에 성공한 이유죠.(128쪽)

현대차 울산 공장 생산관리자 P씨의 말이랍니다. 일본 차는 사람과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구조라면, 현대차에선 노조가 워낙 세니까 사측이 완벽한 기계를 통해 문제를 돌파해나가는 중이랍니다. 덕분에 현대차의 해외 진출이 빠를 수는 있었다지만, 그 궁극의 도달점이 어디일지를,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결국 나이든 현대차 노동자들이 하나하나 회사를 떠날수록 결국 무인(無人)공장이 현대차 생산시설의 미래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성 노조 탓에 현대차 한국 내 공장이 무인공장이 되면 속 썩을 일 없어서 경영진은 좋겠지만, ‘노동자 제로’의 생산시설이 과연 한국인 일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심각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에 관한 기계와 인간이란 주제에 항상 나오는 게 ‘포클레인의 비유’입니다. 과거엔 사람이 파내던 흙을 포클레인이 파내면, 1천 명의 노동자를 포클레인이 대체할 수 있다는 게지요. 흙을 파내던 인부 입장에서는 내 일자리를 앗아간 포클레인이 밉기에 그 기계를 부수기도 했고, 그게 바로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1811∼1817년 영국 중-북부의 직물공업 지대에서 일어났던 기계 파괴 운동)입니다.

러다이트 운동이 멈춘 이유는?

하지만 기계파괴 운동이 일시에 그친 것은, 포클레인을 통해 쉽게 파내지고 쉽게 지어지는 건물들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실직당한 땅파기 인부 1천 명을 흡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럽의 역사였습니다.

더 쉬운 비유로는 유튜버 얘기를 해보지요. ‘일반인이 집에서 동영상을 만들고 발표해 돈을 번다’는 개념은 유튜브 이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습니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이를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이것이 경제다’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LG전자와 CJ푸드빌이 11월 22일 패밀리레스토랑 ‘빕스’ 등촌점에 설치한 ‘LG 클로이 셰프봇’이 국수를 말아내는 모습을 고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 제공 = LG전자
 

AI에 의해 대체될 수많은 업무의 감소 속도를 추월할 만큼 AI를 활용하면서 사회적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업무가 증가하지 않는 한 일자리는 감소하고 사회 전체 소득 중 노동소득의 비중도 줄어들기에 불평등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중략) 그렇다면 AI 도입과 확산으로 없어질 기존 업무들을 대신해 새로운 업무(일자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313쪽)

새로운 가치(시장)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갖지 못한 자원을 가진 사람들과의 협력을 작동시키기 위해 파트너들과 이익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일자리까지 만들어내는 사업 모델(대표적으로 유튜브, 애플의 앱스토어) (231쪽)

포클레인의 비유 그대로, 포클레인으로 향상된 생산성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일자리가 유지되며, 그러한 실례로서 최 교수는 ‘공유 경제’라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탄생시킨 유튜브와 애플 사례를 들고 있는 것이지요.

부동산 광풍과 AI 침략의 헬조선?

헌데, 유튜브와 애플을 만든 건 미국이죠. 흔히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극단을 달린다’고 얘기되는 미국에서 이런 공유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진 반면, ‘개인보다는 집단을 소중히 여긴다’고 하는 아시아에서는 아직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뜨질 못하고, 한-중-일 세 나라 공통으로 급상승이건 급하락이건 ‘부동산 바람’만 거세게 부는 것 같습니다.

부동산에 대해 최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부를 빈자가 부자에게, 그리고 미래세대가 기성세대에게 역진적으로 재분배한다.(275쪽)

부동산은, 있는 자가 선점해 없는 자로부터 부를 빼앗는 수단이며,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부를 착취하는 수단이라는 해석이지요. 이른바 ‘좌파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부동산 값이 폭등하는 한국적 현상을 보면서 과연 이 나라에 공유의 정신은 있는지, AI가 뺏아갈 일자리를 대체할 일자리를 AI를 통해서 만들어낼 정신은 살아 있는 것인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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