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법률 칼럼] 대출 받겠다며 잔심부름해주다 감방 행?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기자 2020.01.20 08:34:47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차량 내에 붙어 있던 광고가 거의 다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지하철 차량 안에 조금의 틈만 있으면 광고를 붙였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광고가 사라지고 쾌적해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하철 차량 내에 광고해도 광고 효과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하철 이용객은 예전이랑 큰 차이가 없는데도, 광고 효과가 떨어진 이유는 지하철의 승객들을 5분만 지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지하철의 승객들은 손안에 있는 핸드폰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승객들이 고개를 들어 지하철 차량 내의 광고를 쳐다보는 시간은 예전보다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광고가 잠재고객에게 노출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광고 단가가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광고주들이 광고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서 지하철 차량 내 광고를 아예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광고주의 관점에서 당연히 가장 효율적인 광고 수단은 핸드폰이 되었습니다. 좀 비틀어서 말하면, 광고를 통해 사기를 치려는 사람의 관점에서도 핸드폰이 가장 좋은 도구가 된 것입니다. ‘서민대출, XX 신용협동조합, OO 금고 대환대출, 햇살론, OO 은행 추가 여신 상품 안내 서비스’ 같은 문자 혹은 전화를 받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마치 내가 돈이 꼭 필요한 때 맞추어 연락이 오는 것 같죠? 대부분은 아닙니다. 특별히 내 개인정보가 유출된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프로그램이 무작위로 보낸 문자나 전화를 받은 것입니다. 무작위든 아니든 정상적인 금융기관에서 보낸 것이라면 문제가 없을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은 대출을 유도하는 문자를 발송하지 않습니다. 즉, 여러분이 거래가 없었던 금융기관으로 받은 대출 권유 문자는 모두 불법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2019년 12월 “실제 공공기관은 페이스북 등에 서민 대출 상품을 직접 광고하거나 대출을 권유하지 않는다”라는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습니다.

“기존 빚 먼저 갚으면 햇살론 해준다”고?

만약 대출 문자를 받은 대출 기관에 전화하거나, 문자에 있는 인터넷 페이지 링크로 연결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정상적인 금융기관처럼 대출 상담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상담원으로부터 신용등급, 대출 한도, 연봉 등등의 이유를 들어 현재 상태로는 낮은 금리의 대출이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상담원은 먼저 일반 금리의 대출을 받으면, 후에 대환 대출을 통해 낮은 금리로 전환해주겠다는 제의를 합니다. 이 말에 혹해서 일단 높은 금리의 대출을 받고 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결국 대출 전환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는 것이 보통입니다.

 

서울 한 은행의 대출창구.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이건 일반적인 대부업체의 수법이고, 요즘에는 보이스 피싱 업체가 개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햇살론이 문제인데요, 햇살론 대출이 거절된 경우에도 가능하게 해줄 테니 작업비를 입금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고, 햇살론 대출을 받기 위해 기존 대출을 지정해 주는 계좌로 먼저 갚으라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입금한 돈은 못 받는 돈이죠. 그냥 눈뜨고 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진화했습니다. 정상적인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에게 현재의 신용 상태로는 대출이 불가능하지만, “통장을 빌려주거나, 심부름을 해주면 OOO 원을 대출해 주겠다”라는 제의를 합니다. 바로 보이스 피싱 사기의 가담자를 모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통장으로 돈을 받아 인출해서, 그 돈을 전달하는 역할을 요구받는 것입니다. 최근에 보이스 피싱 조직은 이른바 ‘인출책 또는 전달책’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대출을 미끼로 사람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보이스 피싱으로 진화하는 대출 사기

사실 이런 식의 보이스 피싱 가담자 모집은 기존처럼 ‘수고비’를 준다고 하며 인출이나 전달을 부탁하는 것보다 훨씬 악질입니다. 보이스 피싱 조직은 대부업체가 아니고, 대출 능력도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모집된 가담자는 인출이나 전달이 끝났을 때 수고비는 당연히 없고, 원하던 대출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스 피싱은 대부분 점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범들이 외국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보이스 피싱 수사에서 검거되는 것은 주범이 아닌 통장을 빌려준 사람, 자신의 통장으로 돈을 받아 인출해 주는 사람 또는 제삼자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가져다준 사람 정도입니다. 즉, 범죄 조직의 가장 낮은 단계의 구성원입니다.

범죄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어렴풋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통장을 빌려주거나 돈 심부름을 하는 것이 큰 죄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죄의식 없이 통장을 빌려주고, 돈 심부름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므로 보이스 피싱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아무런 전과가 없는 경우에도, 심지어 돈을 받으려 시도하다 검거되어 실제 금전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도 구속 수사를 하고,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검사의 구형량도 상당히 높고, 판사의 선고 형량도 생각보다 높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처벌 수위가 더 높아지면 높아지지,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보이스 피싱의 단순 전달책이 법정에서 하는 말은 뻔합니다. “죄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또는 “이렇게 큰 죄인지 몰랐습니다”입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잘 몰랐다는 말은 법정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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