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절멸 위기 무대공연 살릴 상상력 필요할 때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20.06.12 15:32:55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에는 [‘절벽 너머’ 지원 손길](12~23쪽)을 특집으로 다뤘습니다. 코로나19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힘든 상태지만, 특히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것은 무대공연 관계자들과 일부 농민인데, 이들을 돕는 기업들의 이야기입니다. 농민에 대한 지원책이야 워낙이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가뜩이나 저소득에 시달려온 무대공연인들이 코로나19 탓에 거의 완전하게 밥줄이 끊어진 듯한 양상은 비극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른바 한류와 K팝이 세계를 휩쓴다고는 하지만, 무대공연은 바로 그 현장성 때문에 매스미디어의 지원을 받기 힘들었고, 음악의 경우 ‘인디’로 불리면서 그 독립성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한 독립성의 바탕에는 홍대앞 클럽문화 등이 있었지요. 수십 명 단위의 인원만 모여도 무대공연이 가능했고 경제적 도움도 됐기에 인디 뮤지션들의 밥줄 역할을 한 것이 클럽문화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이 밥줄이 거의 끊길 지경에 이른 게 현재입니다. 연극 등의 무대공연도 마찬가지지요.

앞으로 최소한 몇 년간 코로나19의 영향이 지속된다고 볼 때, 이른바 대형 연예기획사 체제 아래의 연예인들은 어떻게든 이 코로나19 재앙을 뚫고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등장하는 ‘유튜브 유료 공연’ 등을 대형 기획사들이 만들어나갈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대형 기획사들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를 해왔던 인디 뮤지션 등은 클럽무대라는 생계수단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무대란 원래 귀족적, 부자가 지배” 시각 있지만

현재 ‘무대’의 위기는 코로나19 탓에 벌어졌지만, 원래 무대란 게 귀족적-자본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다룬 책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공연은 작품의 선정이나 그것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준비가 부유한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었다.(114쪽)

 

1875년의 영국 옥스퍼드 뮤직홀의 모습. 공연이 이뤄지는 동안 좌석에선 음식과 담소가 이어지는 가벼운 공연 형태다. 

무대 공연이란 게 많은 돈이 드는 생산품인 만큼 고대 그리스 민주 사회에서도 무대 공연만큼은 부자들이 좌지우지했었다는 얘기지요. 박 교수는 또 이런 얘기도 합니다.

어린 채플린과 형은 빈민원과 고아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중략) 1843년 극장법은 연극을 하는 극장과 식사와 음주, 끽연을 하며 연극 대신 다른 노래나 춤, 촌극을 구경거리로 제공하는 뮤직홀을 구별했다. 우리는 흔히 ‘연극과 영화’라고 하여 영화가 연극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이전의 대중오락은 연극이 아니라 뮤직홀의 각종 공연이었음을 주의해야 한다. (‘예술, 정치를 만나다’ 192쪽)

연극은 보다 귀족적이었고, 무대에선 공연이 이뤄져도 객석에선 먹고 마시고가 가능했던 뮤직홀 쪽이 대중적이었고, 뮤직홀 문화가 미국 영화로 이어졌다는 진단입니다. 조용한 가운데 심각하게 무대 쪽을 바라봐야 하는 연극이든, 아니면 가벼운 마음으로 발장단이나 맞추면 됐던 뮤직홀이든, 예전엔 가능했던 여러 무대공연 예술이, 코로나19 세상에서는 모두 다 심각하게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렇다고 “무대예술은 이제 끝”이라고 사망선고를 내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무대예술은 중요한 창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는 저서 ‘자유란 무엇인가 - 공존을 위한 상관자유를 찾아서’에서 이런 소개도 합니다.

창조 계급(Creative Class) … 과학기술, 건축, 디자인, 교육, 예술, 공연 등의 종사자를 말한다.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초에 고용 인구의 약 30%에 해당하는 3800만 명이 이에 속하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의 총액이 전체의 47%인 2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 이질적인 타자를 관용으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상관되는 풍토를 형성한 대도시에 주로 살고 있다.(288쪽)

열거된 창조 계급 중 과학기술, 건축, 디자인, 교육, 예술 종사자는 코로나19 시대에도 활로를 찾아나갈 수 있겠지만, 마지막에 언급된 공연 종사자들은 천직으로 여겨왔던 분야를 떠나야 할 처지입니다. 창조 계급의 존재가 미래 ‘꿈의 사회’에서 중요하다면 이들을 죽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되겠지요.
 

6월 4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야외정원에서 가수 폴킴이, 거리를 두고 앉은 의료진 앞에서 무료공연을 하고 있다. 이런 행태 이외에 실내장소에서의 소공연 등은 현재 거의 완전 중지 상태다.    사진 = 연합뉴스

한국이 ‘꿈의 사회’ 선두주자 되려 한다면

미래학자 짐 데이토 교수(하와이대, 세계미래학회 회장)는 5월 2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김어준 : 교수님은 이미 2004년에 한류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짐 데이토 : 우선 카이스트 서용석 교수가 제 제자였죠. 하와이대학에서 저한테 한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한류라는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구를 해 봤더니 대중문화로 경제 발전을 시킬 수 있다는 걸 아주 잘 이해한 리더십이 있는 최초의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꿈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또 심미적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돈을 벌 수 있고 유명해질 수 있는 길입니다.

김어준 : 그러니까 문화가 생산의 중심에 온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겁니까?

짐 데이토 : 네, 맞습니다. 문화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것이 주가 되는 것이 꿈의 사회입니다.


‘대중문화로 수출-경제발전을 하는 첫 나라’가 한국이었다는 분석인데, 이렇게 대중문화를 수출하려면 기반이 넓어야 하겠지요. 기반이 넓다는 것은 다양성을 의미하며, 이는 곧 ‘지배하는 소수자(방송국 PD 같은)’만이 아니라 ‘누구나’ 대중문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됩니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점은 2000년대에 돈을 퍼부으면서 걸그룹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지원한 JYP엔터테인먼트가 결국 실패를 자인한 반면, 미국 진출을 의도한 적도 없는 ‘토종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이어 최근엔 BTS(방탄소년단)가 SNS를 통한 팬 접근으로 월드스타가 됐다는 점에서도 입증됐지요. 3대 연예기획사의 기획-자금력으로만으로는 부족하며, 다종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예기치 않은’ 성공이 가능해진다는 얘깁니다.

데이토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갖고 있던 상상력에 대한 족쇄를 풀 때가 됐습니다. 이제는 상상력의 족쇄를 풀고 한국이 이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고. 죽어가는 공연계를 살릴 한국인 특유의 빠른 상상력이 곧 동원돼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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