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에 ‘문화·예술’을 허해야 하는 이유

이동근 기자 2020.05.21 09:27:29

정부가 지난 7일 ‘게임산업 진흥 종합 계획’을 발표한 이후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는 주로 확률형 아이템 문제나 수출 지원 관련 문제 등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본 기자에게 있어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바로 게임의 문화예술 인정 여부였다.

게임은 우리나라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다루고 있지만, 이제까지 문화예술으로 정의된 적이 없었다. 현재 문화예술진흥법 상 예술로 인정받는 범위는 총 13종으로 문학, 미술(응용미술 포함),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 및 만화다. 그동안 만화와 함께 ‘자라나는 청소년의 적’으로 ‘학부모’ 들에게 인식되다가 만화는 먼저 예술로 인정 받았지만, 게임은 여전히 예술로 인정 받지 못했다.

사실 게임은 예술로서 갖춰야 할 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어 보인다. 정부도 종합 계획안에서 “서사구조, 예술적 영상 및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종합예술이면서, 전통적 예술장르에 부족한 ‘상호작용성(게임사용자의 플레이)’의 요소가 가미된 새로운 문화예술 영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만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다.

 

게임의 종류는 다양하다. 예술적으로 평가 가능한 종류부터, 중독성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종류,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기만 한 게임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게임들을 모두 중독 가능한 위험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에 게임중독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자가 경험한, 대중예술로서 평가받기 충분하며, 중독성이 전혀 없는 해외 게임들을 선정해 보았다. 

위로부터 전쟁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This War of Mine’(디스 워 오브 마인), 아름다운 그래픽과 함께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을 섬세하게 묘사한 ‘Life is Strange’(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소위 ‘힐링 게임’으로 불리며 아름다운 분위기 속에서 ‘소통’을 이야기 하는 게임 ‘journy’(저니), 역시 아름다운 그래픽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퍼즐게임 ‘Monument Valley 2’(모뉴먼트 밸리 2) 출처 = 각 게임 화면 캡처 및 홈페이지


게다가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에서 지난 201년 6월, 판례를 통해 인정했고, 일본은 ’문화예술기본법‘에서 컴퓨터, 기타 전자기기 등을 이용한 예술(미디어 예술)을 포함시켜 놓고 있다. 프랑스도 게임을 문화적 생산물로, 예술적인 표현의 양식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결국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게임을 제대로 법에서 규정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으로 매우 늦은 편이었다. 게다가 당시 게임에 대한 규정 부분도 과거 ‘오락실’이라고 불리웠던 아케이드 게임 위주의 환경을 중심으로 두고 있는데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고, 이후 크게 정부에서 지원을 해 왔다고 보기 어렵다. 게임업계에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을 보며 학부모들은 규제를 원했고, 국회와 정부에서도 이 사업에 대한 규제를 고민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2013년 1월 발의된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과 ‘인터넷 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었다. 이 법안은 게임산업 매출의 1%를 강제징수(순이익이나 영업이익이 아닌 매출의 1%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해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중독유발물질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게임을 당장 예술로 본다고 해서 무언가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화로 당장 분류된다고 해서 뭔가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많은 것을 바뀌어질 것을 희망할 수 있다.

우선 게임을 더욱 세분화해서 볼 수 있게 된다. 무조건 게임은 나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성 있는 게임을 갈라내 육성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즉, 좋은 게임이 만들어 질 수 있는 토대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나 사진, 소설과 같은 분야에서 여성의 나체를 다룰 때 어떤 작품은 예술로, 어떤 결과물은 포르노로 나눈다. 포르노 중에서도 예술로 구분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정부에서도 예술성 있는 작품에 대해, 그리고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에 대해 지원, 육성한다.

이런 것처럼 게임도 작품성 있는 게임과 도박성 등 부정적인 면으로 가득한 게임으로 나누어지고 좋은 게임, 예술성 있는 게임에 대해 지원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좋은 게임들이 나오다 보면 더 양질의 게임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영화에서 ‘기생충’이 나오고, 대중음악에서 ‘방탄소년단’이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따지고 보면 게임은 ‘죄’가 없다. 극단적인 중독성이 문제가 되는 게임이 있을 수는 있어도 모든 게임이 중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질의 게임이 탄생할만한 토양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문제가 있는 게임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임에 대한 시선이 단기적으로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 기자도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언젠가 양질의 게임들이 탄생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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