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예술을 대하는 신세계·롯데·현대의 자세

백화점 내·외부 작품 설치 및 새 영역 확장까지

김금영 기자 2020.09.22 14:50:19

최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갔다가 기시감이 들었다. 매장과 매장 사이, 걸어 다니는 통로 곳곳에 예술 작품들이 설치돼 있었다. 비슷한 느낌을 어디서 받았나 했더니 지난해 10월 방문했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의 ‘아트 바이 더 현대’ 프로젝트 현장이 떠올랐다. 또 롯데백화점 본점을 걷다가 마주했던 예술 작품들의 향연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쇼핑 공간이 예술을 품으며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지금이야 백화점 공간에 예술 작품을 설치하는 게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품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만 보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있었다. 소중하게 보관해야 하는 작품이 많은 사람이 오가는 대중적인 쇼핑 공간에 들어서는 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처음엔 굉장히 이색적인 현장이 연출됐다.

예술 작품 전시장으로 변한 신세계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3층 명품 매장이 새롭게 리뉴얼하며 ‘아트 스페이스’로 거듭났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과거부터 현재까지 예술 작품을 쇼핑 공간에 들여놓는 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대표적으로 신세계, 롯데, 현대다. 현장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특징이 발견된다. 먼저 신세계는 쇼핑몰 내부를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별마당 도서관이 있다. 강남의 핫플레이스로 불렸다가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입지가 흔들렸던 코엑스몰을 되살린 공간이기도 하다.

2016년 한국무역협회로부터 위탁 운영권을 따낸 신세계프라퍼티가 총 면적 2800m²에 달하는 넓은 공간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2017년 별마당 도서관 개관 이후 1년 차엔 약 2100만 명, 2년 차엔 약 2400만 명 이상이 코엑스몰을 찾았다. 별마당 도서관의 부흥엔 예술의 영향도 있었다. 지난해 개관 2주년을 맞아 도서관 중심부를 젊은 아티스트의 작품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열린 아트 공모전’을 시작했다. 널찍한 공간을 그냥 방치하기보다 대형 작품을 설치하면서 작가 지원의 취지도 살리고, 사람들에겐 볼거리를 제공했다. 새로운 작품이 설치될 때마다 별마당 도서관은 포토 스팟으로 인기를 끈다. 현재는 이은숙, 성병권 작가의 ‘빛의 도시(CITY OF LIGHT)’가 설치돼 있다.

여기에 올해 신세계는 강남점 3층 명품 매장을 ‘아트 스페이스’로 꾸리며 쇼핑 공간에 예술 아우르기 확장 움직임에 나섰다. ‘아트 스페이스’는 ‘아트 바이 더 현대’와 비슷한 느낌을 줬다. 다만 작품이 설치된 공간에 각각의 테마를 상징하는 색깔의 아트월을 세워 각각의 작은 갤러리를 만든 것 같은 연출이 돋보였다. 백화점 내부 공간에서 예술을 통해 고객에게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였다.

건물 자체가 예술이 된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촌점 유플렉스는 건물 외관에 설치된 대형 디지털 사이니지에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 = 현대백화점

지난해 ‘아트 바이 더 현대’ 1회를 선보였던 현대는 올해엔 백화점 외부에서의 예술에 집중한 모양새다.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이 7월 현대백화점 신촌점 외관을 채운 3D 고래 미디어아트 작품이다. 미디어아트 작품이 노출된 디지털 사이니지는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크기가 특징이다. 삼성동을 방문했을 때도 광고 및 미디어아트가 노출되는 디지털 사이니지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건물 외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체되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미디어아트는 트렌디한 감각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었고, 현대백화점 신촌점, 무역센터점은 새로운 포토 스팟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내부 전시 공간의 한계를 벗어난 언택트 전시도 진행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5층에서 운영중인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을 통해 해외 유명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말도 안 돼! 노 웨이!’를 오디오 VR 전시 콘텐츠로 선보였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현장을 직접 둘러보듯 360도 회전하는 영상과 전문 큐레이터의 요약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밖에 예술 관련 워크숍과 봉사 활동도 언택트로 진행하는 등 현대는 올해 내부 공간을 벗어난 예술에 힘을 쏟았다.

롯데, 아트슈머 포용하는 콘텐츠 확장에 집중

 

롯데제과 나뚜르는 ‘장 미쉘 바스키아’ 컬래버레이션 제품 3종을 8월 출시했다. 사진 = 롯데제과

롯데는 쇼핑 공간 내·외부를 넘나들며 다양한 예술 전시를 열어 왔다. 백화점 본점을 비롯해 광복점, 잠실점, 광주점, 인천터미널점에 롯데갤러리를 운영하고, 각 지점에 전시 전문 기획팀도 꾸렸다. 전시가 열릴 때마다 간담회를 열며 예술 알리기에도 가장 적극적인 모양새다. 2018년엔 400평 규모의 롯데뮤지엄을 롯데월드타워 7층에 개관했고, 10월 대규모 기획전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 개막을 앞뒀다. 전시가 열릴 때마다 관련 아트 상품도 적극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롯데뮤지엄에서 스누피 달착륙 50주년 특별전이 열렸을 당시 롯데칠성음료, 엔제리너스 등이 관련 아트 상품을 내놓았고, 올해 8월엔 롯데제과 나뚜루가 장 미쉘 바스키아 작품을 제품 디자인에 접목한 컬래버레이션 제품 3종을 출시했다.

석촌호수에서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다. 롯데는 2014년 공공미술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의 대형 설치물 ‘러버덕’을 시작으로, 미국 출신의 공공미술 작가 프렌즈위드유의 ‘슈퍼문’(2016),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다시 참여한 ‘스위트 스완’(2017), 카우스 작가의 ‘홀리데이 코리아’(2018), 스티키몬스터랩의 ‘루나 프로젝트’(2019)까지 대형 설치 작품을 석촌호수에 띄웠다. 러버덕 프로젝트에 약 500만 명, 슈퍼문 프로젝트에 약 591만 명, 스위트 스완 프로젝트에 약 650만 명의 발길이 이어졌고, 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석촌호수 인근의 롯데월드몰, 롯데월드타워로도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롯데몰 광명점은 미술품 렌탈, 예술 마케팅 및 투자에 관심 있는 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 미술품 렌탈숍 ‘아트노믹스 갤러리K’를 입점시켰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를 통해 단순 상품을 파는 게 아닌,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복합 문화 기업으로서의 색깔을 구축한 롯데는 올해 미술품 렌탈숍까지 범위를 넓혔다. 6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을 롯데몰 광명점으로 전환하면서 ‘복합 쇼핑 문화 공간’을 주요 콘셉트로 내세운 가운데 미술품 렌탈숍 ‘아트노믹스 갤러리K’(이하 갤러리K)도 입점시켰다.

 

기존 롯데갤러리가 작가의 작품 세계 및 전시 관람에 집중했다면, 미술품 렌탈숍은 예술이 어떻게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으로, 미술품을 렌탈하는 게 주요 목적이거나, 예술을 활용한 마케팅 및 투자에 관심 있는 이들을 겨냥했다. 관련해 롯데몰 측은 “롯데몰 광명점으로의 전환 시기 고객의 쇼핑몰 체류 시간을 증대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입점시키는 데 집중했다”며 “특히 아트슈머(Art+Consumer, 소비 활동을 통해 문화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소비자층)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선제적 공간을 도입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쇼핑 공간 자체를 활용한 예술, 쇼핑 공간 바깥에서 관심을 끌어들이는 예술, 아트슈머를 집중 타깃으로 내세운 콘텐츠 범위 확대까지, 이렇듯 닮은 듯 또 다른 형태로 쇼핑 공간엔 예술이 끼어들고 있다. 단순 물건을 사는 게 아닌, 그 공간의 감성까지 소비하는 이 시대에 앞으로 쇼핑과 예술의 조화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어떤 효과를 낼지 꾸준히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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