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63) GS칼텍스 장도창작스튜디오] 열리고 닫히는 섬에서의 오롯한 대화들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21.03.16 13:58:36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는 GS칼텍스 예울마루 장도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인 이지연, 성정원과 진행한 ‘작가와의 대화’, 전시교육팀 김해진 대리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단절과 소통의 중간쯤에 존재하는 우리
이지연, 성정원 작가와의 대화


- GS칼텍스 예울마루 장도창작스튜디오 결과보고전 ‘긴 섬, 드문 바람 오롯한 그림자’에는 작가들이 장도라는 장소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의 시청각적 기억을 시각화하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특히 물때에 따라 육지와 연결 혹은 단절되는 장도의 특수성이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두 작가 모두 이전 작업과 비교했을 때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전시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성정원 작가: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장도창작스튜디오에서의 경험을 담은 것인 동시에 이지연 작가와 함께 하는 ‘열쇠 없는 방 프로젝트’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같은 직업군에 있다 보니 일과 관련해서든, 우연이든 비슷한 공간을 공유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지연 작가와 나 모두 장소와 시간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공간과 시간의 개방성과 폐쇄성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함께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2017년 ‘경험의 우연한 교집합’을 주제로 첫 번째 전시를 열었다. 이번에도 같은 공간에 비슷한 기간 동안 머무르면서 서로 다른 존재로 각자가 경험하는 무언가를 작업에 풀어냈는데, 마치 장도가 물때에 따라 육지와 연결되거나 단절되듯 우리의 작업에서도 서로 이어지고 독립되는 지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번에 발표된 각자의 신작에서 변화가 보인다. 나는 내가 장도에 들어오고 나가는 특정한 시간 속의 경험에 집중했다. 자연의 원리에 의해 시간적인 제약이 생기는 상황, 우리가 선택의 여지 없이 순응해야 하는 상황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적이다. 시간은 객관적으로 정확히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상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시간의 속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꼈고, 그것을 작품에 담았다.

이지연 작가: ‘열쇠 없는 방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7년부터 성정원 작가와 시공간에 대해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특히 장도에서의 경험이 우리 각자의 작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했다. 장도의 특수한 상황 덕분인지 작업적으로 서로 더 많은 교감이 있었고, 그것이 서로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낯설고 특별한 공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이전 작업과는 확연히 거리가 있는 변화를 시도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내 작업의 특수성을 인위적으로 버렸다기보다는 내 안에 갖고 있었지만 그동안 겉으로 풀어내지 않았던 표현들을 시도했다는 것이 맞겠다. 이전의 작업이 특정한 시공간에서의 기억을 최대한 정제해 보편적인 조형 언어로 드러내는 데에 집중했다면 ‘심심한 섬’(2021)은 수집된 기록이나 사진, 영상 등을 그 자체로 이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자연을 많이 보게 되면서 나 자신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가감 없이 표현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긴 섬, 드문 바람 오롯한 그림자’(2021) 전시 전경 ⒸLeejiyeon

- 성정원 작가는 ‘긴 섬 때 #3 실패(얼레)의 시간’(2021), 이지연 작가는 ‘심심한 섬_애매한 수집’(2020-2021) 등에서 수집한 돌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성정원 작가는 돌을 실패 삼아 실로 연결된 공간을 만들었고 이지연 작가는 돌 위에 채색을 했다. 개인적으로 전시장의 돌 하나하나가 마치 섬처럼 보였다. 재미있는 점은 두 작가가 선택한 돌의 형상(분위기)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온 돌이며 돌을 재료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성정원 작가 : 우리가 선택한 돌은 자연물이지만 인공물이기도 하다. 내가 모은 돌 대부분은 축대를 만들면서 나온 것이다. 또 해안가에서 자연스럽게 마모된, 시간의 변화를 담은 돌도 있다. 나는 ‘타래’라는 개념을 담고 싶었다. 서로 돌로 작업하자고 계획하진 않았다. 우연히 둘 다 돌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작업으로 이어졌다. 설치된 돌을 보면 나와 이지연 작가의 작업처럼 서로 이어진 것도 있고, 분리되어 각자 존재하는 것도 있다.

이지연 작가: 장도에 들어오기 전에는 하지 않았던 것 중의 하나가 돌을 모으는 것처럼 무언가를 수집하는 행위였다. 이렇게 구체적인 물질이 등장하는 작업을 한 적도 없었다.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돌을 주운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돌의 수집이 시작되었다. 성정원 작가의 돌과 달리 내가 모은 돌은 날카롭고 각이 졌는데 장도를 조성하면서 나온 조경석의 조각들이다. 돌 그 자체는 자연물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인공적으로 변한 것들을 선택했다.
 

우측 앞부터, 성정원, ‘긴 섬 때 #4 시간의 축’, 스테인리스, 2020 / ‘긴 섬 때 #7 수평선 너머의 지평선’, PVC, 가변설치, 2021 / ‘긴 섬 때 #5 물때의 진주’, 영상, 2021 / ‘긴 섬 때 #6 수평선 너머의 지평선’, 영상, 2021 ⒸLeejiyeon

- 한 작가의 작업은 자신을 둘러싼 여러 관계에 영향받는다. 동시에 작가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고수한다. 물때에 따라 연결되고 단절되기를 반복하는 장도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만의 작업을 창작하는 작가의 모습과 닮았다. 사회(세상)와 완전히 단절되면 소통이 불가능하고, 반대로 사회에 완전히 포함되면 낯선 고유함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작가는 단절과 소통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다.

성정원 작가: 맞는 이야기이다. 나는 당연히 나만의 고유성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작가라는 직업을 택한 이상 그저 혼자 만들고 보여주는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을 시각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이와 같은 나의 여정을 고민하며 나 자신의 존재감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에 장도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지연 작가: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구경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안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들을 조금 먼저 발견하고, 조금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작가이다. 그리고 나는 그와 같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지연, ‘심심한 섬’, 종이에 인쇄 외, 15x8(cm) 213장+@, 가변설치, 2020-2021 ⒸLeejiyeon

- 전시 제목 ‘긴 섬, 드문 바람 오롯한 그림자’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성정원 작가: 제목 중 ‘드문 바람 오롯한 그림자’는 이지연 작가가 내준 아이디어이다. 그리고 ‘긴 섬’은 외지인인 동시에 작가인 우리가 느끼는 장도이다. 장도는 섬의 형태를 따라 공식 명칭은 ‘장도(長島)’, 토속어로는 ‘진섬’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긴 형태를 가진 섬에서 길고 깊은 호흡으로 세상과 우리(의 작업)를 되돌아봤다. 개인적으로 ‘오롯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의미이다.

이지연 작가: 바람은 우리를 둘러싼 대기를, 그림자는 그 자체로 빛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장도에 있으면서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과 대기, 계절을 느꼈고 그 감성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작업하기 좋은 곳이란 얘기 듣고 싶다”
김해진 GS칼텍스 예울마루 전시교육팀 대리


- GS칼텍스 예울마루는 2019년 5월부터 장도에 창작스튜디오와 전시관, 다도해 정원 등을 운영 중이며, 현재는 장도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 작가 결과보고전이 열리고 있다. 장도창작스튜디오 운영 및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시작을 위해 레지던시 입주 경험이 있는 작가들을 추천받아 심사를 진행했다. 1기에는 예술인연합 AAA(김도영/송성진/이창운/이창진), 이지연/성정원(열쇠 없는 방 프로젝트), 이민하, 세 팀의 작가가 입주했는데 여기에는 여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도 포함되었다. 결과적으로 참여 작가들이 그동안 얻은 노하우와 경험 등을 공유할 수 있었다.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자주 방문하고 신뢰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입주 기간에 만들어지는 결과물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작가들의 의견을 따랐다. 창작스튜디오 측은 작가 지원에 집중했다. 작가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GS칼텍스 예울마루 장도창작스튜디오 ⒸGS칼텍스 예울마루

- 장도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과 함께 진행한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작년 11월 오픈스튜디오 기간에 시민참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예술인연합 AAA와는 성인을 대상으로 장도를 거닐며 장도의 소리를 직접 녹음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지연 작가는 가족들이 함께 장도를 산책한 뒤 지정된 장소에 모여 작가가 만든 장도의 지도 위에 도장을 찍으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성정원 작가는 빨대로 만든 사람 모양의 오브제를 장도 곳곳에 놓고 사진을 찍어 기념품처럼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이민하 작가와는 장도에 놓을 수 있는 나무 새집을 만들었는데, 생태적 의미를 가진 장도를 염두에 둔 프로그램이었다.

- 전시 및 창작스튜디오 운영과 관련해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장도창작스튜디오 1기는 장기 입주 작가 세 팀이 함께 했다. 2기는 장기 입주 작가 세 팀뿐 아니라 3개월마다 로테이션 되는 단기 입주도 한 팀 추가될 예정이다. 단기 입주의 경우 시각예술 작가뿐 아니라 큐레이터와 평론가, 문학이나 무용과 관련된 모두에게 열어두는 쪽으로 결정했다. 여수에 위치한 창작스튜디오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지역 기반 작가가 포함될 예정이다. 오픈스튜디오, 시민참여프로그램, 결과보고전은 장도창작스튜디오의 기본적인 행사이다. 다만 올해는 오픈스튜디오와 시민참여프로그램을 각각 독립적으로 진행해 집중도를 높일 예정이다.

현재는 창작스튜디오 운영 초기이기 때문에 장도의 장소성이 작가들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는 섬에 위치한다는 것만이 장도창작스튜디오의 특성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입주 작가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창작 활동에 집중하고 종합적으로 작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에 집중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흘러 작가들이 장도창작스튜디오를 작업하기 좋은 곳이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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