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의 세계 선두’ 위해 수자원공사, ‘초순水’ 개발로 적극 기여

고순도 물, 日 의존 높아 … “반도체 공장에서 수자원공사가 직접 초순수 생산”

윤지원 기자 2021.07.31 08:42:48

깨끗한 물의 이미지. (사진 = unsplash)

 

한국수자원공사가 이제껏 일본에 의존해 온 ‘초순수’(UPW, Ultra Pure Water)의 국산화를 가속하고, 나아가 국내 반도체 산업 자립에 기여한다.

29일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 등 정부 및 유관기관을 비롯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력을 본격화한다.

초순수는 역삼투, 증류, 탈이온화 등등 특수처리 공정을 통해 무기질, 미립자, 박테리아, 미생물, 용존가스 등을 최대한 제거한 고도의 정제수를 말한다. 이러한 초순수는 자연상태에서는 구할 수 없고, 인간의 기술로만 만들 수 있는 가장 깨끗한 물이다.

초순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패널 등 다양한 초정밀 산업에서 공업용수로 광범위하게 쓰이며, 각종 실험에서 시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물로도 사용된다.

 

한국수자원공사 로고. (사진 = 한국수자원공사)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사진 =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의 경우 나노미터(nm, 10억 분의 1 미터) 단위의 초미세 공정을 여러 차례 거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여 성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온갖 부산물, 오염물 등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또 이들 작은 입자를 세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웨이퍼 표면의 작은 상처조차 수율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 중 세정에 쓰는 공업용수는 총유기탄소량(TOC) 농도가 ‘10억분의 1(ppb)’ 이하의 고순도를 충족해야만 한다.

초순수 처리에는 20~30개의 다양한 수처리 단위공정이 조합되어야 하며, 정밀분석 장치와 기술이 필요하다. 제조기술 자체도 까다롭지만, 막대한 생산력도 갖춰야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웨이퍼 한 장을 세정하는 데에만 약 2톤의 초순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물을 3kg/㎠의 압력으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웨이퍼를 세정한다. 분사 단계에서도 초순수의 품질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부터 운영까지 전 단계에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반도체 생산용 초순수, 일본 의존 벗어나야

현재 초순수 기술특허의 71%를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수준의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능력 확대와 상용화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제껏 50%가량의 반도체용 초순수를 수입해서 충당할 뿐 아니라 공정설계, 초순수 배관, 수처리 약품 등 인프라 구축 및 운영 등 초순수 관련 산업구조 전반에 걸쳐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초순수의 제조 공정. (사진 = 환경부)
실험실용 중소규모 초순수 제조기를 연구,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 '리필'(RephiLe)의 한 연구원이 초순수를 비이커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사진 = unsplash)

 

그런데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큰 위기를 실감한 바 있다. 초순수도 이처럼 외부환경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꼽힌다. 수자원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초순수 생산에 필수적인 제품 일부는 전략물자로 수출규제 대상이었으며, 따라서 국산화가 시급하다.

정부는 지난 7월 12일 수자원공사를 주축으로 하는 민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고순도 공업용수 설계·시공·운영 통합 국산화 기술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컨소시엄에는 수자원공사 및 환경산업기술원, 산업기술시험원, 물기술인증원, 건설기술연구원 등 공공부문과 에코셋, 네오텍, 클루, 세프라텍, 한성크린텍, 진성이엔씨, 태영건설, 해성엔지니어링, 디에치테크, 케에피아이엔디 등 민간 부문이 참여한다.

김동진 환경부 수자원정책관은 “고순도 공업용수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제약·바이오·정밀화학 등에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며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해외 의존도 탈피와 더불어 국내 수처리 업계의 해외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컨소시엄은 올해부터 고순도 공업용수 생산을 위한 핵심부품인 자외선 산화장치(UV)와 용존산소 제거용 탈기막 국산화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기술개발은 ▲유기물 제거용 자외선 산화장치 ▲저농도 용존산소 제거용 탈기막 ▲고순도 공업용수 설계-시공-운영 통합 ▲고순도 공업용수 공정 및 수질 성능평가 ▲반도체 폐수를 이용한 고순도 공업용 원수 확보 등 세부과제별 기술개발을 목표로 2025년까지 추진된다.
 

한국수자원공사 박재현 사장이 지난해 열린 공사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한국수자원공사)

 

‘위기가 곧 기회’ ... 소부장 기술 국산화 현황

초순수를 포함한 반도체 소재 및 장비의 국산화를 추진하기에는 지금이 적기로 여겨지고 있다.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호황의 흐름에 올라타면서 투자 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일본이 과거사 논란 및 외교 문제에 관한 해법이랍시고 수출 규제 카드를 내밀면서 반도체 소재 장비 국산화 필요성에 관한 국민적 관심을 대대적으로 촉발시켰다. 반도체는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9%에 달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인데, 이를 겨냥한 소재 및 장비의 수출 규제였다는 점에서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사건으로 여겨졌다.

나아가 미·중 무역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차량용 반도체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 등이 겹치며 반도체 산업 및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산업 전반에 걸친 자급 시스템 구축 노력이 더욱 커졌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글로벌 강자인 기업들의 투자도 늘어났다.

정부와 기업들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한 덕에 수출규제 대상이던 3대 품목(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극자외선 레지스트)의 일본 의존도는 2년이 지난 현재 현저히 낮아졌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와 웨이퍼. (사진 = SK하이닉스)

 

먼저 불화수소는 기체, 액체 모두 지난해 이미 국산화에 성공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불화수소 수입액은 460만 달러로, 수출규제 전인 2019년 1~5월의 2840만 달러보다 83.6% 감소했다.

불화폴리아미드는 UTG(Ultra Thin Glass)를 대체 소재로 채택하면서 아예 수입할 필요성이 사라졌고 극자외선(EUV) 레지스트는 벨기에산 수입을 12배 늘려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췄다.

또 이를 계기로 국내 소부장 생태계 전반에 활력이 더해졌고, 소부장 중소·중견 기업들이 크게 성장했다. 소부장 상장기업의 총매출은 2019년 1분기 대비 올해 1분기에 20.1% 증가했다. 이는 상장기업 전체 평균 매출액 증가율 12.7%의 두 배에 육박하는 증가율이다.

소부장 중소·중견기업 중 시가총액 1조 원이 넘는 곳은 2019년 13개에 불과했으나 2021년 7월 기준 31개로 늘었다.

다만 소부장 산업 전체의 일본 의존도는 2019년 16.8%에서 15.9%로 0.9%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여전히 일본의 앞선 기술에 의존하는 분야가 많이 남아있으며, 초순수는 그중 대표적인 분야이다.

초순수 생산 기술 국산화를 시도했던 국내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테스트 베드 등성능인증 환경이 부족하고,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주요 대기업들이 해외에 의존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기에 시장 진입이 어려운 것으로 지적된다.
 

일본의 한 수처리 공장 전경. 본문 내용과 무관함. (사진 = unsplash)

 

초순수 국산화, 수자원공사 역할 중요

이에 초순수 국산화 및 시장 개발을 좀 더 강력하게 추진하는 데 수자원공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자원공사는 대한민국의 수자원을 관리하는 광역 공급자로서의 지위와 물 분야의 전문성을 갖췄으며,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지난 2011년부터 초순수 기반기술 조사를 진행해 왔다. 수자원공사는 초순수 국산화를 위한 설계, 시공, 운영기술 확보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인 결과 현재 초순수 관련 지식재산권을 다섯 건 보유하고 있다. 또한, 대산임해산업지역, 아산물환경센터 등 전국 9개 산업용수 사업장에 순수급 수질을 생산하여 건설 및 운영사업에 참여하는 등 초순수 시장 기반을 다지는 노력도 병행해왔다.

수자원공사는 국내 초순수 생산 기업들과 기술 교류 및 사업 공동참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초순수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는 국내 대기업과의 교류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자원공사 박재현 사장은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 현장을 찾았다. 박 사장은 지난 4월과 5월에 SK하이닉스의 용인과 이천 현장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 6월 4일에는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찾았다. 수자원공사는 연이은 대기업 반도체 생산 현장 방문을 통해 국내 반도체 대표기업들과 협력하여 정부의 K-반도체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초순수 국산화는 초순수 산업 자체로만 보더라도 글로벌 시장의 꾸준한 성장이 전망된다는 점이 좋은 동기가 된다.

 

한국수자원공사 마스코트 '방울이'가 지난 2019년 한 행사장에서 수자원공사 대학생 서포터즈들과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글로벌 초순수 시장은 2025년까지 61억 2000만 달러로 연평균 7.1%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특히 대만, 중국, 일본 등 전자산업 시장이 큰 동북아지역에서의 수요가 많고, 세계 초순수 시장의 62%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미래 먹거리라는 차원에서도 초순수 국산화 기술이 필요하다.

이번에 조성된 민관 컨소시엄 프로젝트에서 수자원공사의 핵심 역할은 실증 플랜트 건설이다. 이제껏 초순수 국산화의 가장 안타까운 걸림돌은 국내 기업들이 기술력을 확보하더라도 폭넓은 현장 적용을 위한 통합공정 상용화 기술의 부족, 상용화 이후 성능보장 능력 미흡 등 기술 실증 여건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수자원공사는 2025년까지 하루 2400톤의 초순수를 생산하는 실증 플랜트를 실제 반도체 공급업체에 설치·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실증 플랜트 구축을 위한 수요처와 협의하는 단계이며 연내 설치 대상지를 확정할 예정이다.

수자원공사는 "초순수 생산시설이 완료되면 반도체 설계·시공·운영 단계별로 쓰이는 초순수 공정의 최대 60%를 국산화할 것"이라며 “그간 쌓아온 물 인프라 구축 및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수자원공사가 국내 기업과 함께 초순수 국산화를 완수하고, K-반도체가 세계 1위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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