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차박과 바비큐, 그리고 한국집과 미국집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20.10.15 11:39:19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20대 이후 처음으로 수십 년만에 텐트라는 걸 쳐봤다. 물론 예전 20세기 때의 복잡하게 쳐야 하는 텐트가 아니고, 집어 던지기만 하면 스스로 알아서 펴지는 이른바 원터치 텐트다. 텐트에 들어가 하늘을 쳐다보니 푸른 가을 하늘에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이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 없다.

캠핑장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빼곡히 들이차 시끌벅적할 지경이다. 실내에 들어가기 힘들고 무서운 시절인 데다 날씨까지 예술이니 야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모양새다.

캠핑장에서 가까운 바비큐 장(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시설을 임대해 주는 곳)을 들렀더니 “벌써 예약이 끝났다”며 인터넷으로 예약하란다.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예약 가능 날짜가 10월말에나 겨우 가장 조건이 안 좋은 좌석 한두 개만 남아 있다. 야외에서 고기 구워 먹는 인기도 엄청난 셈이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대기업도 뛰어든 차박 마케팅을 다뤘는데(52쪽과 76쪽), 충분히 그럴 만함을 알 수 있다.

동행자에게 이렇게 얘기하게 된다. “지난 세기의 한국에선 참 마음드는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마구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는데….” 그 당시를 생각하면 경치 좋은 계곡에 자리를 잡고 마구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어서, 구워 먹는 사람은 좋았지만, 주변을 지나는 제3자 입장에선 “정말 아무데서나 징그럽게들 고기 구워 먹는다”고 치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구워먹는 건 낭만이지만, 남이 구워먹는 건 혐오스러운,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불맛 시대였던 셈이다.

 

쌍용자동차의 티볼리 에어 내부를 차박 용으로 꾸민 모습. 사진 = 쌍용자동차

이렇게 한국의 고기 구워 먹기는 20세기와 21세기가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 세기엔 그야말로 아무 데서나 불판을 피울 수 있었지만(100% 가능) 21세기 선진 한국에선 극히 한정된 장소 이외에는 거의 아무 데서도 불판을 벌일 수 없으니(거의 0%) 말이다.

이런 100%와 0%의 차이는 참으로 극적이다. 휙휙 빨리도 그리고 완전하게 잘 바뀌는 한국적인 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 양극단 사이에는 어떤 절충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국인들은 워낙 바비큐를 즐기는지라 대개 집에 바비큐 구이 세트를 갖추고 있는가 하면, 아파트 거주자 등 공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공공 공원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바비큐 시설이 갖춰져 있어, 누구든 숯과 고기를 들고 공원에 가면 구워 먹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시설을 갖춰 놓으니 대부분의 공원에서는 가난한 라티노(중남미계 미국인) 가족들이 몰려와 고기를 굽는 통에 주말의 공원은 온통 고기 굽는 연기로 뒤덮이고, 백인들은 “우리가 세금 내 공공 바비큐 시설을 만들고 이용은 라티노들만이 한다”며 조소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미국 뉴욕주 가버너스 아일랜드 공원의 공공 바비큐 시설. 안전시설을 해놓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아무 데서나 불판을 벌이지 못하게 하는 건 산불 위험이나 공중위생을 생각해서라도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미국에서처럼 적절한 시설을 갖춰 놓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공중의 피해를 줄이면서도 누구나 손쉽게 ‘불맛’을 즐길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아쉬옴도 남는다.

귀가길에 한 공원 주차장에 잠시 들렀는데, 이게 웬일인가? 주차장에 텐트가 쳐져 있고, 취식들도 하고 있었다. 불판 피우기를 거의 0%로 막아 놓으니 이렇게 단속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불법 행태가 벌어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캠핑장에서 먹으면 라면도 왜 그리 맛있지? 맑은 공기 맛이 첨가돼서 그런가?”라는 즐거운 의문을 품으며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는데 라디오에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가 나와 ‘베란다의 부활’을 말한다. 코로나19 탓으로 집안 생활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집의 면적이 코로나19 이전보다 1.5배로 늘어났으며, 집에서 손쉽게 자연을 맛보는 수단으로 최근 베란다의 부활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베란다 확장이라며 ‘실외 반, 실내 반’ 성격의 베란다를 없애오던 한국인들이 베란다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지만, 코로나19 발발 이후 크게 본격화됐단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베란다 확장 아파트에서 최근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창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베란다의 역할이 정말 너무 고맙다.

20평대 아파트가 20억인데, 100평대 대저택은 왜 7억?

바비큐 시설의 미국과 한국 차이를 되돌아보면서 항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하는 더 떠오른다. 한국인의 지나친 아파트 사랑과 단독주택 홀대다. 미국에선 아파트는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임대 주택이고, 부자일수록 넓은 단독주택에서 사는데, 한국에선 근본적으로 답답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서울 아파트가 20~30억을 호가하는 데 비해 교외 단독주택은 7~8억이면 너무나도 넓은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아파트의 대(大)인기는 코로나19시대에도 절대불멸로 군림하고 있다. 아파트의 생활편의성과 환금성(換金性) 때문이라지만, “정말 이게 맞는 걸까? 또 영원히 이럴까?” 하는 의문은 종래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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