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차·LG그룹의 젊은 리더가 만드는 변화…구글처럼 ‘꿈의 직장’ 가능할까?

최고의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고 싶은 기업 문화 만들어야

윤지원 기자 2019.12.26 17:01:15

40대 젊은 나이에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왼쪽)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혁신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 = 각 사)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은 지금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새롭게 그룹을 이끌고 있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과 LG그룹 구광모 회장의 젊은 리더십은 재계에서 전통적·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고수해 온 것으로 알려진 두 그룹을 1년 만에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분위기로 바꿔가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복장 자율화, 직급 체계 간소화, 인사 제도 변화 등을 통해 그룹을 수평적이면서 효율과 실리를 중시하는 조직으로 바꾸고,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하고 있다.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로의 변화에는 뚜렷한 롤모델이 있다. 2000년 전후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혁신 사업모델을 바탕으로 등장,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한 미국 IT 공룡들, 즉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이 그들이다.

특히 구글은 2000년대 중반 국내에 진출한 이후 파격적인 기업문화와 직원 복지로 국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꿈의 직장’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구글이 1999년, 작은 차고를 벗어나 처음으로 오픈한 팔로 알토(Palo Alto)의 사무실 모습. (사진 = 구글코리아)


오죽하면 별칭이 '꿈의 직장'

구글 이전에도 외국계 기업은 국내 기업에 비해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조직 문화와 좋은 대우로 취준생들에게 선호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지만 구글의 기업문화는 알면 알수록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서 원하는 자리에서 근무하다가 원하는 시간에 퇴근하는 유연함은 말할 것도 없다. 최고 경영진부터 말단 인턴까지 대등하게 소통하는 수평적이고 차별 없는 문화도 잘 갖춰져 있다.

사원 복지는 국내 어지간한 대기업이 따르지 못할 정도다. 구글 직원들은 휴가를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쉴 날짜만 알리고 자유롭게 계획하고 쓴다. 연말에 남은 휴가는 다음 해로 이월된다. 육아휴직을 원하면 눈치를 주는 게 아니라 “넌 쉴 자격이 있다”며 조직에서 먼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집에서 자녀를 돌보기 위해 재택근무를 하고자 할 때도 이메일 한 통으로 보고만 하면 된다.

또, 전 세계 모든 구글 지사는 전 직원에게 하루 세끼 푸짐한 뷔페를 제공하며, 커피와 음료, 간식 등도 무료로 제공한다. 마사지실도 갖춰져 있다. 심지어 2층 사무실에서 1층 식당에 갈 때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재미있는’ 직장이다.

구글은 이처럼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운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다. 구글에서 일해 본 사람들의 여러 가지 경험담을 접해보면, 저렇게 대단한 직원 복지 및 조직 문화보다도 ‘정말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든다’는 점을 구글이 지닌 최고의 장점으로 꼽는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구글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뛰어난 인재들이야말로 구글이 계속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구글은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구글코리아 역시 우리 사회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강남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해마다 참석하고 있다. 피상적인 제도 도입보다 진정성있는 실천을 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추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사진 = 구글코리아 트위터)


제도 따라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아

우리나라 대기업 정도면 최고의 직장이라며 프라이드를 가졌던 사람들도 구글의 기업문화를 부러워했다. 구글에 많은 사람이 감탄했다는 것은, 기존 조직 문화의 부정적인 면, 개선이 필요한 면 등등을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구글이 알려진 이후에도 국내 대기업의 변화는 기대보다 더디게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산업에서 여전히 성과를 잘 내고 있는 기업들이라면 딱히 변할 필요가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쉽게 버틸 수 없을만큼 글로벌 시장 환경이 변하는 속도가 빨랐다.

201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많은 국내 기업, 특히 대기업들이 더 큰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을 위해 필요한 변화를 인정하고 개혁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스타트업 출신 혁신 기업들이 단시간에 전 세계를 상대로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리는 것을 거듭 확인했기 때문이며, 심지어 우리 기업들보다 하수라 여겼던 중국에서도 알리바바, 화웨이 같은 초대형 테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위협적으로 성장하면서부터다.

그런데 변화를 시도하는 것 같아도 근본적인 마인드는 바뀌지 않는 기업이 여전히 많다. 예컨대 선진국에 버금가는 육아휴직 제도 도입을 홍보하는 기업은 늘었지만, 육아휴직이 조직과 동료에게는 민폐라는 그릇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지는 없는 곳이 태반이다.

새로 취임하는 CEO는 꼭 청바지를 입고 나와서 ‘자율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이끌겠다고 선언하지만, 이 선언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을 때는 “대표님이 가운데 서시고, 전무님은 왼쪽에” 어쩌고 하는 줄세우기와 의전이 여전한 현실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총괄수석부회장(가운데)이 2017년 6월 경기도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코나' 신차 발표회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자유로운 복장을 넘어 와이셔츠도 아닌 티셔츠와 청바지 복장인 것이 눈에 띈다. (사진 = 현대자동차)


현대차와 LG, 변화가 절실한 까닭

그런데, 최근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주도하는 변화에 대해서는 전과 다른 기대감이 든다. 이는 단지 이들이 국내 5대 그룹이기 때문이거나, 다른 그룹 회장님들보다 ‘젊으니까’라는 단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은 각각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자로 재벌가 후계자라는 점, 둘 다 1970년대생 40대로 대기업 리더십 중 가장 젊은 편이라는 점, 서울 강남의 사립고등학교를 나오고 1990년대 IMF를 전후하여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사회생활(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유학 시절 이들은 구글, 애플 같은 세계적인 혁신 기업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붐을 이끌어가던 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가까운 곳에서 그 변화를 지켜봤다. 이와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IMF 외환 위기와 이후에 취업과 직장생활을 한 세대와 동년배이고, 그 세대의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고민과 욕망을 기성세대보다 잘 읽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탈 IMF 구제금융과 세계화로 가는 길목에서 ‘꿈의 직장’의 등장과 기존 한국의 기업문화를 동시에 바라본 이들은, 언젠가 자신이 물려받아 운영해야 하는 그룹의 미래와 문화, 그리고 함께 일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 자연스레 깊은 고민을 하게 됐을 것이다.

구 회장은 2018년 5월에 그룹 회장에 올랐고, 정 부회장은 9월에 그룹 총괄 수석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공교롭게도 LG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이 무렵 앞서가는 경쟁자들과 뒤쫓아오는 후발주자들 사이에 끼인 채 생존을 위한 변화가 절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 영업이익률이 1%대로 주저앉는 등 2010년대 들어 가장 처참한 실적을 거두고 있었다. 수년간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비해 미래 자동차 분야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렇기에 현대차그룹의 부진은 계속될 것으로 여겨졌고, 이는 곧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의 위기론과 결부됐다.

정 부회장은 단기적인 실적 회복에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먼 훗날을 길게 내다보고, 미래차 시대에서의 생존을 위해 더욱 효율적이고 순발력 있는 조직으로 변화할 것을 주문했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자동차 제조사에서 스마트 모빌리티를 통합하는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수많은 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거대한 조직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기 위해서는 효율성과 순발력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정 부회장은 이를 위해 아버지의 ‘가신’으로 여겨지던 최고위 경영진부터 과감히 바꾸며 적극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한가지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취하고 불필요한 요소는 없앤다는 원칙을 주저 없이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LG그룹 구광모 회장이 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 한 연구원과 투명 플렉시블 OLED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변화는 의지와 실천의 문제

LG그룹은 스마트폰 사업이 올해 3분기까지 18분기 연속 적자였고, LG디스플레이는 10조 5000억 원이 넘는 순차입금(=차입금-현금성 자산)이 골치다. 또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중국 경쟁사들에게 치이고 있으며, 인재들마저 경쟁업체에 뺏기는 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구 회장은 취임과 함께 ‘고객 가치’를 가장 강조했지만, 이후 1년 반 동안 나타난 그의 행보에서는 인재 확보의 의지가 가장 뚜렷하게 느껴진다. 구글, 애플 같은 기업처럼 LG도 최고의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다.

구 회장이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가장 세심하게 살피는 곳은 마곡 사이언스파크이며, 실리콘밸리에 유학하고 있는 이공계 석, 박사 인재를 직접 스카우트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테크 콘퍼런스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또 LG화학은 ‘인력 유출’ 문제를 놓고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과 치열한 법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구 회장은 지난해 취임 후 첫 연말 임원 인사에서 평소보다 30%가량 많은 신임 임원진을 발탁했고, 이번 연말 임원 인사에서는 60대 대표이사를 한 명만 남기고, 그 자리를 모두 50대들로 채우는 등 뚜렷한 세대교체라는 특징을 보였다.

그룹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변화의 의지다. 정 부회장과 구 회장의 임원 인사를 통한 세대 교체는 어쩌면, 변화의 발목을 잡는 기득권 의식을 털어버리는, 미래를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앞으로 만들어낼 혁신 행보가 더욱 적극적이고 과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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