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차박의 쌉쌀한 추억과 희망사항들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20.07.31 11:43:19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현대자동차가 화물차 ‘포터’를 개량한 캠핑카 ‘포레스트’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그래서 이번 호 ‘문화경제’는, 한국의 완성차 메이커 중에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캠핑카를 내놓은 현대자동차의 얘기와 함께, 민간 전문가들이 시판 완성차를 개조해 캠핑카를 만들어내는 경우(르노자동차의 마스터, 기아차의 레이 등)를 ‘차박 시대’라는 제목으로 엮어봤다(14~21쪽).

필자에게는 차박(차에서 숙박)과 관련해 바보 같은 추억이 있다. 한국에서 ‘차박’이라고 하면 거실과 침실 공간을 각각 갖춘 대형 모터홈(흔히 캠핑카로 불리는)에서 자는 것부터 경차 레이에 몸을 눕히는 소형 차박까지 온갖 형태가 현재 나오고 있지만,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차에서 잔다”라고 하면 ‘움직이는 집’이랄 수 있는 모터홈(motor home)이 일반적이었다.

2000년대 미국에 머물면서 사진 찍기를 즐겼던 필자는 “가장 아름다운 영상은 새벽 해뜨기 전후 1시간”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차박에 대한 계획을 착착 진행했었고, 급기야 당시로서는 고급 기술이랄 수 있는 운전석과 조수석 분리 온도자동조절 장치(온도를 세팅해 놓으면 차가 알아서 그 온도를 유지해주는)까지 갖춘 미니밴을(대형 트럭인 모터홈보다는 기동성이 좋다는 이유로), 당시 필자의 경제 사정엔 무리다 싶을 정도로 비싼 값에 사들여 놓고는 드디어 7월 말을 맞아 오클라호마 주의 이름도 아름다운 산속 계곡인 블루 리버(Blue River)로 난생처음 차박을 떠났었다.

안전을 기한다고 모터홈 캠핑장에 차를 대놓긴 했지만, 막상 잠을 자려니 영 잠이 오질 않았다. 미국인들이 이용하는 모터홈은 자체 발전기를 갖추고 있기에 낮에 충전한 배터리로 조명과 냉방을 하는 듯했지만, 필자 혼자만 그 사이에 미니밴을 몰고 들어가, 그것도 더운 한여름 밤이었던 만큼 엔진을 멈추지 않은 채로 붕붕거리면서 자동온도조절장치를 가동시키고 있는 것도 민폐인 것 같아 엔진을 멈추니 더워서 잠은 더욱더 안 오고….
 

현대자동차가 내놓은 ‘포레스트’ 캠핑카 모델. 사진 = 윤지원 기자

블루 리버 첫 차박의 잠 못 든 밤

결국 몇 개월 간의 준비와 낭비 끝에 장만한 차박 장비는 이 첫날 밤의 처절한 잠 못 이룸과 함께 “나에게는 영원히 불가”한 노는 방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추억을 갖고 있는 필자에게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차박’이란 단어가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거론되기 시작했으니 관심이 안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관련 내용을 훑어보니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았다. “차박이 너무 좋다. 자연과 최대한 가까이서 경제적으로 숙박할 수 있다”는 예찬론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는 “몇만 원만 주면 안전하고 편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불편하고 위험한 차박을 하려 드느냐”는 ‘필요 없음’론이 있었다. 미국에서 낯선 환경에 떨며 잠 못 이룬 바 있는 필자는 당연히 후자의 ‘차박은 무슨?’론 편이다.

필자는 차 안에서 숙박할 생각은 현재로선 거의 없지만, 그래도 포털이나 유튜브에 차박 관련 내용이 뜨면 들여다는 본다. 차에서 잘 생각은 없지만 차에서 사무를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기 때문이다. 이른바 ‘모바일 오피스(움직이는 사무실)’이다.

닛산UK의 앙증맞은 전기차 모바일 오피스

영국 닛산(Nissan UK)는 지난 2018년 닛산의 소형 밴 모델인 NV200의 전기차 모델에 책상과 커피 머신을 갖춘 모바일 오피스 모델 ‘e-NV200: WORKSPACe’를 선보인 바 있다. 스튜디오 하디(Studio Hardie)라는 디자인 업체와 협력해 만들었다는데, 차벽에 수납된 컴퓨터 책상을 끄집어내고, 단추를 누르면 커피 머신이 스르륵 위로 올라와 커피를 내려주는 장비 등을 갖췄다. 컴퓨터 하나만 들고 여기저기를 누비며, 그 어느 곳이든 바로 작업장으로 바꿔버린다는 이른바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이 21세기를 리드하는 직종이 될 거라는 예상이 나왔었는데(현재로선 코로바19 탓에 아련한 과거의 유행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는 딱 맞는 아이디어 차량 같았다.

 

닛산UK가 2018년 공개한 e-NV200-WORKSPACe 모델. 컴퓨터 책상과 커피 머신, 그리고 자전거 등이 앙증맞게 설치돼 있다. 사진 = 닛산UK

일본의 혼다자동차도 지난 2015년부터 박스카 N을 활용한 캠핑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경차 레이의 뒤에 마치 조립 로봇처럼 딱 달라붙어 조립되는 트레일러를 ‘N-캠프’ 차로 소개하는 격이다.

일본에 이런 소형 캠핑카(대형 모터홈보다 운전하기가 편한) 모델이 나오는 것은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1947~48년생)들의 은퇴가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6년부터 대거 출생하기 시작해 기억하기 쉽게 ‘46년 개띠’라고 불리는 반면,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 출생하기 시작해 ‘58년 개띠’라고 불린다. 정년 연한이 늦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58년 개띠를 대표로 하는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가 이미 시작됐고, 코로나19 탓에 자동차 여행이 인기를 끈다고 하니, 잠을 자는 차박이건, 또는 차에서 일을 보는 모바일 오피스건, 다양한 모델이 나와 전국 어디든 내 집, 내 사무실처럼 쉬고 일하면서 생산성을 올리는 시대가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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