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에 불붙은 '차박' 마케팅, 코로나 불황 돌파구 될까

현대차, 차박 플랫폼 '휠핑' 론칭 … 새 차 광고도 "차박 돼" 어필

윤지원 기자 2020.09.28 06:55:44

코로나19 국면에 한국 완성차 업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개별소비세 혜택의 인하 폭이 줄어들자 내수 판매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완성차 업계는 한풀 꺾인 내수 실적 회복을 위해 올해 가장 뜨거운 트렌드로 부상한 ‘차박’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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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인구의 증가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차박'이 2020년 막강 트렌드로 부상했다. 현대자동차는 손쉬운 차박 체험을 위한 전용 플랫폼 ‘휠핑(Wheelping)’을 선보인다. (사진 = 현대자동차)


코로나19가 만든 대세 트렌드 ‘차박’

가을이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하지만 여행지를 함부로 찾을 수 없는 시절이다. 코로나19 때문이다.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지들이 상대적으로 부상하긴 했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밀폐, 밀접, 밀집의 ‘3밀(密)’을 피해야 하는 전염병 시대에는 유명 관광지도, 호텔, 모텔 같은 숙소도, 현지 맛집도 맘 놓고 방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답답한 집을 떠나 자연을 즐기되, 낯선 이들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고 나 혼자, 또는 내 가족끼리만 먹고 잘 수 있는 ‘안전한’ 여행이 캠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왔던 캠핑 관련 시장이 올해 더욱 급격히 성장한 것은 그래서다.

아울러 ‘언택트’(untact, 비접촉) 일상을 위한 지혜로운 해결책으로 부상한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개념이 더해진 ‘차박’(車泊)이 더욱 각광 받고 있다. 지난 2월 시행된 개정 자동차 관리법을 통해 캠핑용으로 개조할 수 있는 차종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면서 차박 관련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됐다.
 

인스타그램에서 '차박캠핑'을 검색하면 10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사진 =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네이버 카페 '차박캠핑클럽'의 회원은 2월에 약 8만 명에서 9월 24일 기준 18만 명을 넘겼다. 사진은 23일 카페 메인 화면. (사진 = 웹페이지 화면 캡처)


올해 차박의 엄청난 인기는 여름 휴가철이 끝난 뒤에도 식을 줄 모른다. 그리고 그 인기는 숫자로 쉽게 입증된다.

인스타그램에서 ‘#차박’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의 개수는 지난 8월 말 기준 약 16만 9천 개에서 9월 24일에는 약 19만 9천 개로 4주 만에 3만여 개 늘어났다. #차박캠핑 해시태그는 같은 기간 약 8만 8천 개에서 10만 2천 개로 늘었다.

네이버 카페 ‘차박캠핑클럽’의 회원 수는 코로나19 사태 발생 초기인 2월에 약 8만 명 정도였지만 현재는 약 18만 명에 달하고, 하루 방문자 수는 5만 명이 넘는다.

방송가도 차박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JTBC가 지난해 여름 방영한 ‘캠핑클럽’과 tvN이 올해 여름 방영한 ‘바퀴 달린 집’이 리얼리티 관찰 예능의 공간으로 캠핑카를 선택했다면, KBSjoy가 최근 방영을 시작한 ‘나는 차였어’는 아예 캠핑용 자동차와 개조 관련 정보를 직접 다루는 본격 ‘차박 예능’이다. KBS의 장수 프로그램 ‘다큐3일’도 지난 7월 차박 캠핑지를 찾았다.
 

현대자동차의 차박 체험 플랫폼 '휠핑' 론칭 이미지. (사진 = 현대자동차)


완성차 업계, 내수 감소에 ‘차박 마케팅’으로 대응

차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요소는 역시 자동차다.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지난 9월 8일 발표한 ‘솔로 갬성 캠핑이 발견한 자동차의 부캐’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개정 자동차법 시행 이후 ‘차박하기 좋은 차’에 대한 검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30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한 관심은 자동차 개조 시장뿐 아니라 완성차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수진 이노션 데이터커맨드 팀장은 "솔로 갬성 캠핑(솔캠)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수단(MOBILITY)을 넘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도 힐링하며 편히 쉴 수 있는 감성적인 공간(HOTEL)으로 인식되며 '모빌리텔'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며 "자동차 제작사에서도 고객들의 솔캠 패키지에 대한 니즈와 솔캠에 최적화된 UX 디자인, 그리고 솔캠 모션뷰에 대한 높은 선호도 등을 감안해 기획 단계부터 이러한 요소의 반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다양한 차박 관련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단지 트렌드에 편승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올해 초 시작된 코로나19로 긴 경기 침체가 우려됐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K-방역의 성과에 따른 영향과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 등에 힘입어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글로벌 메이저 완성차 업체들 가운데 2분기 적자를 면한 업체는 테슬라, 토요타, 그리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네 곳에 불과했는데, 우리나라 업체가 두 곳이다. 그밖에 르노삼성자동차와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등도 나름 나쁘지 않은 실적으로 상반기를 잘 넘겼다.

그런데 상반기 ‘신의 한 수’였던 개소세 인하 폭이 7월부터 줄어들었고, 이때부터 올해 실적을 지탱해주던 월간 내수 판매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해외 실적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내수의 하락을 메울 정도는 아니다.

이에 모든 완성차 업체가 내수 진작을 위해 할인, 사은품, 한정판 등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차박 트렌드는 특히 중요한 키워드로 쓰이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신차 '디 올 뉴 투싼' TV 광고는 차박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넓은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STAY'라는 슬로건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현대·기아차, 차박 정면으로 겨냥한 신차 출시

현대자동차는 캠핑카를 출시하고, 차박 체험을 겸한 차량 시승 플랫폼을 론칭하는 등 차박 문화를 적극적으로 선도하려 시도하는 중이다.

현대차는 7월 6일 소형 트럭 포터II를 기반으로 한 캠핑카 ‘포레스트’를 출시했다. 포터는 그동안 애프터마켓인 캠핑카 개조 시장에서 널리 환영받아 왔는데, 현대차는 처음부터 캠핑카로 개발, 제작한 ‘포레스트’를 개조 캠핑카보다 저렴한 가격에 내놓은 것. 이에 국내 최대 자동차 기업의 영업망과 A/S 시스템을 내세워 캠핑카 시장의 영향력을 더욱 높이게 됐다.

9월 16일 사전계약에 들어간 ‘디 올 뉴 투싼’의 경우, 넉넉한 실내 공간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TV 광고의 메인 슬로건은 ‘STAY’(머물다)이고, 요가 편, 영화관 편, DJ 연습실 편, 오피스 편, 만화방 편 등이 모두 넓은 공간, 방음 성능, 쾌적한 공조 시스템 성능 등을 내세우고 있다. ‘차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차박을 통한 힐링에 적합한 요소들이 강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차박 체험 플랫폼 '휠핑' 홍보용 이미지. (사진 = 현대자동차)


17일에는 신형 SUV 차량 무료 시승 및 차박 여행 경험 제공을 위한 차박 체험 전용 플랫폼 ‘휠핑’(Wheelping)을 론칭하며 응모를 개시했다. 휠핑은 자동차의 ‘휠’과 캠핑을 결합한 단어다.

현대차는 응모 고객들 가운데 140팀(2인 기준 총 280명)을 선정해 ‘더 뉴 싼타페’와 4세대 ‘신형 투싼’(NX4) 중 1개 차종의 무료 시승 기회를 제공하며, 필요한 캠핑용품을 유상 대여하고, 캠핑장 추천 정보와 웰컴 패키지 등도 함께 제공하여 1박 2일간의 차박을 진행할 수 있게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휠핑은 자동차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전하기 위해 현대차가 새롭게 마련한 플랫폼”이라고 소개하면서 “휠핑이 제공하는 손쉬운 차박 여행이 코로나 19로 지친 고객들의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현대차는 휠핑 플랫폼 론칭과 함께 향후 고객의 선호도를 반영하여 차박 특화 커스터마이징 사양을 개발하고, 차량 구독 프로그램인 ‘현대 셀렉션’에 차박 특화 여행 패키지 상품을 개발하여 포함시키는 등 서비스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4세대 카니발의 3열 좌석을 눕힌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기아자동차는 지난 7월 28일 4세대 카니발의 사전예약을 시작하면서 사전계약 고객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코베아 차박캠핑용품 세트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실시하는 등 차박 캠퍼들의 관심에 어필했다.

이에 신형 카니발은 하루 만에 2만 3006대라는 역대 최단시간 최대계약 기록을 세웠다. 이는 앞서 지난 3월 출시한 4세대 쏘렌토가 보유했던 역대 최다 첫날 사전계약 대수 1만 8941대보다도 많다.

신형 카니발은 7인승의 미니밴이지만 대형 SUV와 비교해도 확연히 넓은 실내 공간을 자랑하며, 이는 최근 차박 열풍에 따라 소비자들이 점차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여서 영향이 컸을 거라는 분석이다.
 

르노삼성자동차 QM6용 차박 텐트 액세서리. (사진 = 르노삼성자동차 액세서리 쇼핑몰)


르노삼성·쌍용차, 텐트·박스 등 악세사리 내놔

르노삼성자동차는 차박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차박 전용 액세서리를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8월에 출시한 르노 텐트를 비롯해 현재 에어매트, 피크닉세트, QM6 일체형 루프박스 등을 르노삼성자동차 쇼핑몰 및 전국 차량 액세서리 전문점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특히, 올해 콤팩트 SUV로 내놓아 인기를 끌고 있는 XM3에 대해 동급 최장 휠베이스와 높은 차고를 내세우며 차박에 적합한 사이즈임을 지속적으로 어필하고, 캠핑에서 사용할 폴딩박스도 증정한다.

또, 인기 차종인 XM3와 QM6에 여행과 차박의 테마를 적용하는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있다. 8월에는 르노삼성차 전속 할부금융사인 르노 캐피탈의 금융 상품을 통해 액세서리 패키지를 구매할 경우 차량용 캐리어를 증정하기도 했다.
 

쌍용자동차 렉스턴 스포츠에 차박용 텐트 등 액세서리를 결합한 모습. (사진 = 쌍용자동차)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던 쌍용자동차는 8월 내수 판매량에서 전월 대비 1.3% 증가세를 보였다. 쌍용차는 이러한 소폭 증가세가 채널A의 낚시 예능 ‘도시어부2’ 제작 지원, 인터넷 플랫폼에서 진행, 방송되는 대규모 낚시대회 개최 등의 적극적인 언택트 레저 마케팅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수출이 전월 대비 56.9% 증가하며 전체적인 실적을 7.2% 끌어 올리며 숨통이 트이고 있다.

지난 8월 진행한 프로모션 ‘수퍼서머 페스티벌’에서는 할부 고객에게 휴가비 지원, 차박텐트세트 등을 제공하고, 휴가비 대신 어드벤처 키친 세트가 포함되는 업그레이드 상품에 대해 ‘아웃도어 드림 기프트 패키지’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9월에도 ‘슈퍼 세이브 페스티벌’이라며 언택트 레저를 위한 기프트 패키지 증정을 앞세운 프로모션을 이어간다.

쌍용차는 전통적인 아웃도어 차량 전문 브랜드로 익히 알려져 있으며 ‘SUV 명가’로 통해 왔다. 그래서 이 회사 자동차 모델들을 모두 통틀어 차박, 차크닉 등 자동차 관련 레저 활동에 어울리는 ‘4총사’라며 더욱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특히 오픈형 데크가 적용된 렉스턴 스포츠를 “차박에 최적화된 차량”이라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하반기에 ‘티볼리 에어’ 재출시를 예고하면서 “중형 패밀리 SUV를 위협하는 트렁크 공간 활용성”을 내세우며 차박 캠퍼들을 겨냥하고 있다. 티볼리의 롱바디 모델로 적재 공간이 720L에 달하고, 2열 폴딩 시 1440L까지 확장되며, 전체 넓이가 1110x1879mm로 키 180cm가 넘는 사람들도 누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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