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술을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 한 곳에 증류식 소주 ‘화요’ 테이스팅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제품 다섯 가지(17·25·41·53·XP)를 모두 들고나와 하나씩 마시고,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곧이어 사전 초청한 구독자 여섯 명이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리고 나선 한 명당 하나씩 추천 제품을 밝히고, 채널 주인도 한 가지를 추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화요’ 전 제품 테이스팅 영상엔 공감 댓글 수두룩
구독자 수 41만3000명에 이르는 채널 ‘술익는집’이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276만 회가 넘는다. 12월 19일 기준 댓글 수는 1585개. 다 읽을 순 없으니 눈에 띄는 몇 가지만 골라봤다. “다음 주말에는 화요와 함께 다시 보면서 즐겨봐야겠네요” “벼르고 있었는데 영상을 보니 빨리 53도도 한 병 사서 마셔보고 싶네요” “XP, 41도, 53도는 개인적으로 꼭 한 번씩 먹어보고 싶네요” “이 채널 오늘 처음 보는데… 당장 마트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 영상 시간은 총 24분 37초다. 요즘 트렌드에 비해 조금 길다면 길다. 이렇듯 특정 제품을 대놓고 소개하는데 영상에 PPL(간접광고)임을 알리지 않는 걸 봐선 ‘앞광고’도 아닌 듯 보인다. 그런데도 누리꾼들은 환호한다. 공감한다. 대놓고 따라 마셔보고 싶단다. 저들 중 실제로 몇 명이나 구매해 마셨을지 알 순 없다. 하지만 정성스러운 리뷰에 대부분 공감하는 댓글을 달고 있으니, 화요라는 브랜드가 그들 머릿속에 아주 깊게 박힌 것만은 분명하다.
MBC의 소셜미디어 브랜드인 ‘일사에프(14F)’는 MZ세대에 맞춘 채널로 유명하다. 그에 맞춰 프로그램도 꽤 다양하다. 공영 방송이니 뉴스레터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그 외 예능이나 교양 영상으로 꽉 채웠다. 유명 채널에 MBC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구독자 수가 189만 명이나 된다. 14F는 MBC 14층 사람들이 만든다는 뜻이다.
여러 개 프로그램 중 애주가들의 발길이 잦은 ‘주락이월드’는 조회 수가 상당하다. 술과 관련한 영상으로는 거의 톱급이다. 12월 19일 현재 동영상은 89개가 올라와 있고, 전체 조회 수는 100만 회를 훌쩍 넘는다.
이 코너를 이끌어가는 주인장은 디지털 크리에이터 조승원이다. MBC 보도국 디지털뉴스제작팀장이기도 하다. 본인을 ‘주류탐험가’로 소개한다. 저서도 4편이나 된다. 가장 최근작이 지난 7월 펴낸 《스카치가 있어 즐거운 세상》이다. 여기선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speyside) 증류소 17곳과 아일라(Islay) 증류소 9곳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물론 현지 방문 취재기다.
당장 최근에 업로드한 영상 하나를 보자. 12월 17일 자다. 위스키 초심자가 고르기 좋은 가성비 싱글 몰트위스키를 소개하고 있다. 조회 수를 보니 6만5000회에 육박한다. 댓글은 바로바로 반응하고 있다. 이 영상에 소개된 ‘싱글톤 더프타운 12년’을 보고 한 누리꾼은 ‘지금 트레이더스·이마트에서 12년은 4만 원대, 15년은 6만 원대로 대란 가격인데도 인기가 없더라고요. 15년 하나 더 사야겠습니다’라는 글을 달았다. 인플루언서의 추천을 자신의 기호에 맞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 행태다.
조승원은 시간상 영상으로 다 알려주지 못한 내용을 인스타그램으로도 소통한다.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글렌모렌지’를 예로 들면, 루이비통(LVMH)이 인수하게 된 사연이나 현지에서 들었을 법한 주원료(물) 이야기, ‘테인의 16인’으로 불리는 베테랑 장인(匠人) 16명의 이야기 등 주로 취재가 바탕이 된 내용을 올린다. 누리꾼들은 여기에서도 그와 소통하며 고급 정보를 공유한다.
셀럽 추천 콘텐츠를 내게 맞춘 새로운 소비 트렌드 ‘디토’
‘디토(Ditto)’ 소비가 유행이다. 인플루언서·셀럽이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콘텐츠를 ‘나도’ 따라 소비한다는 뜻인데, 그 대상은 특정 제품 또는 유행하는 먹거리나 레시피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따라서 구매하는 건 아니다. 최대한 나에게 맞춰 소비한다. 그래서 시간을 아끼고 실패를 줄이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소개한 ‘트렌드 코리아 2024’도 그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취향 또는 가치관과 비슷한 특정 인물이나 콘텐츠의 제안에 따라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 트렌드를 디토라고 명명했다. 쉽게 말해 자신과 외형이나 취향이 비슷한 특정 대상의 소비를 추종한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상품의 종류와 정보, 특히 유통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의 선택지 역시 과잉 상태가 되고 있다. 이에 특정한 제품을 빠르게 선택하기 어려워진 지금의 상황이 디토 소비를 불러왔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스스로 탐색하며 선택한 제품을 만족스러워하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 커지면서 디토 소비에 동조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제품 탐색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지만, 무분별한 소비 패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람이나 커머스뿐만 아니라 특정 장소도 디토에 포함
앞서 소개한 사람·커머스 디토도 있지만, 웹툰·드라마·영화·예능 등을 참고해 소비하는 콘텐츠 디토도 있다. 이 역시 유튜브를 빼놓으면 얘기가 안 된다.
14F의 콘텐츠 중에는 지방을 돌며 맛집을 소개하는 ‘지방시’ 코너도 있었다. 3년 전엔 전주 편이 방송됐다. 콩나물국밥, 비빔밥, 물짜장 등과 더불어 술꾼이라면 모르지 않을 ‘가맥(가게맥주)’과 막걸릿집이 소개됐다. 총 11분 36초 길이에 정확히 1분 13초 분량이지만,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로 알차게 편집됐다.
동네 작은 가게에서 황태 같은 건어물과 병맥주를 즐기는 문화인 가맥과 안주만 족히 스무 가지는 되는 막걸릿집 두 가지 이야기를 짧게 소개했는데도 전주의 음주문화를 모두 섭렵한 느낌마저 든다. 12월 19일 기준 조회 수는 무려 31만6999회, 댓글 수는 1038개다.
역시 댓글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이번엔 시각을 조금 바꿔 전주인들이 추천하는 내용에 집중했다. “가맥집 가면 안주도 싸고, 맥주가 가장 싸다” “삼천동 막걸리골목은 나이 드신 분들 입맛에 맞췄다” “진짜 숨겨진 맛집들은 전주 술꾼들 털면 나오죠” 등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막걸리골목은 상업화가 너무 심해서 별로니 서신동 옛촌막걸리나 김삿갓막걸리 추천” “가맥집은 객사 근처 전일갑오와 영동슈퍼 추천” 같이 아예 상호를 직접 언급한 댓글은 눈을 더 크게 만든다.
트랜스젠더 유튜버로 유명한 풍자(윤보미) 역시 유튜브 예능 채널 ‘재밌는 거 올라온다’의 ‘또간집’ 코너를 통해 전주의 맛집을 소개했다. 지난 7월 21일에 업로드된 영상에선 ‘다가양조장’을 찾아간 얘기가 끝부분에 나온다. 길거리를 지나는 전주 현지인 두 명에게 직접 소개받아 간 곳이다. 영상에는 ‘오픈런하는 술집’일 정도로 인기라는 멘트도 달았다.
골뱅이무침과 보쌈으로 시작하는 ‘안주 러시’는 부침개, 동남아 볶음밥, 쫄면, 라면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심지어 남는 보쌈 고기를 추가로 더해주기도 한다. 방송이어서가 아니라 실제 누구에게라도 공평한 상차림을 낸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인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5개월 만에 289만 회를 찍었다. 댓글 창은 칭찬 일색이다. 가보고 싶다는 글부터 이참에 더 맛난 곳을 추천하는 전주인들의 댓글로 가득하다. 다가양조장을 두고 ‘실제로 저렇게 준다’며 맞장구치는 글도 보인다. 어느 맛집이든 풍자가 현장에서 직접 섭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영상 설명란에 쓰인 ‘맛집 광고나 협찬은 안 받는다’는 공지가 허투루 보이진 않는다.
한편, 풍자는 지난 11월 4일 업로드된 ‘유통기한 지난 술 꿀팁’이라는 제목의 쇼츠(짧은 영상)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영상에서 “여러분, 맥주고 뭐고 유통기한 있잖아요? 그거 지났다고 버리지 마세요. 그거 제조사에 연락하잖아요? 새 걸로 교환해줘요. 저 한 80캔 버렸는데, 버리고 나서 알았어요. 유통기한 지난 술 버리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조회 수는 9만2000여 회에 달했고, ‘좋아요’ 수는 986건이었다.
풍자의 말처럼 실제 술, 정확히 맥주에는 ‘품질유지기한’이라는 게 있다. ‘해당 식품이 가지는 최상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한’이라는 뜻이다. 식품을 대상으로 한 ‘유통기한’과 비슷한 개념이다. 대개 주류제조사가 자체적으로 정한다. 다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유통·판매가 금지되는 건 아니다. 병맥주와 캔맥주는 보통 1년, 페트 맥주는 6개월이다.
맥주는 원료인 보리로 만든 발효주이기 때문에 알코올도수가 4~6도 대로 낮은 만큼, 오래 두면 변질할 우려가 있어 품질유지기한을 두고 있다. 그에 반해 소주나 위스키 같은 술은 알코올도수가 높아 품질유지기한을 따로 설정해놓고 있진 않다.
앞서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보도하며 “풍자가 말한 건, 이 품질유지기한을 초과한 맥주를 제조사에 연락하면 새 제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주류회사에 따라 교환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하이트진로는 2006년부터 품질관리 프로그램으로 ‘신선함 캠페인’을 운영 중인데, 맥주 제품을 구매한 뒤 이상이 있으면 새 제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어서 마트·식당 등의 소매점에선 바꿔주지 않는다. 대신 회사에 연락하면 직원이 찾아가 바꿔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오비맥주는 올해부터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교환 서비스를 중지했다.
숏폼 영상의 댓글만 봐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맥주회사에 전화했는데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고, 확인해보셔요’, ‘테○는 바꿔줌. 지난주에 18캔 바꿨음. 그것도 직접 오심’ 등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디토는 나도 따라 사려다가 의외의 정보를 얻는 순기능 역할도 한다.
벌써 궁금해지는 다음 소비 트렌드, 부디 저렴한 것이길
무언가를 사는 방식도 진화한다. 그게 곧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디토 소비도 그런 무리일 것이다. 굿즈 하나를 사더라도 자신에 최대한 맞춰 선택한다. 좀 더 구체화한 구매 방식이다.
MZ세대에 잘 맞는 소비로 얘기했지만, 따지고 보면 전 세대 공통이다. 생활용품이나 낚싯대 하나를 사도 막연히 인기 많은 걸 고르지 않고 온·오프라인 정보를 충분히 습득한 후 내 손으로 직접 고른다. 알게 모르게 디토 소비를 하는 셈이다. 더 나아가선 ‘나도’를 ‘너도’로 권유하는 예도 있다. 디토 소비가 공유되는 순간이다.
트렌드야 항상 변하니 다음의 소비 형태는 어떤 것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부디 지갑이 한순간 가벼워지는 소비는 아니었으면 한다.
말머리에 얘기할까 고민했던 한 가지를 말끝에 더하자면, 최고 인기 아이돌 뉴진스의 곡 ‘디토’와는 같으면서 다른 얘기다.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혹은 사랑하는) 마음을 너도 알아줬으면 한다는 내용이다. 가사 중 ‘Oh, say it ditto’, 즉 (내가 널 좋아하니) 너도 날 좋아한다고 말해주길 바란다는 이 한 줄에 그 뜻이 잘 녹여져 있다. 하지만 사랑은 돈 주고 살 수 없으니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