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기업사원다움 사라지는데 정치검찰다움은 그대로?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19.12.30 08:37:20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에는 ‘기업 문화’ 기사로서 △신한금융·롯데·롯데건설·LG생활건강의 여성 리더 키우기 노력(10~12쪽) △여자다움-남자다움 아닌 ‘나다움’을 권장하는 롯데그룹(14~18쪽) △70년대생 40대 회장들의 전면 대두에 따라 기업 문화가 바뀌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한진그룹(20~23쪽)을 조명했습니다.

각기 다른 기사들 같지만, 사실 이들 기사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그럴듯함에서 벗어남’이라는 주제입니다.

그럴듯함이란 단어는, 쉽게 풀어 말한다면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음’이라고 저는 규정합니다.

멀리서 봐도 딱 알았던 과거 세상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예로 들면 그럴듯함의 의미를 알 수 있지요. 예전에 PC가 없던 시대의 사무직종 책상을 한 번 떠올려봅시다. 지금은 회사 책상의 PC 앞에 앉아 일하는 시늉을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낼 수 있어요. 좋은 사진을 구경한다든지, 게임을 하면서도. 그러나 과거 80년대로만 돌아가도 회사 책상에 앉아 있으면 뭔가 회사 일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걸 할 수단이 별로 없었습니다. 회사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바로 딴 짓을 함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었기에 선배들이 뒤통수를 치면서 “얌마, 왜 회사에서 책을 읽어!”라고 혼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의복에서도 그랬습니다. 과거 대기업 사원은 흰색 와이셔츠에 짙은 색 양복 차림으로 거의 완전히 통일돼 있어서 서울 태평로에 쏟아져 나오는 넥타이 부대는 대기업 사원임을 멀리서 봐도 구분이 가능했지요. 반면 노동자층은 ‘잠바’ 차림이었어요.

지금은 그런가요? 아닙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승용차를 몰고 현장으로 가서 복장을 갈아입고 일을 하기에 출퇴근 시에는 그를 ‘공사판 노동자’로 알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부자들 중에는 명품 차-옷으로 치장하는 타입이 있지만, 반대로 그냥 티셔츠 차림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움’이 끝나가는 시대인 만큼 여성다움이니 남성다움이니 하는 구분도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의 얼굴을 대부분 가리는 조선의 장옷이나 아랍의 부르카는 아주아주 멀리서 봐도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가 않아, 예컨대 파카 차림의 경우 남녀 구분이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다움’의 세계는 과거에는 차종에도 적용됐었습니다. 평사원이 그랜저를 사면 “건방지다”는 눈총 내지 좌천(‘본분을 모른다’는 의미에서)의 위기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대개는 직급에 따라 타는 차종이 정해져 있었지요. 지금은 평사원이 벤츠를 사건 말건 그걸 갖고 시비를 거는 윗사람이 꼰대가 되는 세상입니다.
 

(위 사진) 1997년 6월 28일자 동아일보 지면의 이른바 ‘넥타이 부대’ 모습과, (아래 사진) 2019년 복장 자율화를 단행한 대한항공 직원들의 모습이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사진 = 대한항공 제공 

대기업들은 왜 ‘다움’을 추방하려 드나?

이렇게 ‘다움’을 추방하려는 추세가 대기업에서 먼저 나타나는 양상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대기업들은 ‘다움’을 없애려 노력 중일까요?

저는 국제 경쟁과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대기업은 수출 기업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외국 기업과 경쟁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경쟁은 ‘빅데이터와 레시피(조리법)’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최배근 교수의 ‘이게 경제다’의 한 구절을 인용해봅니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대다수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빈곤하며 (중략) 청년들이 현재의 지식 전수 습득에 기반한 교육 방식의 최대 피해자(246쪽)

AI와 5G 등 기술과 더불어 ‘데이터’다. 이러한 수단을 활용해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내는 일은 새로운 ‘레시피’를 찾는 능력에 비유한 수 있다. 풍부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를테면 같은 음식 재료를 갖는다고 똑같은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이치와 같기 때문이다. (중략)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개념설계 역량‘은 확보하기 어렵다.(314쪽)


암기 실력을 겨루는 한국식 주입식 교육 경쟁을 아무리 열심히 함들 AI(인공지능)에 지게 돼 있고, 그래서 서구 선진국은 빅데이터라는 식자재를 놓고 창의적 레시피를 개발하는 능력을 개발 중인데, 한국 교육은 여전히 4지선다형 암기 교육을 통해 ‘스카이 캐슬’에 도전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지요.

국제 경쟁을 하는 수출 대기업들은 ‘적응 못하면 도태’를 몸으로 느낄 겁니다. 따라서 넥타이고 와이셔츠고, 직급에 따른 차종 구별이든, 남자다움-여자다움이든 다 무의미하고, 추구해야 할 것은 직원들이 자유로운 복장과 근무 형태를 통해 ‘4C 역량(창의성, 비판적 사고, 소통, 협업 역량)’(위 책 314쪽에서 인용)을 개발하는 것임을 뼈속깊이 느낄 겁니다.

반면, 이런 국제 경쟁과는 무관한 ‘한국 속의 따뜻한 울타리들’도 있습니다. 국제 경쟁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법조(유능하고 양심적인 검사나 판사를 수입해 대체할 수 없으므로), 언론(한국어를 한국인 기자만큼 구사하는 외국인 기자를 수입 대체할 수 없으므로) 등 분야입니다. 그래서 수출 대기업과는 달리 검사다움, 판사다움, 메이저언론 기자다움, 법조기자다움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다움이 지배하는 세상은 ‘외적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가 세상의 진리라면, 전거(모델, 전형)에 맞추기만 하면 되므로 심각한 내적갈등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 다움이 사라진 세상,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레시피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는 99%의 사람들에게 벅찹니다. 따라야 할 전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다워야 하지만, 도대체 나는 누구?

‘나다움’이라 하지만,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나도 잘 모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최영태는 지구상에 단 한 사람이기에 ‘최영태다움’이 도대체 뭔지 최영태 자신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새 시대는 “너다움을 찾아라”고 요구합니다.

물론 앞으로는 최영태와 유전자적으로나 성질-기질적으로 가장 비슷한 지구상의 다른 인물들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찾아내 ‘이 사람은 이렇게 해서 성공했거나 실패했으니 너다움을 찾는 데 참고하라’는 서비스가 도래할 수도 있겠습니다. 미국 의료 분야에서는 벌써 그런 빅데이터 분석 치료, 즉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치료법을 적용하는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고 하니까요.

따라가기 힘든 이 과제를, 아직도 ‘외우기 교육’과 ‘부동산 대박 신화’에 매몰돼 있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잘 충족시킬지 걱정이 되지만, 또한 ‘대단한 한국인’이니 잘 해나가리란 겁도 없는 기대도 한 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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