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겸재 따라 밟는 임진강 ‘찢기지 않은 길’의 소중함

최영태 편집국장 기자 2021.07.13 13:37:56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이한성 옛길 답사가의 ‘겸재 그림 글’ 시리즈가 이번 호로 80회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75회부터 시작된 임진강변 답사 편이 이번 호로 마무리됩니다.

경기도 파주에 율곡수목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계곡을 둘러싼 양쪽 산허리에 온갖 나무를 모아 수목원을 조성한 곳인데, 수목원 외곽을 한 바퀴 도는 ‘도토리길’, 그리고 더 크게 한 바퀴 도는 ‘구도장원길’을 따라 걷다보면, 최정상부의 전망대에서 홀연 임진강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안보상의 이유 때문인지, 율곡수목원 안에서는 임진강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전망대 위로 올라가면 임진강의 모습이 갑자기 드러납니다. ‘서울과 그 근교의 강은 한강’이라는 상식을 갖고 있는 남한인은 홀연 모습을 드러내는 임진강에 “아니, 이게 웬 강?”이라며 놀라기 쉽습니다.

이렇게 남한인은 임진강을 잊고 살지만, 남과 북이 갈라진 현실을 일상생활에서 느끼며 사는 국외자(아웃사이더)로서의 재일동포들은 ‘임진강’이라는 북한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임진강 가에서 태어난 월북작가 박세영이 쓴 시에 고종한이 곡을 붙였습니다. 북한 노래인만큼 당연히 금지곡이었지만 2000년 이후 양희은, 김연자, 임형주 등이 부르고 앨범에 수록하면서 남한인도 많이 아는 노래가 됐습니다.

이한성 선생은 겸재의 그림 속 길을 따라 임진강변을 걸으면서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른 이 노래를 들었다고 썼습니다.

 

릴리아스 언더우드가 1889년 신혼여행 중 촬영한 임진강 포구의 모습. 번화한 풍경으로 미루어 고랑포구로 짐작된다. 

제가 ‘임진강’이란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2004년 나온 일본 영화 ‘박치기!’에서입니다. 1968년이란 대격변의 해(마틴 루터 킹이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다 암살 당하고, 파리에서는 대학생들이 ‘68운동’을 일으킨)에 일본에서 일어난 재일동포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사이의 ‘초대형 주먹다짐’을 그린 이 영화의 주제가는 ‘임진강’입니다.

재일동포가 임진강을 특별히 여기는 것은, 남과 북 사이를 흐르는 강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강은 대개 동서로 흐르지만 임진강 상류는 북 → 남으로 흘러 북한 강물이 남한으로 내려오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박세영 시인은 ‘물과 물새는 이렇게 오가는데, 왜 인간은 오갈 수 없나’고 쓴 것이고, 분단 탓에 더 차별받는 재일동포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축구 선수 정대세처럼 눈물을 흘리는 것이겠지요.

남과 북의 대립이 재일동포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는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재미동포로서 북한을 찬양했다고 해서 곤욕을 치른 바 있는 신은미 씨의 책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 - 재미동포 아줌마 ‘종북마녀사냥’ 수난기」(2016년)에도 나옵니다.

일본에서 만난 재일동포 어린이가 “고향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도대체 고향이 어디길래 못 가냐고 신 씨가 물으니 “경상북도 상주”란다. 역시 상주가 고향인 신은미 씨는 이렇게 썼다. “재일동포 4세 어린아이에게서 가보지도 못한 할아버지의 고향이 바로 내 고향이라는 말을 듣다니…. 울컥,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목구멍까지 복받쳐 오른다.”(153~154쪽) 참고로, 재일동포들이 말하는 ‘고향’이란 자신의 출생지가 아니라 한반도 속의 선조의 고향을 일컫는단다. 남이든 북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 재미동포와 달리, 민단과 총련으로 갈라진 재일동포 중에는 경북 상주도 방문 못하는 경우가 있다니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인의 출입이 삼엄히 통제되는 현재의 임진강. 사진 = Andrew Currie

오른-왼 발보다 눈물이 먼저 떨어지는 한반도 땅

재일동포가 남과 북을 대하는 자세로는 이런 일화도 있다. 신 씨는 우연히 백두산 등산을 재일동포 대학생 단체와 함께 했는데, 하산 길에 맨발 차림에 눈물 젖은 표정의 이들 대학생들은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신 선생님, 재일동포 아이들의 노래 속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오른발로 이 땅을 먼저 디딜까
왼발로 이 땅을 먼저 밟을까
조국아 목 메여 찾고 찾으니
눈물이 나보다 먼저 내려요.

저희 동창생들은 거의 량발(양발)로 내렸습니다. 오른발과 왼발을 고르지 못했지요. 모두 구두와 양말을 벗어서 맨발이었습니다.
(145쪽)

고향인 한반도를 찾아와 첫발을 내밀 때 오른발과 왼발 중 어느 쪽을 먼저 디딜지 고민하다가 눈물이 먼저 땅에 닿는다는 얘기입니다.

20세기와 21세기의 코리안들은 이렇게 찢겨 있지만, 겸재의 그림 속 길을 이한성 선생처럼 따라가다 보면 온전했던 한반도를 만나게 됩니다. 이 선생의 답사기에는 임진강변의 이름도 공포스러운 고랑포(한국전쟁의 ‘고랑포 전투’로 유명하고, 전방에서 근무했던 군인들이 무시무시한 기억으로 회상하는) 포구에 일제강점기에는 화신백화점 분점까지 있었다는 놀라운 얘기도 나옵니다(겸재 그림 길 75회).

지금은 남과 북의 군사가 대치하는 살벌한 임진강이지만, 이한성 선생은 이번 답사를 계기로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겸재 그림 ‘연강임술첩’에 나오는 그대로, 지금은 북한 땅이 된 임진강 삭녕에서부터 배를 타고 남한 땅인 웅연(곰소)까지 내려오는 ‘달밤의 뱃놀이’를 추가했다고 썼습니다. 그 뱃놀이에 동참할 날이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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