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상 칼럼] 검언유착(檢言癒着)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기자 2020.02.10 09:16:01

(문화경제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필자가 진주지청에 근무하던 중인 1990. 1. 7.부터 한 달 동안 거창지청 검사의 심장 수술로 인하여 파견 근무를 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거창지청은 단독지청으로 지청장과 검사 1명만 근무하고 있었기에 검사의 유고로 검찰청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지는 것을 우려하여 본청인 마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지시에 의해 관내에서 가장 큰 규모인 진주지청 검사들이 한 달씩 번갈아 가면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거창지청에서 근무하는 동안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당시 경찰관이 중앙선 침범 교통사고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 사건으로 축소하여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한 것을 밝혀내고 담당 경찰관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였다가 지청장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캐비닛에 쳐박아 두고 왔던 기억과 30센티미터 이상의 폭설로 통행이 두절되는 바람에 3일 동안 출근을 하지 못하여 월말 사건 미제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기억 등이 납니다.

그러나 필자가 거창지청 근무를 마치고 진주지청에 돌아온 첫날, 당시 제 옆방에서 근무하던 A 검사가 제 방으로 인사를 하러 왔다가 “어제 불법으로 올무를 놓아 산돼지를 잡은 산림법 위반 사건을 수사지휘 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의견대로 압수물인 산돼지를 폐기 처분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한 번도 산림법 위반 사건을 지휘해 본 경험이 없어 지휘 내용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불법 산돼지’를 폐기처분 시켰더니

필자는 초임 시절을 춘천지검에서 보냈기 때문에 산림법 위반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를 많이 해 본 경험이 있기에 그런 경우에는 압수물인 산돼지를 산채로 보관할 수 없으므로 이를 판매한 후 그 대금을 보관하라는 취지의 ‘환가 후 대가보관’ 지시를 하는 것이 옳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A 검사의 ‘폐기 처분’ 지시에 따라 산돼지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경찰은 틀림없이 산돼지를 잡아 산돼지 고기 파티를 하고 산돼지 쓸개는 경찰서장이 먹을 것이다”라고 하였더니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 바로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하여 산돼지 쓸개와 뒷다리 1개는 검찰청으로 보내라고 하자 수사과장은 산돼지 쓸개는 서장님께 드리기로 하였다면서 쓸개와 뒷다리 부위를 챙겨 바로 보내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산돼지 등을 잡기 위해 설치해 놓은 올무. 사진 = 연합뉴스

A 검사는 지청장께 산청경찰서의 산돼지 사건에 대하여 간략하게 보고를 한 후 쓸개와 뒷다리 1개가 오면 뒷다리는 직원들의 회식용으로 주고 쓸개는 지청장께 드리겠다고 하니 지청장은 산돼지 쓸개는 간에 좋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지청장실을 나온 A 검사는 당시 진주지청에 상주하던 소년선도협의회의 B 간사로 하여금 산청경찰서에 심부름을 가서 산돼지 쓸개와 뒷다리를 가져오게 해서 그날 쓸개는 지청장이 먹었고, 산돼지 뒷다리는 검찰청의 일반직 계장들과 여직원들이 근처 식당에서 회식을 하면서 모두 잘 먹고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출근하였더니 A 검사가 부산일보 신문을 들고 제 방으로 쫓아와서 기사를 보여주었는데 사회면의 ‘휴지통’ 난에 실린 기사 내용은 어제 저녁 때 먹은 산돼지에 관한 기사였는데, 내용인즉 그 산돼지는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간이 나쁜 어머니에게 쓸개를 바치기 위해 올무를 놓아 잡은 것인데 경찰은 고민 끝에 아들에 대해 산림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A 검사는 그 신문 기사를 들고 지청장실에 가서 보고를 하였더니 지청장은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면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였습니다. 지청장실을 나온 A 검사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필자는 그 기사를 쓴 부산일보 C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더 이상 취재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신청도 하지 않은 영장이 기각된 사연

C 기자는 그 전에 필자와 제법 안면이 있었던 사이였습니다. 필자가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의 취재를 안 하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C 기자는 흔쾌히 그 정도는 들어드릴 수 있다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걱정이 되어 산청경찰서에 다시 확인하니 산림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이 없다고 하여 이상하게 생각되었으나 재차 B 간사를 불러 만약 언론에 후속 기사가 나고 산돼지 쓸개의 행방이 초점이 된다면 B 간사가 심부름 다녀오던 중 산돼지 쓸개를 몰래 먹었다며 뒤집어쓰기로 약속을 해 두었습니다.

 

춘천지검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다음날 부산일보 ‘휴지통’에 후속 기사가 났는데 ‘효심에 감복한 나머지 진주지청 검사가 산돼지를 불법으로 잡은 아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구속영장이 신청된 바도 없는데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는 기사가 난 것입니다.

C 기자에게 전화를 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면서 구속영장이 신청된 바도 없는데 어떻게 구속영장이 기각될 수 있느냐고 하였더니 경찰이 검찰에 신병지휘를 받을 때 불구속 지휘의견으로 품신을 하면서도 혹시 검사로부터 구속수사 지휘가 나면 거리가 먼 산청경찰서까지 다시 갔다 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구속영장을 기록에 끼워 보내는 관행을 C 기자가 알지 못하고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던 것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0년 전의 일인데도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합니다. C 기자는 진주지청을 떠난 후에 한참 동안 연락이 끊어졌다가 필자가 포항지청의 부장검사로 근무할 당시인 2000년도에 포항에 본사를 둔 ‘신경북일보’가 창간되면서 초대 편집국장으로 부임하였는데 필자가 연락을 해서 만난 자리에서 그때 그 일을 되새기며 한껏 웃은 적이 있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전형적인 검사와 기자 사이에 있었던 검언유착의 사례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오래된 추억으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의 낭만적인 기억이기도 합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김강용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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