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기업] 현대차·국현 만났듯 낯선 예술가들 만나 ‘프로젝트 해시태그’

최종 선발 2팀 강남버그·서울퀴어콜렉티브, 강남과 종로 주제 작품 공개

김금영 기자 2020.08.01 08:55:55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자동차가 차세대 창작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모사업의 첫 결과물인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전을 공개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미술, 건축, 디자인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창작자가 만났다. 이 연결고리를 만든 건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자동차다.

예술 지원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자동차가 또 손을 잡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자동차의 협업은 예술계에서 이미 유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가 2014년부터 매년 이어져 왔다.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국내 중진작가에게 대규모 신작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로, 그간 이불,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최정화, 박찬경 작가가 이 시리즈를 거쳐 갔다.

 

강남버그 팀원인 (왼쪽부터) 이정우, 김나연, 이경택, 박재영.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이 가운데 이번엔 새로운 형태의 지원을 시도했다. 그간의 예술 후원이 미술 작가를 중심으로 개인 또는 팀을 지원했다면, 이번 공모는 서로 다른 분야의 작가, 기획자, 연구자 등 다학제적 영역의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형태의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한다. 즉 꼭 미술 분야에만 한정짓지 않는 것.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약 2년간의 준비를 거쳤으며 기획 단계부터 현대자동차와의 협력이 이뤄졌고, 그 첫 결과를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전에서 공개했다.

이는 예술 지원 범위를 확대함과 동시에 차세대 미술을 이끌 보다 색다른 작품과 유망 작가 탄생을 도모하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실제로 이번 공모에서 만난 창작자들은 서로 처음 만난 사람들로 구성됐고, 전체가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의 관심사와 전문 분야를 공유하면서 다학제간 협업이 이뤄졌고 흥미로운 결과물을 도출해냈다.

 

서울퀴어콜렉티브 팀원인 (왼쪽부터) 김정민, 남수정, 권욱.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일단 이번 공모사업의 성격은 이름 ‘프로젝트 해시태그(PROJECT #)’에서도 드러난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이사빈 학예연구사는 “올해 첫 론칭한 공모 명칭 ‘해시태그(#)’는 샵(#), 우물 정(井), SNS용 표기 등 세대, 용도, 국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사용되는 특수 기호를 활용해, 다양한 영역의 유망주를 선발하고 국제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뜻을 담았다”며 “첫 공모를 시작으로 5년 간 2팀씩 총 10팀을 선발해 창작 지원금과 작업실, 해외 진출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첫 공모에서 다양한 영역의 지원자 203팀 중 디자이너, 건축가,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강남버그(이정우, 김나연, 박재영, 이경택), 그리고 서울퀴어콜렉티브(권욱, 김정민, 남수정, 정승우)가 최종 선정됐다. 현대자동차가 두 팀에 각 3000만 원씩의 창작 지원금과 작업실, 해외 진출 등의 기회를 지원한다. 또 창작자 간의 협업을 통한 독창적인 창작 과정을 독려한다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려 현대자동차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ZER01NE)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교육 중심지인 강남의 1990년대 미대 입시를 풍자한 ‘천하제일 뎃생대회’.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강남버그의 이정우, 서울퀴어콜렉티브의 권욱 작가는 “한창 작업에 몰두할 시기에 코로나19 사태로 불명확해진 전시 일정들이 많았다. 이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자동차의 도움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할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감사하다”며 “많은 시행착오 속 팀이 결성됐는데 이 시행착오조차 좋은 경험이 됐다. 1년여 의 결과물을 공개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 강수정 전시1 과장은 “현대자동차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재능 있는 젊은 예술인을 돕는 취지에 공감해 국립현대미술관을 통해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관 공간과 큐레이팅을 도맡고, 현대자동차가 물질적 후원에 힘쓴다”며 “이 후원을 바탕으로 미술관 공간을 벗어나 곳곳의 현장을 누비며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이번 ‘해시태그’ 프로젝트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남 지역을 관광투어 상품으로 상정해 버스 투어 이벤트를 벌인 ‘강남버스’ 영상. 사진 = 김금영 기자

 

‘누구나 살고 싶어 하면서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강남
종로3가의 일상에서 배제되기 시작한 ‘도시 퀴어’

 

건축가들이 설계했으나 실현되지 않은 계획들, 혹은 이미 철거돼 설계도와 사진만 남은 건축들을 모은 ‘마취 강남’ 작업. 사진 = 김금영 기자

강남버그와 서울퀴어콜렉티브는 형식과 경계를 허물고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협업 아이디어로, 각각 ‘강남’과 ‘종로3가’라는 특정 지역을 소재로 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지역은 다르지만 접근 방식에서 공통 분모가 느껴진다. 개인의 경험으로서 그리고 일반적인 집단이 인식하는 지역으로서 동시에 접근하며 여기서 느껴지는 이질감 또는 공감 코드에 주목했다.

강남버그는 강남을 ‘누구나 살고 싶어 하면서도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곳’이라 정의했다. 이 역설적인 특징을 일종의 오류(버그)로 간주하고 강남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통해 동시대 한국사회 주요 쟁점을 관찰한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초고층 빌딩의 꼭대기에 드론을 띄워 보내 영상 촬영을 시도한 ‘오르고 또 오르면’ 화면. 사진 = 김금영 기자

전시의 처음을 장식하는, 사람들이 직접 그린 석고 소묘를 쫙 나열해 놓은 ‘천하제일 뎃생대회’는 씁쓸한 웃음이 터지는 현장이다. 사교육 중심지인 강남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미대 입시의 필수 과제 중 하나였던 석고소묘를 2020년에 재현한 것. 다만 1990년대 미대 입시에서 석고상을 빛과 주변 환경에 관계없이 그려낼 수 있도록 그림까지 외우는 ‘암기식 수업’을 시켰다면, 이번 뎃생대회 참가자들은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주어진 시간 내 석고상을 자유롭게 그렸다. 그래서 똑같은 대상을 그렸어도 그림 속 석고상의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패션 감각을 드러내는가 하면 코로나19 사태를 반영한 듯 얼굴에 비닐캡을 쓴 석고상도 보인다.

강남 지역을 관광투어 상품으로 상정해 버스 투어 이벤트를 벌인 ‘강남버스’ 영상엔 흥이 넘친다. 6월 25일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시작으로 청담동과 대치동, 구룡마을 입구, 강남역으로 이어지는 코스에 강남버스가 등장했다. 버스는 4개 지점에 정차했는데 이때 배우, 노래강사, 워킹맘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가이드가 탑승해 강남의 특정 지역과 연관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버스에 탑승한 관객이 창밖으로 보이는 강남의 실제 풍경과 가이드의 개인적인 이야기, 그리고 자기 자신이 경험한 강남에 대한 기억과 인식을 바탕으로 ‘강남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을 곱씹어보도록 이끌었다.

 

서울퀴어콜렉티브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발간한 책 ‘타자 종로3가/종로3가 타자’이 전시장에 설치된 모습. 사진 = 김금영 기자

이밖에 아직 지어지지 않은 초고층 빌딩의 꼭대기에 드론을 띄워 보내 영상 촬영을 시도한 ‘오르고 또 오르면’, 건축가들이 설계했으나 실현되지 않은 계획들, 혹은 이미 철거돼 설계도와 사진만 남은 건축들을 모은 ‘마취 강남’도 소개된다. 197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개발된 강남을 기회의 장으로 바라봤을 건축가들이 어떤 생각을 펼쳤을지, 강남과 관련된 다양한 건축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서울퀴어콜렉티브는 2016년부터 본격화된 종로3가 일대의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밀려난 소수자들의 문제에 주목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들은 종로3가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그러나 어느 순간 도시 미관을 해치는 존재로 여겨진 노숙자, 빈민 노인, 성매매 여성 등 소수 집단들을 ‘도시 퀴어’라고 명명하며, 이들을 일상 속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타자의 연대기’ 그래픽 설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역사와, 종로3가로 대변되는 타자들의 역사를 나란히 배치해 놓았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 제안 방식으로 세미나, 책 출판, 참여형 웹사이트 설계, 그래픽 설치 등을 내놓았다. 먼저 세 차례의 세미나를 진행했다. 첫 세미나는 ‘도시기록과 사회참여’(2019년 11월 22일), 두 번째 세미나 ‘퀴어-공간, 기록하기?!?’(2019년 12월 1일), 세 번째 세미나 ‘걷기-말하기-듣기’(2020년 5월 23일, 유튜브 채널 생중계)를 통해 서울에 존재하는 성소수자의 공간과 그들의 일상, 서울의 특정 공간을 살아온 개인의 경험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발간한 책 ‘타자 종로3가/종로3가 타자’는 ‘도시의 특정 공간을 어떻게 정당하고 온전하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나름의 유효한 방법을 찾으려는 서울퀴어콜렉티브 노력의 결과물이다. 책은 종로3가를 새롭게 해석한 시각 자료들과, 이 공간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이 보행의 체험을 재현하고 기록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전시장에 함께 설치된 ‘타자의 연대기’ 그래픽 설치를 통해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역사와, 종로3가로 대변되는 타자들의 역사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거대서사 속 타자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위치시킬 수 있는지 파악해보려 시도한다.

 

서울퀴어콜렉티브의 전시 공간엔 곳곳에 화면이 설치됐다. 이 화면을 통해 글이 나오고 이 글을 읽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참여형 웹사이트 형태의 ‘평평하게 겹쳐진’이 전시장에 구현된 형태는 흥미롭다. 어두운 전시장에 설치된 화면에 끊임없이 글이 나오고, 그 화면 뒤로 이 글을 읽는 목소리가 전시장에서 겹쳐지며 공명한다. 이는 종로3가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참여형 웹사이트를 통해 수집한 “나의 종로3가는 00이다”라는 많은 목소리들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웹사이트를 통한 결과물은 ‘당신은 어떤 궤적을 그리고 계신가요?’에서도 볼 수 있다. 나이와 젠더를 입력한 뒤 태어난 곳과 현재 사는 곳, 그리고 다양한 사회활동이 이뤄지는 곳들을 지도상에 표시해 개인의 삶의 궤적을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다. 특히 젠더 퀴어 참여자들의 동선을 통해 이들의 삶과 활동이 특정한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학예사 전시투어’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사회가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다. 이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새로운 공모형 후원 사업을 선보이게 돼 기쁘다”며 “이번 전시가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협업을 독려하고, 차세대 예술을 적극 지원하는 미술관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퀴어콜렉티브는 참여형 웹사이트를 통해 모은 종로3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들을 전시장에 글과 소리, 연대표 형태로 끌어온다. 사진 = 김금영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문화경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