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그림 길 (64) 독백탄 ②] 독백탄 위 산줄기를 걷는 구름길 20km

이한성 옛길 답사가 기자 2020.10.29 10:28:17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독백탄은 남종면 쪽 한강에서 족잣여울(족자섬, 두물머리) 방향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의 시각은 여울의 물과 섬, 그리고 주변 강가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이 그림의 또 한 부분은 그림의 배경을 이루는 산줄기이다. 독백탄도(獨柏灘圖) 위에 걸어 갈 산길을 표시해 보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산행은 산줄기를 이어 가는 산행이다. 백두대간과 9정맥 길, 지맥 길을 이어 종주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산줄기를 이어 가는 산행은 가슴 설레는 레저가 되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돌로미테 트레킹 등등 해외 유명 트레킹과 아울러 우리 산줄기를 이어가는 트레킹이 백두대간에서 유행을 타더니 서울 주변 산줄기를 타는 명코스들이 생겼다. 이 중 예봉산 ~ 운길산 종주도 매력 있는 코스로 떠오른 지 오래다.

겸재의 독백탄을 배경 삼아 이번 회차에는 이 산길을 가보려 한다. 지도 1에 이번 차에 갈 산길을 표시해 보았다. 예빈산(禮賓山) ~ 예봉산(禮峰山) ~ 철문봉(喆/哲文峰) ~ 적갑산(赤甲山?) ~ 운길산(雲吉山)이다. 총 길이가 20km쯤 되니 베테랑이 아니면 한 번에 종주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두 번, 또는 세 번에 나누어 가 보시기를 권한다.
 

지도 1. 이번 답사길 코스. 
겸재 ‘독백탄’에 답사길을 표시해봤다.

중장년의 낭만 길, 조선시대엔 동해 가는 관동대로

경의중앙선이 전철화되면서 접근성이 더없이 좋아졌다. 팔당역에서 하차하여 역 앞 길, 즉 옛 6번 경강국도를 건너면 양수리 양평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한 세대 전 우리의 길을 만난다. 중년이 된 세대들에게는 팔당, 양수리, 양평으로 이어지는 이 길이 나들이 길이며 설악산과 동해로 가는 낭만의 길, 고행의 길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관동대로(평해로)였다.

여기에서 167번 시내버스를 타고 팔당댐 지나 천주교묘역에서 내린다. 흔히들 예봉산(禮峰山)은 팔당역에서 바로 오르지만 예빈산(禮賓山)은 버스 몇 정류장 앞이라 버스로 환승하는 것이 좋다. 먼 산길 오르려면 차로를 걸으면서 공연히 심신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천주교묘지는 예빈산 남쪽 기슭 양지바른 곳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수십 년은 된 묘역인데 예빈산이 이렇게 된 것은 마음 아프다.

 

깨어진 채 절벽에 세워진 예빈산 표석.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묘역 아래 강가와 좌측 마을은 조안면 능내리 봉안마을이다. 오래된 마을로 겸재의 독백탄도(獨柏灘圖)에도 족자섬 뒤로 이 마을을 그려 놓았다. 그 아래로는 다산 선생의 생가 마을 마재가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에 옛 봉안역(奉安驛)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 시대 길을 떠나면 민간은 객주집(주막)에 머물었고, 관원은 역참(驛站)에서 말 먹이고 쉬며 원(院)에서 잠을 잤다. 우리가 잘 아는 청파역, 구파발, 이태원, 퇴계원 이런 지명은 모두 역원(驛院) 체계에서 비롯한 지명이다.

이 봉안역은 망우리 넘고 덕소, 팔당 지나 양수리 건너 양근, 지평으로 이어지던 관동대로 옛 국도변 역이었다. 원주와 대관령 넘어 강릉, 양양, 평해로 이어지던 길이었으니 아마도 사임당, 율곡, 난설헌, 허균 모두 이 길을 지났을 것이다. 월계나루 정초부도 배를 안 탈 때는 이 길을 걸어 동대문밖으로 나무 팔러 갔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단종도 이 길로 갔느냐고 묻는데 단종이 유배를 떠난 길은 이 길은 아니다. 영월, 정선, 평창 가는 길은 광진나루 건너 지금의 강동구와 하남을 지나 이포나루, 여주를 경유하는 길이었다.

이제 예빈산 산행들머리로 간다. 이 지역 산행 안내판이 잘 정리되어 세워져 있다. 표지석도 서 있는데 ‘천마누리길’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옆으로는 천마지맥의 남양주시 구간이 잘 그려져 있다. 느닷없이 이곳에 웬 천마산 이야기일까? 언젠가 여암 신경준 선생의 ‘산경표’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책은 백두산을 우리나라 산의 종조(宗祖)로 해서 모든 산의 계보를 정리한 멋진 책이다. 백두대간에서 벋어 나간 13개 정맥(正脈)을 정리했는데 우리 시대의 산꾼들은 그것으론 성이 안 차서 정맥에서 벋어나간 산줄기를 다시 지맥(支脈)으로 표기하고, 1 대간과 남쪽 9 정맥 산길 종주가 끝나면 다시 지맥 길에 오른다.

천마지맥도 그 중 하나인데 한북정맥(漢北正脈) 운악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에서 남쪽으로 분기해 나간 산줄기를 천마지맥이라 부른다. 주금산 ~ 철마산 ~ 천마산 ~ 백봉 ~ 갑산 ~ 적갑산 ~ 철문봉 ~ 예봉산 ~ 율리봉 ~ 예빈산이다. 필자도 10여 년 전 이 산길을 타 보았는데 아름답고 가슴설레는 산 길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많은 분들이 예봉에서 운길까지 종주 산행에 나서고 있지만, 예빈산에서부터 하실 것을 권한다. 천마지맥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잠시 후 설명드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천주교 묘역.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천주교 묘역은 차가 산 중턱까지 오를 수 있게 포장길이 정비되어 있다. 포장길이 끝날 무렵 능선길이 시작된다. 묘역이 끝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는 아래 소박한 묘지들과는 달리 큰 묘석에 울타리도 치고 큰 봉분에 넓은 땅을 차지한 묘지들이 보인다. 묘표를 보니 알 만한 이름들도 보인다. 종교 시설 묘역에서조차 이렇게 해야 하나?

뒤돌아서 올라온 길 아래 강 마을을 바라본다(사진 1). 사진 속 번호 1은 봉안마을, 2는 다산 선생의 마재마을, 3은 겸재 독백탄의 모티브를 제공한 족자섬, 4는 두물머리, 5는 우천마을이 있었던 소내섬, 6은 분원, 7은 우천(경안천)이다. 고만고만한 민초들이 살던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요하다.

 

사진 1. 천주교 묘역에서 뒤돌아본 강 풍경. 두물머리 봉안마을이 보인다.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예빈산 기슭은 태종 이방원의 사냥터

사냥을 좋아하던 태종은 이곳에 와서 사냥을 즐기기도 했다. 봉안역 뒷산이니 옛 이름으로 하면 예빈산 기슭이며 지금 기준으로 하면 예봉산, 예빈산에서 사냥을 한 기록들이 전한다. 소수의 아랫것들을 데리고 와 말 타고 활을 쏘아 노루 두 마리를 잡았다. 1405년 왕 5년 이른 봄 2월인데 “경기병을 인솔하고 봉안역 등지에서 노루 두 마리를 쏘아 잡았다(率輕騎畋于奉安驛等處, 射獐二)”는 것이다.

중앙선이 뚫리면서 예빈산, 예봉산에 봉안터널이 뚫렸고, 전철화되면서 옛 터널은 자전거길이 되었으니 예빈산의 심장은 이제 우리 곁으로 파고들었다. 봉안역에 어떤 옛사람들은 은거해 들어 와 살았고 어떤 이들은 지나며 시(詩)를 읊었다. 조선초 양촌(陽村) 권근은 누군가 썼던 봉안역정시를 차운해서(次奉安驛亭詩韵) 한 수 지었다.

옛 역정은 무성한 나무 사이 보이는데 古驛亭開茂樹間
서늘한 저녁나절 쉬니 몸은 평안하네 晩凉來憩覺身安
산숲 궁벽한 곳 민가도 드물고 山林僻處民居少
숙식 일 적으니 아전 한가롭네 廚傳稀時吏役閑
벼랑길 강 나직이 누가 뚫었나 崖路俯江誰鑿險
계류 돌에 부딪히니 절로 춥구나 溪流激石自生寒
내 왔는데 내놓을 것 없다 말하지 마소 我來莫噵無供給
말이 푸른 꼴 먹는 것도 염치없거늘 馬飽靑蒭尙厚顔

택당 이식도 젊었을 때 지나갔던 봉안역에 다시 들러 앞강에 배를 대고 옛날을 회상했다. 노쇠한 택당의 그 마음은 이제 시간과 강물에 떠내려 갔다. 이곳에 이제는 별장과 카페들이 들어앉았다. 시간은 참 무심도 하구나.

봉안역(奉安驛) 앞강에 배를 대고 (泊奉安驛前江)
한여름에 여강(驪江)에서 한 잔 하고 盛夏黃驪飮
임술년 초가을에 (여기에) 노닐었네 初秋壬戌遊
풍진 속 두 줄기 흐르는 눈물 風塵雙下涕
강은 예나 지금이나 동에서 흘러 오네 今古一東流
역점(驛점) 앞에는 산 꽃이 늦고 驛店山花晚
어촌 물가 나무는 그윽하네 漁村水樹幽
희망을 읊었던 자리에 돌아와 向來吟望地
희끗한 백발로 외로운 배 대는구나 衰白艤孤舟

 

예빈산에서 본 예봉산.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예봉에서 바라본 운길산 능선길.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능선길을 따라 예빈산을 오른다. 팔당에서 오르는 예봉산은 가파름에 비해 산행 맛은 없는데 예빈산 오르는 능선길은 상당한 운치가 있다. 돌아보면 항상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절경이 일망무제(一望無際),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첫 봉 승원봉을 지나고 둘째 봉 견우봉을 지나고 정상 직녀봉에 닿는다. 견우봉과 직녀봉에는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써 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직녀봉이 예빈산 정상인데 있어야 할 정상석은 구석 절벽 앞에 깨진 채로 조그맣게 서 있다. 가슴 아프구나.

 

견우봉.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조선 시대 옛 지도들을 보면 이 구역의 산은 예빈산(禮賓山)이 전부였다. 운길산 구역으로 오면 운길산(雲吉山, 水鐘寺山)과 조곡산(鳥谷山)이 있을 뿐이다. 지금의 예빈산과 예봉산은 모두 예빈산으로 불렸다. 지금의 직녀봉(예빈산)은 예빈산의 동봉, 예봉산은 예빈산의 서봉 정도로 여긴 것이 조선 시대의 인식이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철문봉과 적갑산도 달리 명칭이 없으니 예빈산의 한 봉우리로 여겼으리라. 왜 이 산들이 모두 예빈산이었을까? 옛 지도에는 그 답을 알 수가 있는 힌트가 있다. 예빈산 기록 옆에는 어김없이 의정부시장(議政府柴場)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예빈산이 그려진 해동지도. 

우선 예빈산이란 이름이 붙게 한 조선 시대 예빈시(禮賓寺)라는 관아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시대 육조(六曹) 이외의 관아로서 6시 7감(六寺七監)이 있었다. 6시(寺)는 태상시(太常寺), 종부시(宗簿寺), 위위시(衛慰寺), 사복시(司僕寺), 예빈시(禮賓寺), 전농시(典農寺)이고, 7감(監)은 태부감(太府監), 소부감(小府監), 선공감(繕工監), 사재감(司宰監), 군기감(軍器監), 사천감(司天監), 태의감(太醫監)을 말한다.

예빈시의 기능은 태조실록에 잘 설명되어 있다. 1392년 태조 1년 7월 기사인데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하면서 예반시의 관장 업무를 명백히 하고 있다.

예빈시(禮賓寺)는 빈객(賓客)과 연향(宴享) 등의 일을 관장하는데, 판사(判事) 2명 정3품이고, 경(卿) 2명 종3품이고, 소경(少卿) 2명 종4품이고, 승(丞) 1명, 겸승(兼丞) 1명 종5품이고, 주부(注簿) 2명, 겸주부(兼注簿) 1명 종6품이고, 직장(直長) 2명 종7품이고, 녹사(錄事) 2명 정8품이다.

禮賓寺: 掌賓客, 宴享等事. 判事二, 正三品; 卿二, 從三品; 少卿二, 從四品; 丞一, 兼丞一, 從五品; 注簿二, 兼注簿一, 從六品; 直長二, 從七品; 錄事二, 正八品.

즉 예빈시는 사신, 종친 등 손님 맞이와 궁중연회를 책임진 부서였다. 출근하는 의정부 삼정승 등의 식사도 책임진 부서였다. 그러다 보니 예빈시는 의정부 옆에 자리잡았다. 예빈시는 땔감이 많이 필요했다. 이런 예빈시의 땔감 공급처(시장: 柴場)가 바로 이 산이었으니 자연히 그 이름도 예빈산이 되었다. 참고로 강 건너 검단산은 군기시(軍器寺)의 시장(柴場)이기도 하였다.

위세 좋았던 예빈산 이름이 쪼그라든 사연

그러다가 조선 말기가 되면서 예빈산의 큰 봉우리가 슬그머니 예봉(禮奉)으로 기록되더니 일제강점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나 조선지형도 등에는 아예 예봉산(禮峰山)으로 독립하여 버렸다. 아쉬운 것은 해방 후에 일제의 자료가 여과없이 그대로 대한민국 지도로 굳어지니 이 지역 산의 주산(主山)은 예봉산(禮峰山, 683m), 곁다리 산은 예빈산(禮賓山, 590m)이 되었다. 더욱 이상한 일은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에 의해 그나마 예빈산이라는 이름도 주봉은 직녀봉, 작은 봉은 견우봉 표지판이 점령해 버리니 아아, 예빈산 산신령님은 아연실색(啞然失色)을 하고 계실 것이다. 이렇게 예빈산 신령님은 안방을 내어주고 건넌방 신세가 된 후 이제는 행랑채 신세가 되었다.

예빈산 신령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예봉산으로 향한다. 길은 예빈산 정상에서 곧바로 좌(서쪽)를 향하여 좌향좌, 가파르게 떨어지는 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곳에는 안내판도 없고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필자도 안내 꼬리표가 붙어 있는 북쪽 길로 산 하나 다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이른바 알바(산꾼들이 길을 잃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이르는 그 바닥의 은어)를 했다.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 예빈산과 예봉산 사이 안부 율리고개다.
 

능선길의 소나무.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예봉산 오르려면 율리고개 통해서

팔당에서 예봉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필자는 이곳 율리고개로 오르기를 권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팔당역 가까이에서 막바로 오르는 예봉산 길은 경사도만 숨이 턱에 찰 뿐 산행의 즐거움이 적다. 율리고개 능선길을 오르면 낮은 봉우리 율리봉에 닿는다. 다시 안부를 거쳐 오르면 오늘의 최고봉 예봉산 정상(683m). 최근에 생긴 기상관측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는 도미강 건너 검단산이 우뚝하고 서울 주변 모든 산줄기가 시원하게 보인다. 앞으로 가야 할 운길산 능선길은 오후 햇살 아래 그 모습이 선연하다.

 

예봉산 정상.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여기에서 산길을 북으로 방향을 잡아 종주길로 접어들면 억새밭 지나 철문봉(喆文峰)이다.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목민심도’란 길 이름을 붙여 놓았다. 설명판 내용인즉 “목민심도란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저술한 문헌 ‘목민심서’를 본따 만든 용어로, 백성을 생각하던 정약용의 마음을 일깨우며 걸어보라는 의미이다. 이곳 철문봉은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가 본가인 여유당에서 집 뒤 능선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하여 철문봉이란 명산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나? 다산은 산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세상에 멋있는 소리라 했다.

賦得山北讀書聲 : 산 북쪽 책 읽는 소리 듣다
天地何聲第一淸 천지간 무슨 소리가 가장 맑을까
雪山深處讀書聲 눈 쌓인 깊은 산속 글 읽는 소리
仙官玉佩雲端步 신선이 패옥 차고 구름 끝을 거니는 듯
帝女瑤絃月下鳴 천녀가 달 아래서 거문고를 타는 듯
不可人家容暫絶 사람 집에 잠시라도 끊겨서는 안 되는 것
故應世道與相成 그래서 세상 도리와 함께 이룩될 일
北崦甕牖云誰屋 북쪽 산등성이 오막살이 그 뉘 집일까
樵客忘歸解送情 나무꾼도 돌아가길 잊고 정취를 풀었다네

 

적갑산 활공장.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철문봉을 지나 적갑산 길로 향한다. 툭 트인 시야가 나타난다. 활공장이다.

능선길은 흙길인데 높낮이 차도 그다지 없어 쾌적하다. 물푸레나무 군락지, 철죽 군락지를 거쳐 적갑산을 지난다. 적갑산이란 지명의 근거는 찾지 못했는데, 두보(杜甫)가 옮겨가 살던 곳이 적갑산이었다. 역시나 다산의 시 중에 적갑산과 용문산을 언급한 것을 보면 이곳 적갑산도 다산과 관련이 있는 이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재미있는 시는 아니지만 전거(典據)를 위해 올려 본다. 동료 현계에게 보낸 시다(簡寄玄溪).

단풍잎 가을 바람에 병든 눈을 떠서 보니 黃葉風中病眼擡
가을이라 그 기운 참으로 구슬프구려 秋之爲氣信悲哉
일천 숲을 들레던 매미는 어디로 갔나 千林喧沸蟬何去
한 줄로 나는 기러기만 또 왔도다 一字飛騰雁又來
적갑으로 옮기어라, 슬피 바라만 볼 뿐 赤甲遷居空悵望
좋은 술로 뒤따라 뫼실 수가 없었네 靑酒從事莫追陪
용문서 콩 구워 먹던 게 어느 해의 일이던고 龍門煮菽何年事
동에서 흐르는 물 다시 돌아오지 않아라 逝水東流不復回
(기존 번역 전재)

 

뻗어내려가는 종주길.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새재고개.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이제 적갑산을 지나 새재고개로 향한다. 산길은 소나무 군락지인데 이곳 소나무는 어느 것 하나 곧은 것 없이 모두 모두 제 마음대로 한껏 몸을 틀고 있다. 재목으로는 값어치가 없으나 정원수로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윽고 종주길 한 구획을 긋는 새재고개에 닿는다. 힘든 이는 이곳에서 일단 하산하여 다음 기회에 운길산 구간에 도전하고, 체력이 되는 이는 이어서 종주길을 계속하자. 하산 길은 두 길이 있는데 남쪽 계곡을 내려오면 조곡(鳥谷)을 지나 운길산역으로 내려온다. 4km가 넘는 길이니 길을 즐기며 하산할 것. 또 하나 북으로 새재고개를 넘으면 도심역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길도 4km는 좋이 되는 길이다. 운길산 종주길을 그리며 일단 여기에서 글을 줄인다. <다음 호에 계속>
 

<이야기 길에의 초대>: 2016년 CNB미디어에서 ‘이야기가 있는 길’ 시리즈 제1권(사진)을 펴낸 바 있는 이한성 교수의 이야기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3~4시간 이 교수가 그 동안 연재했던 이야기 길을 함께 걷습니다. 회비는 없으며 걷는 속도는 다소 느리게 진행합니다. 참여하실 분은 문자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간사 연락처 010-2730-7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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