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로봇 맛집'도 사람손님이 있어야 번창한다

윤지원 기자 2020.06.19 15:39:31

1989년 제작된 영화 '백 투 더 퓨처2'에서 묘사된 미래의 무인 레스토랑 모습. (사진 = 영화 화면 캡처)

1980년대 말, ‘백 투 더 퓨처2’라는 영화가 있었다. 장차 태어날 아들이 십대 시절 어느 날 큰 사고를 치고 인생을 망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직 십대 청소년인 아빠가 이를 막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뒤 미래로 가는 이야기다.

미래의 아들이 사고를 치는 곳은 2015년(영화에선 30년 뒤 미래)의 한 식당이다. 그곳엔 터치스크린 모니터가 달린 로봇이 주문을 받고, 계산도 하고 나면 음식이 제공된다. 모니터에는 마이클 잭슨,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 20세기 유명인의 얼굴이 나타나 메뉴를 설명하고, 손님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인간 점원은 아무도 없는 무인 레스토랑이다.

영화에서 대표적인 미래 공간의 모습으로 그려진 이 무인 레스토랑은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도 거의 구현됐다.
 

맥도날드 매장에 설치된 키오스크. (사진 = 한국맥도날드)


맥도날드, 버거킹 등 셀프서비스 시스템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는 알바가 아닌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있다. 햄버거를 주문하면, 음료와 감자튀김을 함께 곁들이지 않겠냐고 권유하기도 한다. 주문과 결제가 끝난 뒤, 내 음식이 카운터에 준비되면 모니터에 내 대기 번호를 알려준다. 많은 경우, 손님과 점원이 마주칠 일은 없다.

CJ 계열 패밀리 레스토랑 ‘빕스’에서는 LG전자가 개발한 로봇이 국수를 즉석에서 말아준다. 공장에서 주로 쓰는 협동 로봇이 닭튀김을 담당하는 치킨집도 있고, 로봇 바리스타가 에스프레소, 카페라떼 등등은 물론 핸드드립 커피까지 완벽하게 내려주는 카페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로봇이 요리하는 모습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예술로 여길 만큼 요리는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행위로, 그래서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고유한 영역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로봇이 음식 맛을 알아?

로봇 기술, 로봇 문화의 발달을 얘기할 때 거의 항상 일자리 논란이 수반된다. 단순 반복 작업,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육체노동 일자리 등은 사람보다 튼튼하고 효율적인 로봇의 몫이 되는 것에 관해서 대체로 많은 이들이 수긍하는 반면, 예술과 문화처럼 창작의 영역에 관해서는 로봇이 이를 대신 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는 사람들이 많다. 요리는 그런 영역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요리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며, 로봇이 요리에 관여한 것은 꽤 오래된 얘기다.
 

LG전자가 개발한 '클로이 쉐프봇'이 패밀리레스토랑 '빕스'에서 고객들에게 줄 국수 요리를 만들고 있다. (사진 = LG전자)


식품 공장이나 대형 식당 주방에서는 오래전부터 로봇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 왔다. 밀가루 반죽을 빨리 대량으로 만드는 기계, 국수를 뽑는 기계, 깨를 볶을 때 타지 않도록 계속해서 저어주는 기계, 고기 써는 기계, 만두 빚는 기계, 아이스크림 머신 등이 다 로봇이다. 모터와 몇 개의 톱니바퀴, 막대(Arm) 같은 간단한 부품들로 구성된 이 주방 로봇들은 벌써 백 년 넘게 사람의 일을 대신해 왔다.

요즘 주방 로봇은 훨씬 복잡한 기계적 구조를 갖췄다. 정교하고 완벽하게 제어되는 구동 장치와 전달 장치를 갖췄을 뿐 아니라 다양한 센서와 그 센서로부터 수집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 처리하는 AI(인공지능) 컴퓨터 장치, 다른 외부 기기와 상호작용하는 5G 통신 장치까지 더해졌고, 그 결과 깨 볶는 로봇보다 몇만 배 더 복잡하고 정교한 커피 핸드드립과 같은 작업들을 요즘 로봇들은 척척 수행한다.

사람의 주방을 로봇이 빼앗는 시대가 결국 오고 마는 것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로봇이야말로 바리스타에 적격

예컨대 카페는 커피라는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한다. 카페건 기업이건 상품을 팔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일 중 하나는 모든 고객에게 똑같은 품질(맛)의 상품(커피)를 똑같은 가격에 제공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료단계부터 소비자가 상품을 만나는 최종 완성 단계까지의 제조 과정을 표준화해야 한다.
 

지난 6월 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0 대한민국 고졸인재 일자리 콘서트'에서 참가 학생들이 한 업체가 소개하는 로봇 바리스타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커피는 대단히 민감한 요리여서, 이 표준화 작업이 아주 골치아프다. 와인과 포도의 관계처럼 커피는 원두 품종에 따라, 재배하는 토양과 기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또 같은 원두라도 볶을 때 불의 화력, 볶는 온도와 시간에 따라, 볶은 뒤 경과한 시간과 보관하는 온도에 따라, 추출하는 방법, 물의 온도, 추출 도구의 온도, 추출 시간 등에 따라서도 아주 다른 맛이 난다.

커피 맛에 예민한 사람은 심지어 물의 미네랄 성분의 차이나 추출 도구의 재질(도기인지, 구리인지 등) 차이에도 반응한다.
 

그런데 언급된 변수 대부분은 온도, 중량, 시간 등등 물리적인 것들이다. 이런 변수들을 최대한 오차를 줄이고, 아주 정교하게 표준화하여 모든 제품에서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려면 정확한 계량이 필수다. 따라서, 사람의 감각과 사람의 동작에 의존하기보다 정밀한 프로그래밍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계(로봇)에게 맡기는 것이 더 정확하다.

커피 업계 한 관계자는 “로봇 바리스타의 핸드드립은 1만 잔을 만들면 1만 잔이 모두 똑같은 맛이 날 것이며 이는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바리스타가 되려는 목표는 접어야 할까

한편, 커피 산업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우리나라의 커피 시장 규모는 7조 원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에 등록된 커피 전문점은 2만 개 정도로 추산되며 커피가 주 메뉴가 아니지만 커피도 판매하는 복합 매장, 레스토랑 등을 포함하면 약 5만여 개 업소에서 커피를 판매한다.

그만큼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높은 소득과는 별개로) 취업이나 창업에 유리해서 많은 사람이 이를 준비한다. 또는 반드시 생업으로 하지 않더라도 단지 커피를 취미로 즐기는 게 좋아서 바리스타 이론과 실기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라떼 아트와 원두. (사진 = unsplash)


그런데 앞에 언급한 것처럼 만들 줄 아는 음료의 종류도 많고, 주문이 아무리 밀려도 실수 없이 신속 정확하게 일을 해내는 로봇 바리스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 이것들은 기술적으로도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심지어 휴일 없이 24시간 1년 내내 혼자 일해도 불만 없고, 지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처음 목돈을 들여 도입하고 나면, 이후 폐기될 때까지 유지관리비는 사람 바리스타 인건비보다 월등히 싸다. 이런 이유들을 보면 바리스타는 장차 로봇으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군에 포함될 것 같다.


하지만, 로봇 바리스타가 결코 넘볼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 있다. 바로 커피의 품질 그 자체인 맛과 향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앞서 말한 제조 공정의 표준화의 목적은 일정한 비용에서 제품의 품질을 최선으로 뽑아내는 것이다. 커피의 품질인 맛과 향을 판단하는 것은 오직 사람의 코와 혀, 그리고 취향과 감각으로만 가능하다.


레시피만으로는 손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손님을 만족시킬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한 각종 물리적 데이터를 레시피라 한다. 이 레시피는 결국 사람이 반복된 시행착오와 판단을 거쳐 결정하고 입력해줘야 한다. 로봇은 그 데이터대로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지만 스스로 판단해서 최적 데이터를 결정할 수는 없다. 로봇 바리스타들이 아무리 수만 잔의 커피를 핸드드립 해도 팔 아픈 줄 모르는 무한 체력을 자랑한다 한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한 사람 바리스타보다 승진할 방법은 없다.

한편, ‘궁극의 레시피’라 할 정도로 맛있는 단 하나의 레시피를 전국 수만 대의 로봇 바리스타에 입력해, 이들이 언제나 동일한 맛의 커피를 판매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에는 인간 바리스타가 천 명이 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백 명도, 열 명도 많다. 모든 바리스타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단 한 명의 바리스타만 존재하면, 모든 소비자가 최고의 커피 맛을 언제 어디서든 구매해서 맛볼 수 있다.
 

한 바리스타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 (사진 = unsplash)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 입맛과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도 컨디션이나 날씨 등 외부 환경에 따라서 그때그때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커피를 즐기는 일은 그저 내 몸에 부족한 성분을 채우기 위한 행위를 넘어 분위기와 컨디션과 정서, 함께 하는 사람과의 교감, 한잔의 커피 앞에 마주하기까지의 과정까지 어우러져야 하는 ‘문화’ 활동이기 때문이다.

전남 목포에 사는 한 커피 애호가는 특정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한 잔의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기 위해 분기에 한 번, 1박 2일 코스로 강원도 강릉까지 가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여정에 동행하는 사람은 단지 교통, 숙박비를 절반 부담하거나, 운전을 교대로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커피 사랑을 이해하고,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 끝에 만난 커피 맛의 기쁨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맛있는 커피’에 있어 커피와 원두보다 까다로운 것이 소비자 입맛과 취향과 유행인 것이다. 전국 최강의 ‘궁극의 레시피’와 소프트웨어가 만렙으로 업그레이드 된 궁극의 로봇 바리스타라고 해도 인간만의 이런 섬세하고 변덕스러운 문화를 대신 창조해낼 수는 없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안의 한 카페 앞 테이블에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플라스틱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손님이 앉아있는 테이블보다 빈 테이블이 더 많다. (사진 = 연합뉴스)


산업 발전하려면 소비력 보장돼야

커피 산업이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이러한 문화가 유지되고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커피 소비자의 저변이 유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 즉, 누구나 언제든 커피를 쉽게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레시피의 커피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좀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는 재미를 느끼고, 그런 요건을 충족시키는 맛있는 커피를 만났을 때의 만족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누릴 수 있는 여유와 자격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한 잔에 4천 원 정도 하는 카페 커피값이 부담스러워서 ‘난 커피 맛을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곤란한 사람들이 많아져선 안 된다. 로봇 바리스타 기술이 발전하려면 이처럼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로봇 바리스타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도 포함해서.

새로운 문물이 등장하거나 세상이 뒤집히면, 당장은 많은 아픔을 겪더라도 결국 그에 맞춰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산업혁명 때 그랬고, 세계대전을 겪었을 때도 그랬으며 코로나19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투장 뒤집듯 한순간에 변하지 않더라도 인류는 반드시 적응해 나갈 것이다.

로봇의 발달로 결국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또 새로운 일자리는 생겨날 것이다. 로봇에 밀려 직장을 잃게 되는 사람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생소한 분야를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사람도, 커피 한 잔 사 마시면서 스트레스로부터 잠시 숨 돌릴 여유를 갖는 게 곤란한 세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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