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삼성의 자동차 사업, 4반세기만에 ‘좋은’ 제자리 들어서나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20.12.31 11:14:03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때는 1995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완성차 사업 진출 선언으로 한국 재계가 시끄러울 때였다. 당시 필자는 세계일주를 하고 있었다. 미국 GM자동차가 미국-유럽-한국-호주를 잇는 부품 공급망(동일 부품을 여러 차 모델이 공통으로 쓰는 시스템)을 갖춘 뒤 이를 과시하려 각국 기자들을 초청한 행사였다. 서울에서 파리로 날아가 유럽의 GM 부품 공급망을 보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GM 본사를 방문하는 긴 여정이었다.

서울에서 파리로 날아가는 여객기 안에서 GM 부품 공급망의 부사장은 기자단과 대화 중 삼성자동차 얘기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나는 삼성이 왜 완성차 시장에 바로 뛰어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예전에는 각 자동차 모델에 독자적인 부품을 만들어 사용했지만, 우리가 이번 취재 여행에서 볼 예정이듯, 이제는 한 부품을 잘 만들어 전세계의 GM 메이커들이 다양한 차종에 공통 사용함으로써 경비와 고장률을 줄이는 시스템을 GM뿐 아니라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들이 갖춰 나가고 있다. 부품은 꼭 GM 차가 아니더라도 다른 메이커용으로도 팔 수 있다. 완성차 시장은 극심한 경쟁으로 이익률이 낮지만 부품 쪽은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이라면 부품 시장부터 진출해 이익을 착실히 챙기고 이를 바탕으로 완성차 메이커로 변신하면 되는데 완성차 시장에 바로 뛰어드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1998년 조선일보에 실린 삼성자동차 광고. 

GM 부사장의 이런 우려를 들으면서도 당시 한국 기자들은 “GM의 질투” 정도로 여기고 넘어갔다. 당시만 해도 한국 재벌이 손대는 사업은 모두 성공하는 걸로 알고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로부터 4년 뒤 삼성자동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등 신화를 써내려갔던 찬란한 삼성 역사에서 극히 드문, 처절한 실패였다.

이랬던 삼성이 다시 자동차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특히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올해 현대자동차의 ‘두뇌’ 격인 남양기술연구소를 찾아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나고, 고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장례식장에 직접 현대 팰리세이드를 직접 몰고 도착하는 등 현대차와의 각별한 관계를 과시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이번 호 ‘문화경제’는 삼성의 자동차 관련 산업 진출 현황을 점검해봤다(22~25쪽).

 

지난 5월 13일 연합뉴스TV 보도 화면. 

두 글로벌 대기업의 협력은, 최근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대세 상승기에 들어섰다는 분석과 맞물려 더욱 눈길을 끈다.

최근 한국 증시가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면서 자금이 대거 몰려드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거품이 끼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면서 뉴 코리아(New Korea)가 떠오른다”는 해석도 있다. 요즘 베스트셀러인 ‘미스터 마켓 2021’에서 이한영 D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이렇게 썼다.

“통상적으로 코스피의 밸류에이션은 9~11배, 신흥국은 PER 13~15배, 선진국은 18~20배 사이를 받아왔다. 현재는 코스피가 12배 수준이고 신흥국은 15배, 선진국은 20배를 상회하고 있는 상황이다.”(49쪽)

 

선진국 기업일수록 수익에 비해 주가가 높게 형성되는데, 한국은 과거의 9~11배에서 현재 12배 수준으로 올라왔고, 올해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로 올라서며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면 선진국 기업들이 누리는 20배 평가(밸류에이션)까지 받을 수 있다는 소리다.

대세 상승기 들어선 ‘뉴 코리아’의 등극

이 본부장은 각국의 GDP(국내총생산)를 기준으로 주가 1~10위 국가 리스트를 매년 정리해왔는데 “한국이 상위 10위에 진입한다는 예상치가 나오는 것은 이번(2020년)이 처음이다. 물론 예상치지만. 실제로 현실화되면 파급력은 커질 것”(50쪽)이라고 썼다. 그간 한국 경제는 세계 11~12위로 언급돼 왔지만 올해 확실히 10위 등극이 예상되고, 이게 현실화되면 그 영향이 매우 클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지난해 세계 12위였던 GDP(국민총생산) 순위가 10위 내로 올라설 전망”이라며 “2021년을 한국 경제 대전환의 시기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의 톱10 등극을 기정사실화한 발언이었다.

2020년은 코로나19 탓에 정말 지긋지긋한 한 해였지만, K방역의 성공적인 대처로 한국을 바라보는 한국인과 세계인의 시각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한국 주요 대기업들의 실적도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더욱더 돈을 잘 버는 시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 런던 G7(선진 7개국) 정상회의에 한국이 초대됐지만, 앞으로 불과 몇 년 안에 한국이 G7의 정식 구성원이 되는 그림도 상상해볼 만하다. 선진국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오기만 했던 한국이 이제 선진 강국의 일원으로서 지구촌의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는 주역으로 나선다는 그림이다.

‘뉴 코리아’의 대두를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삼성과 현대라는 한국의 양강 그룹이 손을 맞잡고, 미래차라는 大결투장에서 애플, 테슬라, 토요타 등과 한판승부를 멋지게 펼치는 그림을 그려보면서 2020년 말미의 고통을 잠시나마 덜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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