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오고 못 배길걸 ⑤] 숲속 커피공장 같은 '맥심 플랜트', 이태원 새 명소

제38회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박진 건축가 "열린 공간으로 투명성에 초점"

김금영 기자 2020.11.26 09:23:17

코로나19로 일상화된 언택트(untact, 비대면) 문화는 유통업계 전반 마케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집밖에 잘 나오지 않는 소비자를 겨냥한 온라인 마케팅이 강화된 것. 하지만 기존 좋은 터에 큰 상가 건물을 둔 대형 유통업체는, 이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장기적 관점에서 매장으로 소비자의 발걸음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오프라인 마케팅 또한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기존 ‘매장 = 상품을 파는 곳’ 공식에서 더 나아가 매장에 도서관을 지어 책을 볼 수 있게 하고,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거나, 반려견과 함께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매장을 색다른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켜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다. 그 움직임에 주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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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속 우뚝 서 있는 예술 작품 ‘맥심 플랜트’

 

이태원에 위치한 맥심 플랜트 외관. 사진 = 김금영 기자

이태원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로 만연한 길거리가 마치 작품처럼 보였다. 이 은행나무 사이 또 거대한 작품이 자리해 있었다. 볶은 커피콩을 연상케 하는 짙은 갈색 타일, 그리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투명 유리창으로 한가롭게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건물. 최근 제38회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한 ‘맥심 플랜트’ 현장이었다.

올해로 38회를 맞이한 서울시 건축상은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구현하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인 우수한 건축물을 장려하기 위한 것으로, 서울의 건축문화와 기술발전에 기여한 건축 관계자를 시상한다. 동서식품이 맥심 브랜드 체험 공간으로 마련한 맥심 플랜트는 지난 2018년 4월 준공됐다. 연면적 1636㎡(495평) 규모로 총 8개 층(지하 4층~지상 4층)으로 구성됐으며, 이 중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5개 층을 커피 관련 문화 공간으로 조성했다.

 

건물 1층과 2층 전면에 큰 유리창이 설치돼 개방감을 더한다. 사진 = 김금영 기자

1층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메인 로비였다. 카페 중앙엔 커피를 만드는 바가 마련돼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 위의 높은 천장엔 커피를 담는 원통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카페의 분위기를 한껏 더했다.

조형물에서 시선을 조금만 돌리자 박선기 작가의 예술 작품 ‘조합체(An aggregation) 180301’이 보였다. 아크릴비즈, 나이론줄 등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커피의 진한 아로마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작품에 매달린 수천 개의 구슬이 이뤄내는 자연스러운 형태와 움직임은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탄 순간 콧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커피의 진한 향, 혹은 공기 속에 흩어지는 커피의 수증기의 모습을 대변했다. 또 빛의 비춤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 보이는 매력을 드러냈다.

 

건물 1층의 메인 바. 사진 = 김금영 기자

박선기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커피와 관련된 예술 작품이 카페 곳곳에 설치돼 커피향과 더불어 예술의 향기까지 더했다. 예술 작품과 더불어 층 곳곳에서 초록빛깔 식물이 눈에 띄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카페 내부, 벽, 테라스까지 싱그러운 분위기를 한껏 연출했다. 또 건물 곳곳에 커피 제조 공정을 입체적으로 시각화해 마치 벽화처럼 새겨놓은 점이 눈길을 끌었다.

3층엔 ‘더 브루잉 라운지’가 마련돼 있었다. 맥심이 쌓아온 원두에 대한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16개의 스페셜티 커피 블렌드를 선보이는 곳이다. 맥심 플랜트의 다양한 블렌드 중 자신에게 잘 맞는 블렌드를 찾아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이 블렌드를 직접 즐겨볼 수 있는 바로 구성됐다. 동서식품 측은 “공감각 커피라 명명한 맥심 플랜트만의 블렌드들은 커피와 더불어 각각의 블렌드가 지닌 향미, 산미 등 특성에 기반을 두고, 이와 어울리는 디자인, 음악, 그리고 적절한 글귀를 함께 제안한다”고 밝혔다.

 

박선기 작가의 예술 작품 ‘조합체(An aggregation) 180301’이 설치된 모습. 사진 = 김금영 기자

지하에서도 커피의 향연은 이어졌다. 지하 1층엔 커피와 관련된 서적이 비치된 ‘더 라이브러리’가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도왔다. 지하 2층엔 맥심 플랜트의 대표적인 공간 ‘더 커피 랩’이 자리해 있었다. 이곳의 로스팅 룸은 맥심 플랜트의 핵심 시설로, 원두가 자동 투입돼 로스팅되는 공정을 직접 볼 수 있는 제조설비를 갖췄다. 다양한 예술 작품과 서적, 식물까지 어우러진 문화 공간에 자리한 덕분인지 이 로스팅 룸 또한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커피와 관련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은 로스팅 룸 옆에 마련됐다. 일반 고객과 전문가 클래스 등을 대상으로 한 커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카데미로, 이곳에서 고객의 의견을 받아 신제품 개발에 반영할 계획도 있다. 단순 커피를 파는 일차적 공간에서 더 나아가 문화와 감성까지 아우르는 이 공간을 설계한 애이아이건축사사무소 박진 소장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건물 곳곳에 식물이 비치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도심 속 쉼터로 기억에 자리잡기를”
애이아이건축사사무소 박진 소장과의 일문일답

 

매장에 커피 관련 예술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최근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한 소감은?

“맥심 플랜트는 동서식품 맥심의 브랜드 체험관으로, 단순한 브랜드 홍보 공간이 아닌 시민의 도심 속 쉼터가 되도록 설계했다. ‘도심 속 정원, 숲 속 커피 공장’ 콘셉트를 바탕으로 건축적 관점에서 공장(Plant)과 식물(Plant)의 중의적 의미를 건물 외관 및 내부 공간 구성에 성공적으로 담아낸 것은 물론, 복잡한 도시에서 시민의 쉼터라는 공간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2층 카페 테라스. 야외 경치와 식물을 더불어 즐길 수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어떤 건물을 지을 땐 그 지역의 분위기 또한 중요한 요소다. 맥심 플랜트가 지어진 이태원 지역과 어떤 조화를 고려했는지 궁금하다.

“이태원의 건물은 설계 시 언덕 지형을 극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는다. 특히 맥심 플랜트 부지는 현재 건물 정문 방향의 메인 도로와 반대편 건물 뒤편 도로의 단차가 심해 사람들의 통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맥심 플랜트는 양쪽 도로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려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데 중점을 뒀다. 1층 메인 공간의 경우 병풍처럼 접어서 여닫을 수 있는 폴딩 도어 등을 활용해 전면이 최대한 열려 있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여기에 일반 시민이 맥심 플랜트를 통해 건물 뒤편에서 메인 도로로 편히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3층 리저브 카페. 맥심 원두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한 프리미엄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맥심 플랜트는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로 지어졌는데, 각 층마다의 주요 콘셉트는?

“맥심 플랜트는 맥심 브랜드 체험관으로서 1980년 탄생한 맥심의 역사와 제조 과정, 각종 원두 및 커피 용품 등을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지하 2층에 위치한 맥심 플랜트의 핵심 시설인 로스팅 룸에서는 원두가 자동 투입돼 로스팅되는 공정을 직접 볼 수 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는 각각 라이브러리, 카페 및 문화 공간으로 꾸몄으며, 3층은 리저브 카페로, 동서식품의 커피 노하우가 집대성된 ‘맥심 원두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한 프리미엄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또 건물 곳곳에 커피 제조 공정을 입체적으로 시각화해 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커피전문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자신에게 맞는 커피 블렌드를 골라볼 수 있도록 구성된 공간. 사진 = 김금영 기자

-맥심 플랜트 건물 외관은 마치 작품 같다.이 외관을 부분을 설계할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은?

“맥심 플랜트는 열려있는 공간으로서 ‘투명성(transparency)’을 핵심 콘셉트로 다양한 창호를 적용했다. 1층과 2층은 폴딩 도어를 설치해 최대한 열려 있는 공간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3~4층은 폴딩 캐노피(덮개)를 설치해 다양하게 변화하는 입면을 만들고자 했다.

건물 외관의 컬러는 로스팅된 원두 컬러에서 착안한 미디엄 로스팅(medium roasting) 정도의 톤으로 구성하고, 재료는 금속, 타일 등을 사용해 컬러감을 살렸다. 3~4층 폴딩 캐노피를 커피콩 모양으로 타공해 형태적으로도 입면에서 건물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3층 야외 테라스 공간. 사진 = 김금영 기자

-맥심 플랜트는 식물이 어우러진 공간 그리고 로스팅 룸이 특히 유명하다. 두 공간의 콘셉트가 궁금하다.

“맥심 플랜트의 핵심 콘셉트를 요약하면 ‘도심 속 정원, 숲 속 커피 공장’이다. ‘플랜트(Plant)’라는 단어는 ‘공장(Plant)’, ‘식물(Plant)’의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이 같은 콘셉트를 바탕으로 맥심 플랜트는 각 층마다 테라스를 설계해 모든 층에 식물이 비치될 수 있도록 했다. 지하 2층부터 지하 1층까지 이어지는 로스팅 룸에는 사일로(Silo, 원통형 저장소), 로스터(Roaster, 생두를 볶는 기계) 등 실제 커피 제조에 사용되는 기기를 배치해 방문객들이 커피가 제조되는 과정을 시각, 청각, 후각 등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 로스팅 공장의 굴뚝을 형상화한 아트워크를 전 층에 적용해 건물의 콘셉트를 강조했다.”

 

커피 관련 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라이브러리 공간. 사진 = 김금영 기자

-맥심 플랜트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도 알려졌다. 건물의 어떤 점이 이들의 마음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하나?

“맥심 플랜트는 ‘도심 속 정원, 숲 속 커피 공장’이라는 플랜트(Plant)의 중의적인 의미에 맞게 스킨답서스 등 다양한 식물을 테라스와 창가에 배치해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라운지 무드의 쾌적한 좌석에서는 충분한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커피 한 잔이 제공하는 여유와 행복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또 각 층마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다수의 커피 용품을 전시해 이국적인 느낌과 함께 커피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커피가 제조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로스팅 룸. 사진 = 김금영 기자

-건물은 위치한 공간에 새로운 분위기를 이끌고, 어떤 사람 및 브랜드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역할도 한다. 맥심 플랜트가 앞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소비자들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간, 누구나 편안하게 찾는 ‘도시 속의 쉼터(plant)’로 맥심 플랜트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커피 추출 도구가 구비된 아카데미 공간. 사진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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