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펭수와 구마몬, 성공한 캐릭터 마케팅의 미학

김금영 기자 2019.12.19 14:48:01

EBS 캐릭터 펭수(왼쪽)와 일본 구마모토현의 캐릭터 구마몬. 사진 = 나일론, 구마몬 공식 사이트

펭수가 난리다. 유통업계를 비롯해 패션업계, 요식업계, 방송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펭수와의 컬래버레이션 기회를 잡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KGC인삼공사는 펭수와 CF 계약을 체결했고, 스파오는 올해 마지막 컬래버레이션 주인공이 펭수임을 밝혀 관심을 고조시켰으며, 나일론은 펭수와 화보를 진행해 잡지 완판의 성과를 이뤘다. 11월 28일 인터파크를 통해 예약 판매를 시작한 ‘펭수 에세이(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예약 판매 6시간 만에 6500부 판매를 돌파하는 등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단숨에 꿰찼다. 인터파크는 “펭수 굿즈를 증정하는 ‘EBS 교재 x 펭수 기획전’을 11월 11일부터 진행한 결과, 전년 동기 대비 관련 EBS 교재 판매량이 40% 증가했다”고 펭수 효과를 밝혔다.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재 펭수의 몸값은 최소 3억에서 최고 5억 원(1년 기준 광고 모델료) 정도로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펭수와 손을 잡으려는 기업들의 구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성인 2333명을 대상으로 ‘2019 올해의 인물’을 조사한 결과 펭수는 20.9%의 득표율로 대세인 송가인, BTS 등을 누르고 방송·연예 분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왜 그리 펭수가 인기일까?

‘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헤엄쳐 온 펭귄’이라는 세계관

 

펭수는 ‘BTS와 같은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온 EBS의 연습생 펭귄’이라는 세계관을 지녔다. EBS에 오디션을 보는 에피소드가 콘텐츠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진 = ‘자이언트 펭TV’ 영상화면 캡처

일단 펭수의 세계관이 눈길을 끈다. 여타 캐릭터들이 ‘000를 대표하는 캐릭터’ 등으로 구체적인 스토리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펭수는 ‘BTS 같은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온 EBS 연습생 펭귄’이라는 세계관을 지녔다. ‘000를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단정 지으면 궁금해질 여지가 별로 없으나, ‘남극에서 헤엄쳐 온 펭귄’ ‘연습생 펭귄’ ‘키가 2m에 달하는 자이언트 펭귄’ 등 세세한 스토리가 끼어드니 이 캐릭터에게 궁금한 점이 많아질 수밖에.

실제로 EBS 측도 연습생 펭수가 오디션을 보고, 세계적 스타가 되기 위해 조언을 받는 등 연습생 세계관을 이용한 콘텐츠를 많이 쏟아냈다. 아트토이컬처 주최에 참여하는 등 캐릭터 아트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온 가나아트 이정용 대표는 “캐릭터에 애정을 쏟는 사람들의 눈이 상당히 높아졌다. 단순히 캐릭터를 보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고, 그 캐릭터의 배경과 탄생 과정까지 궁금해 한다”며 “따라서 단순히 예쁘게 만든다고 캐릭터가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스토리를 입혔는지도 캐릭터의 중요한 성공 기준”이라고 말했다.

 

구마몬은 일본 구마모토현의 홍보대사이자 영업부장 겸 행복부장 직책을 지녔다. 구마모토현에는 실제로 구마몬의 사무실이 있다. 사진 = 구마몬 공식 사이트

스토리텔링적인 측면에서 펭수는 일본 구마모토현을 대표하는 캐릭터 구마몬을 떠올리게도 한다. 펭수와 구마몬은 성공한 캐릭터 마케팅의 사례로 비교되기도 한다. 펭수가 ‘스타를 꿈꾸는 EBS 연습생’ 신분이라면 구마몬은 ‘구마모토현의 홍보대사이자 영업부장 겸 행복부장’ 직책을 지녔다. EBS 소품실에 펭수의 집이 꾸려진 것처럼, 구마모토현에도 실제로 구마몬의 사무실이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이야기를 현실로 끄집어내며 친근감을 형성한 부분에서 펭수와 구마몬의 평행이론이 성립된다.

또 일찌감치 성공한 캐릭터가 아닌, 스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습생’ 펭수의 이야기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따라가기 위해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학생, 직장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는 측면도 있다. 처음엔 유튜브 채널에서 1만 명 구독자도 힘겹게 모았던 펭수가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했을 때 괜스레 함께 성장한 듯한 기분에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펭수가 자신이 소속된 EBS 사장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를 땐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행복을 전파한다는 ‘행복부장’ 구마몬의 스토리 또한 그렇다. 유쾌하면서도 현실과 괴리감이 있지 않은, 마음 따뜻해지는 공감의 스토리텔링을 펭수와 구마몬은 갖췄다.

“왜 구독 안 하세요?” 펭수, 소통의 미학

 

펭수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선보이는 ‘자이언트 펭TV’ 채널. 사진 = 사진 = ‘자이언트 펭TV’ 영상화면 캡처

재미있는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이 스토리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지도 중요하다. 펭수와 구마몬은 시대의 트렌드에 잘 편승했다. 구마몬은 영업부장으로서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실제로 근무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과 사진 등을 공식 SNS와 방송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캐릭터 출범 당시 구마몬을 알리기 위해 ‘가출 사건’ 이벤트를 기획해 가바시마 지사가 “오사카를 활보하고 있는 구마몬을 꼭 찾아달라”고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도 유명하다.

펭수는 유튜브에 ‘자이언트 펭TV’라는 공식 채널을 갖고 있다. 짧은 분량의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즐기는 대중의 심리를 겨냥한 콘텐츠를 유튜브를 비롯해 공식 SNS 등에 올렸다. 사인회도 열고, 구독자 1만 명이 넘을 때 공약을 걸었으며, 구독자 100만 명이 넘자 감사 영상을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 매우 적극적이다.

두 캐릭터 모두 어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얼굴을 비춘 뒤 아무 말 없이 귀여운 포즈를 취하며 손만 흔들다가 일방적으로 사라지는 상징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자신의 일상 모습까지 공유하며 대중과의 접촉 경로를 넓혀 왔다. 특히 펭수는 캐릭터의 몸짓에 성우의 목소리를 입히지 않고, 눈앞에 있는 상대방과 바로바로 대화한다. 자신의 채널 구독을 막았다는 어머니에게 “왜 구독 안 하십니까?”라며 호통을 치고,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웃기도 한다. 결코 짜인 대본대로 목소리만 입히는 캐릭터가 아닌, 상대방과의 적극적인 실시간 소통은 캐릭터에 큰 생명력과 친근감을 부여했다. 자이언트 펭TV를 연출한 이슬예나 PD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본의 전체적인 구성은 의논해서 짜지만, 현장에서 디테일한 드립(애드리브)은 펭수가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마몬의 공식 사이트 화면. 구마몬은 이 사이트를 통해 스케줄을 공유한다. 사진 = 구마몬 공식 사이트

캐릭터 디자인적 측면에서도 펭수와 구마몬은 매력적이다. 이전 구마몬과 서울 대표 캐릭터 해치를 비교하는 기사를 작성할 때도 느꼈던 바지만, 복잡한 외형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지 않다. 해치엔 조화와 화합을 나타내는 태극 문양, 선과 악을 분별하는 뿔, 해치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날개, 귀여움을 살리는 덧니 등이 담겼다. 각각의 요소가 따로 있을 땐 흥미로웠으나, 이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캐릭터에 모이니 외형이 복잡해졌다. ‘이런 의미에서 이 요소가 들어간 것’이라는 설명이 필요한, 다소 어려워진 캐릭터가 된 것.

반면 펭수와 구마몬은 보는 순간 펭귄과 곰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동물 캐릭터는 국적과 상관없이 호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사랑받아 온 곰돌이 푸우, 미키마우스, 톰과 제리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외형도 단순하다. 펭수는 큰 키에 헤드셋(메이드 바이 김명중), 초점 없는 동공, 그리고 구마몬 또한 초점 없는 동공에 발그레한 홍조를 띤 두 볼로 캐릭터가 설명된다. 단순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외형이다. 이런 측면에서 시의 이름을 활용해 만들어진 고양시의 고양고양이도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와 고양시 이름의 연계성을 파고들어 디자인적 측면에서도, 스토리적 측면에서도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

잘 만든 캐릭터 하나가 나라 먹여 살린다

 

인터파크는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리는 기획전에서 초중고 참고서 구매 시 EBS 프로그램의 간판 캐릭터 ‘펭수’를 포함해 인기 캐릭터 굿즈를 증정한다. 사진 = 인터파크

캐릭터의 알 수 없는 표정 또한 의외의 매력 포인트다. 공익적인 측면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는 매우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캐릭터의 이야기가 다소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다. 반면 어디를 보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어 궁금증을 자아내는 펭수와 구마몬의 초점 없는 동공은 어떤 자막을 입혀도 어울리는 표정을 지녔다. 펭수와 구마몬의 수많은 짤이 돌아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날렵한 움직임도 캐릭터에 생동감을 더했다. 큰 캐릭터 탈을 힘겹게 쓰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아니다. 구마몬은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돌아다니거나 번지점프를 시도하기도 하고, 펭수는 알아주는 댄스 신동이다. 구마몬 탈 안에는 체격이 작은 성인이 들어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펭수의 정체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이 이어지고 있으나 EBS도 펭수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도 “펭수는 펭수일 뿐”이라며 펭수의 세계관을 소중하게 지켜주고 있다.

 

펭수와의 컬래버레이션 소식을 알려 화제가 된 스파오. 사진 = 스파오

잘 만든 캐릭터 하나가 나라를 먹여 살린다고도 했다. 구마몬은 2016년 관련 상품 매출이 1조 원을 넘는 등 막대한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며 ‘구마모토현을 일으킨 캐릭터’로 유명세를 떨쳤다.

펭수는 현재 3년째 적자의 늪에 빠져 있던 ‘EBS를 먹여 살릴 캐릭터’로 기대 받고 있다. 과거 뽀로로 캐릭터 효과를 톡톡히 봤던 EBS에 이번엔 펭수가 힘을 보탤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지고 있다. EBS뿐 아니라 펭수의 긍정적 이미지를 입은 컬래버레이션 효과를 꿈꾸는 다양한 업계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남녀노소 선호도를 타지 않는 대중적인 동물 캐릭터라는 점에서 펭수는 매력적이다. 이질감 없이 다양한 상품에 녹아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펭수에 대한 러브콜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펭수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캐릭터로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를 받고 있다. 캐릭터의 미학을 잘 살린 ‘펭수 효과’가 얼마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와 긍정적인 영향력을 떨칠 수 있을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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