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전기·수소차라는 미래 와 있는데, 우리 주유소들은…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21.02.16 10:03:15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 ‘문화경제’의 표지 사진은 지난 호에 이어 첨단 충전소다. 주유소의 변모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에 아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배트맨: 적이 쳐들어 오고 있어.
원더우먼: 오는 게 아냐, 브루스. 이미 여기에 있어.

영화 ‘저스티스 리그’에 나오는 대화라고 일본 경제 전문가 박상준 와세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저서 ‘불황탈출’(2019년)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적은 곁에 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원더우먼의 말이다.

마찬가지로, 미래 차라고 할 전기차, 수소차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이들 차들에 에너지를 넣어줄 전기차 충전소, 수소차 충전소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파트 단지의 전기차 충전소에선 대기 수요 때문에 싸움이 나는 수준이라고도 할 정도다.

한국이 세계 1등이라는 수소차 충전소는 어떤가? 현대차가 내놓은 수소차 넥쏘를, 미비한 기반시설과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사준 게 한국의 충성스런 소비자들이지만 충전소 숫자는 턱없이 부족해 많은 수소차 운전자들이 애를 먹는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이 시행된 2월 5일 서울 여의도국회 수소충전소의 충전봉. 수소가 산소와 반응하면 물이 생기기에 얼음이 맺혀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세계 최고의 수소전기자동차 회사는 토요타지만, 2019년 현재 세계 최고의 수소전기자동차는 2018년 출시된 현대자동차 넥쏘다.(권순우 저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45쪽)

세계 최고의 수소차를 내놓았고, 글로벌 판매 댓수 기준으로도 작년 판매된 수소 승용차의 75.1%를 넥쏘가 차지함으로써 일본 토요타가 자랑하는 미라이의 21.7%를 크게 압도했다는 게 시장조사기관 H2리서치의 집계지만, 한국의 수소차 기반시설은 창피할 정도다.

수소차의 최고는 넥쏘지만, ‘수소 경제’의 최고 선진국은 일본이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태평양전쟁(1941~1945년)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바다를 장악한 미국의 일본行 석유 차단이었다는 게 일본 측의 역사 서술이다. 이렇게 혼쭐이 난 경험이 있기에 일본은 수소 에너지를 찾아 전세계를 헤매왔고 그 성과를 자동차뿐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책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를 보면 일본이 수소 경제에 얼마나 힘을 쏟아왔는지가 잘 보인다.

일본 전역의 25만 호 가구에는 가정용 수소 연료전지가 설치돼 있으며, 이 시설은 각 가정에 연결된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뽑아내 난방을 해결한다. 일본 정부는 초기에는 가정용 수소 연료전지 값의 절반 정도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보조금을 줄여도 업체들이 자립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135쪽)
 

지난 1월 중앙고속도로 춘천휴게소의 수소충전소에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날 개소를 기념해 무료 충전을 받으려는 차량들이지만, 부족한 수소충전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사진 = 연합뉴스

일본 가정의 수소 연료전지, 한국 집엔 왜 없나

일본은 수소차 충전소의 운영비 3분의 2까지 최대 2200만 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억 1700만 원까지 지원한다. 나머지 3분의 1까지 일부 지자체가 지원함으로써 충전소 보급에 힘을 불어넣는다. 일본뿐이 아니다. 수소차를 생산하는 미국 업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주는 충전소 가동률이 70%에 이를 때까지 7000만~3억 2000만 원 한도로 지원해 캘리포니아 34곳에 수소차 충전소가 들어서 있다고 한다.(112쪽)

가정용 수소 연료전지는 국내 업체도 생산하고 있으며, 도시가스만 들어와 있으면 어느 가정이든 이 연료전지를 이용해 값싼 전기와 온수를 사용할 수 있단다. 지난 1월 11일 SBS의 ‘수소가 바꾸는 세상’은 경기도 화성시의 최홍순 씨 집이 국산 수소 연료전지를 장착해 “전기 요금을 3분의 1 절약하고 누진세 걱정 없이 전기를 마음껏 쓴다”고 소개하는 내용을 전했다. 이렇게 이득이 되는 데도 주변에서 수소 연료전지를 쓰는 가정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수소-전기차가 미래라면 현재의 ‘기름’ 주유소가 하루 빨리 첨단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한국의 추진 상황은 이제 첫발을 떼어놓는 수준에 불과하다. 원더우먼의 말대로 안 보인다고 멀다고 생각하면 당하기 십상이다. 하도 “빨리빨리”를 좋아해 국가별 전화번호도 82번을 받았다는 농담이 있는 게 한국이다. 에너지 대전환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아직도 기름 100%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주유소들이 대전환에 나서고 국민과 정부가 이를 지원해줄 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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