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동산에도 주식만큼의 리스크(보유세)를 부과해야 평등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20.07.13 13:40:11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부동산 망국병…. 정말 오래 된 이야기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말기인 2007년에 나온 책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김태동, 김헌동 저)의 내용을 보자.

“부동산 거품을 통한 자산의 양극화는 규모가 어마어마하며, 거품이 꺼지지 않는 한 영속될 것이기 때문에 현명한 많은 시민이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 … 외환위기를 일으킨 한나라당도 부동산 거품을 키운 참여정부에 비하면 덜 밉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119쪽)

외환위기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거품이 당시 더 미웠다는 얘기다. 외환위기는 ‘모두’의 위기로 인식됐지만, 부동산 거품은 나 ‘개인’의 위기라고 생각됐기에, 모두를 거지로 만든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나를 거지로 만든 노 전 대통령이 더 미웠다는 얘기다. 물론 IMF 외환위기는 남한인 모두의 피해가 아니었으며, 깨알 재미를 본 한국인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인식됐다는 얘기다.

외환위기보다 더 미운 부동산 급등

결국 참여정부의 많은 업적과 실책 중에서도 부동산 참사가 가장 크게 국민들에게 인식됐고, 그래서 정권을 빼앗겼다는 얘기가 되는데, 참여정부의 뒤를 잇는다는 현 정부 역시 비슷한 실수를 해왔다. 다행이라면 최근 부동산 문제가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1년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다음 대선에서 어떤 주자가 “부동산은 내가 푼다”는 약속을 화두로 정권을 잡을지 기대가 된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부동산 관련 기사(64쪽)와 함께 주식시장에 관한 기사(62쪽)와 기자수첩(78쪽)을 실었다. 코로나19 탓에 위축됐던 마음들이 부동산과 주식이라는 돈 벌이 양대 수단으로 몰리는 양상이다. 헌데,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유독 주식 투자는 위험해 안 되고 부동산 투자는 안전하기에 적극 권장되는 분위기다. 주식 투자에 이익과 리스크가 있듯, 부동산 투자에도 이익과 함께 리스크가 있어야 하지만, 후자는 거의 완전無위험으로 방치-권장돼 있는 건 문제다.

 

미국에도 부동산 투자 가이드북이 있고,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돈을 번 게 부동산 투자였다. 그러나 보유세율이 높은 편이라 저자들은 ‘주의’ 역시 당부한다. 

필자는, 부동산 투기의 나라 한국에서 온 이민자답게 미국에 10년 살면서 미국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미국 땅을 밟은 뒤 가장 먼저 들은 소리 중 하나가 “집 함부로 사지 마라”였다. 돈이 풍족치 않은 상태에서 집부터 샀다가는 1년에 한 번 나오는 보유세를 감당 못해 집을 날린다는 경고였다.

부동산 투자 관련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도 봤지만 미국인 저자는 책 앞머리부터 “주식은 갖고 있어도 ‘보유의 부담’이 없지만, 부동산은 보유 부담(세금, 유지보수 비용)이 발생하므로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경고부터 했다.

이런 조언은 한국에선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여태까지는’. 주식-집 모두 보유 중 이익을 누리고(주식은 배당금, 집은 거주-이용의 권리), 값이 오르면 양도차익을 누릴 수 있다. 단, 주식에는 치명적 위험성이 내재하니 바로 기업의 도산이다.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기에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내 주식은 그냥 휴지조각이 된다. 이런 리스크가 있기에, 주식 보유세-양도세율은 부동산에 비하면 훨씬 낮은 거다.

無리스크 부동산 천국 만든 한국인들

하지만 주식에 이런 리스크가 존재한다면, 부동산에도 이런 리스크가 존재하는 게 맞다. 그래야 주식시장으로 돈이 가고, 부동산으로 돈이 덜 가기 때문이다. 위 책에서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은 이렇게 말했다.

“주가가 오르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요. 기업의 시가총액이 기업의 생산설비를 대체하는 데 드는 비용을 초과하면 기업은 자금을 차입해 설비투자를 늘린다는 것입니다. 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주가가 오르면 보유 자산의 가치가 증가하므로 소비를 늘리게 된다. 부동산도 비슷 … 기존 아파트 가격이 신축 아파트의 토지 및 건축비용을 초과한다면 건설업체는 신규로 더 건설할 인센티브가 생기고 이런 경로로 건설투자가 증가하겠지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무주택자가 많아서인지 주택 등 부동산가격 상승이 소비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 무주택자의 경우는 월세가 오르고 전세보증금이 오르면 세입자의 소비는 오히려 줄겠지요.”(119쪽)

 

CBS 유튜브 화면 캡처. 

주가가 오르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고, 집값이 오르면 소비가 증가하는 게 일반적인 경제 구조인데, 한국은 집값이 올라도 소비가 늘지 않는 ‘자산 양극화’의 나라다.

이렇게 자산 양극화가 극도로 진행된 이유는, 집주인을 너무 우대했기 때문이다. ‘집주인 맘대로 하는 게 원칙’, ‘부동산 세금을 많이 부과하면 안 된다’는 상식을 너무나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교육시켜 왔기에 한국에선 세입자도 집주인 편이 된다.

 

자신의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세입자 권한 강화 법안을 내놓은 박주민 의원. 그의 사무실로는 “평생 세입자지만 집주인 권리 침해말라”는 전화가 왔단다. 사진 = 연합뉴스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1호 법안으로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세입자 권한을 강화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자 의원실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그 중 하나는 “평생 세입자였지만 그래도 집주인의 권리를 너무 침해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니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참여정부 당신 국민 중 극소수가 낼 종부세 문제를 놓고 집도 없는 일반 서민들이 분노를 폭발시킨 장면이, 다주택자는 떼돈을 벌고 세입자는 죽어나가는 2020년 부동산 광풍 속에서 재현되는 현장이다.

주식은 없어도 되지만 집 없으면 노예 되는 나라

김태동 전 경제수석의 책에서 한 문장만 더 인용해 하자. “주식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피해를 보지 않는데, 집을 못 가진 사람은 잘못한 일도 없이 피해를 보는 것, 이것이 주식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가장 큰 차이죠.”(119쪽)

미국은 주식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나라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이란 게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금리 정책에 부동산 정책이 저절로 포함된다. 한국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부동산 개발 이익을 소수의 군부 출신이 독점) 이후 부동산 중심 자본주의가 정립돼 왔고, 항상 부동산 정책이 문제돼 왔다. 한국에서 부동산 없는 사람은 경제적 노예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정권은 교체되며, 민주주의도 없다. “배고픈 사람이 빵 사먹고 싶은데 돈 없어 못 사 먹으면 무슨 자유가 있느냐”는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의 말 그대로다.

집 소유에도 주식 투자만큼의 리스크가 주어져야 하며, 그게 바로 보유세를 미국 수준만큼 인상하는 것이다. 미국 수준으로 부과되는 보유세를 낼 돈이 없는 사람은 집을 내놔야 주택 시장이 정상화되며, 한국 자본주의도 정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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