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밀레니얼·Z세대, 소비 → 집·주식 지나 ‘탁 쳐내는 정치’까지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20.08.28 10:12:48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 ‘문화경제’는 MZ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마케팅 사례들을 다뤘다(12~23쪽). M세대(밀레니얼 세대, 1980~2004년생)와 Z세대(1995~2004년생)를 합쳐서 MZ세대라고 부른단다. MZ세대는 독특한 소비 취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박종훈 KBS 경제부장은 책 ‘밀레니얼 이코노미’(2019년 발간)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만이 알아보는 어떤 취향이 대중에게 번지는 걸 보는 순간 오히려 그걸 그만두죠. ‘휘소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희소가치가 아니라 휘소가치, 즉 휘발되어버리는 가치를 더 선호하죠.(174쪽)

이전 세대가 ‘남들이 사는 걸 나도’ 샀다면, 밀레니얼 세대 이후는 ‘남이 안 사야 산다’니, 기업들이 이에 맞춘 마케팅에 적극 나서는 것도 당연하다.

필자 등 이른바 386세대가 MZ세대를 보는 시각 중 하나로 “소비만 하는 젊은이들”이란 게 있다. 전철간에서 젊은이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뭔가를 사들이는 행동을 하는 걸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박 부장은 같은 책에서 이렇게 썼다.

 

(2003년과 2016년을 비교하면) 부모 세대가 소비를 14%P 줄이는 동안 자녀 세대의 소비는 6%P밖에 줄지 않았어요. 그러니 기성세대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가 많아 보이는 ‘착시’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밀레니얼 세대는 일단 음주에 많은 돈을 쓰지 않습니다. 인맥 관리도 별로 안 하고요. (중략) 기성세대들이 쓰지 않았던 분야에 돈을 쓰는 모습만 보고 밀레니얼 세대가 자신들보다 돈을 많이 쓰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기성세대가 온갖 술자리에서 탕진했던 돈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기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는 이전 세대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169~170쪽)

마르크시즘이라는 ‘절대진리’를 맹신했던 세대

과거 386, 486, 586이라고 불린 기성세대들 중 일부는 젊은 시절에 소수지만 ‘혁명’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들이었고, 마르크시즘적인 사회경제 중시 학풍이 세계 학계를 지배한지라, 술자리에 모여 앉으면 되도않는 혁명 논쟁으로 날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후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세계가 소비사회로 바뀐 현재, 기성세대든 MZ세대든 ‘소비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진실이기는 하다.

물론 최근 특히 M세대가 크게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각오가 특히 30대에서 넘쳐난다. 그래서 ‘영혼까지 끌어당겨(영끌)’ 집을 사고, 주식을 사는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주식이라는 게 누군가 잃는 돈을 누군가가 버는 제로섬 게임이고, 특히 부동산은 중장년 소유의 물건을 값이 많이 오른 상태에서 30대가 영끌로 사들이는 것인지라, M세대로부터 중장년층으로의 또다른 ‘부(富)의 이전’이 될 수도 있으니 영 개운치가 않다.

늙은 세대로서 젊은 층을 볼 때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은, “이들은 왜 정치 운동을 않나?”라는 게 있다. 이를 필자와 동세대인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청년층의 정치 참여를 기성세대가 이끌어줘야 하지 않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유 작가는 “끌어주긴 뭘 끌어줘요? 그냥 밀고 들어오면 돼요. 밀고 들어와서 우리를 밀어내면 돼요”라고.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면, 우리 세대는 그런 식으로 꼰대들을 밀어낸 경험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했던 유신정권, 군부독재 등을 떠올려보자. 1980년 광주 학살 뒤 한국에선 80년대에 이른바 ‘3S’라 하여 섹스 산업, 스포츠(프로야구), 스크린(컬러TV의 도입)이 흥청망청했다, 물론 80년대 후반이 되면서 대학가에 주사파가 생기고 최루탄 냄새가 빠질 새가 없게 바뀌었지만.

국민과 대학생 대다수는 전두환 치하의 호황 아래서 3S를 즐겼지만, 극소수의 대학생 과격파는 목숨을 던지는 투쟁을 시작했다. ‘투신조’를 만들어 대학 도서관 옥상에서 대낮에 투신자살하는 살떨리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나심 탈레브의 책 ‘스킨 인 더 게임’에는 ‘단단히 뭉친 소수’가 얼마나 무섭고 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분석이 자세히 나와 있다(126~151쪽).

그 한 예가 바로 무슬림과 유대인이 먹는다는 할랄-코셔 음식에 대한 분석이다.

 

영국의 경우, 현재 무슬림 신자는 전체 인구의 3~4퍼센트 정도인데, 영국에서 유통되는 육류의 상당 부분이 할랄이다.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 수입되는 양고기의 70퍼센트 정도가 할랄이고, 영국 내 서브웨이(미국 샌드위치 브랜드 — 편집자) 점포의 10퍼센트는 무슬림 소비자들을 감안해 돼지고기를 취급하지 않는다. 무슬림 율법을 위해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매출을 기꺼이 포기한 것이다.(126~127쪽)

3%는 되는데 왜 34%는 안 되는지…

인구의 3~4%에 불과해도 그들이 물러서지 않는 원칙을 고수한다면, 무관심한 국민 대다수가 할랄 고기를 먹게 된다는 이야기다. 1970~80년대에도 그랬다. 1979년 YH무역 여성 노동자 170여 명의 야당 신민당사 농성이 박정희 유신독재를 끝장내는 단초를 열었고, 대학생 전체의 0.00몇%에 불과했을 투신조가 대학 분위기를 살벌하게 바꾸면서 총칼을 든 군부독재가 무너졌다.

영국 국민의 3~4%인 무슬림이 영국의 육류 시장을 바꿔버렸다는데, 작년 통계청 기준으로 국민의 34%라는 MZ세대는 왜 유시민 작가 같은 장년층에게 “우리를 키워줘요”라고 공손히 부탁만 하고 있는지 필자에겐 잘 이해가 안 된다.

한국 청년층의 경제적 곤궁(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도 큰 문제지만, 노년층의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고 그래서 65세 이상 노년층의 자살률이 청년층의 10배나 된단다. 이렇기에 장-노년층은 절대로 일자리를 청년층에 자진 양보할 리가 없다. 최근 이뤄진 ‘은퇴 연령 미루기’ 법제화는 결국 노년층을 위한 것이며, 장-노년층이 일자리에 오래 머무를수록 청년층의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고분고분한 일본의 1970년 이후 태생들이 아버지 세대를 밀어내지 못해 1990년대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최근까지도 알바 시장을 전전했다는 이야기(‘밀레니얼 이코노미’ 144쪽)는 과연 물 건너 이야기에 불과한가?

그래서 묻고 싶다. 유시민의 말대로 “기성세대를 탁 치고 밀어낼, 청년층 중 극소수의, 똘똘 뭉쳐 양보하지 않을 정치적 소수는 정말 불가능한가?”라고. 소비 → 돈벌기를 지나 정치까지 가야 ‘강하고 부유한 차세대’가 태어날 것이고, 그런 차세대 없이 이 나라의 발전은 멈출 수밖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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