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4는 ‘돌봄’이 단순히 복지 차원이 아닌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로 돌봄을 둘러싼 새로운 사회적·기술적 움직임을 ‘돌봄경제’로 규정했다. 책에서는 돌봄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사회적 변화에 주목했다. 돌봄의 대상이 영유아부터 장애인, 고령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돌봄의 행위에서도 배려 돌봄, 정서 돌봄, 관계 돌봄까지 다각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고령자·은퇴자에 맞추어 돌봄 경제의 방향성을 짚어본다.
JTBC '최강야구'가 내포한 선행적 돌봄의 사회적 효과
2010년 10월 문화일보가 당시 프로구단 SK 와이번스를 지휘했던 김성근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는 김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끝으로 송구한 질문 하나 드립니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일흔인데, 언제까지 지도자 생활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김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나 혼자 되는 일은 아니니까…. 확실한 건 내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야구를 위해서지 그냥 살기 위해 하는 거 아니다, 그건 확실해요. 기회가 있으면 영원히 하고 싶고, 그것이 김포비행장에 내렸을 때 나의 목적이고 사명감이었어요.”
그리고 13년이 지난 2023년 만 82세의 고령이 된 김성근 전 감독은 또다시 야구 감독으로 경기장에 섰다. JTBC가 기획한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 이승엽 감독의 후임으로 영입된 것이다. 최강야구는 프로야구에서 은퇴한 선수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프로구단의 2군 선수, 아마추어 야구단 등과 한 시즌에 31경기를 치르고, 승률 7할을 달성하지 못하면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자발적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82세 노장 감독은 누군가에게 의존적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프로 출신의 선수들에게 위엄 있고 존경받는 스승으로 존재한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인 아마추어 선수들부터 상대 팀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하우와 가르침을 전수받고자 그를 따르는 모습에서 노인을 넘어선 노장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최강야구가 지닌 또 한 가지 의미는 프로구단의 은퇴 선수로서 뛸 무대가 없었던 노장 선수들에게 선수로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한때 프로 무대에서 인정받았지만 이제는 무대 뒤로 내려온 그들을 조명함으로써, 현역 시절 정상에 서기까지 그들의 삶을 이끌어왔던 실력과 열정, 삶의 철학들이 세대를 초월해 시청자들에게 재조명되고 있다. 미래 프로 선수를 꿈꾸며 그들과 경쟁하는 후배 선수들에게 주는 가르침과 교훈의 의미도 배제할 수 없다.
11일 최강야구의 폐지 여부를 가르는 폐지결정전을 앞두고 그들은 비장한 각오로 경기장에 섰다. 강릉영동대와 1차전 경기에서 패한 후 이어진 2차 경기에서 주장 박용택이 팀에 건넨 한마디는 “만일 이 프로그램이 없어졌을 때 내가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상상해 보라” 였다. 자신의 전문 영역 등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와 그렇지 못한 삶이 주는 처절함은 비단 나이가 문제가 아님을 이 사회에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러한 최강야구라는 무대의 역할은 비단 야구에만 한정된 의미가 아니다. 인구 고령화 이슈가 사회적 논의로 대두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가 ‘은퇴자와 노령자의 가치 재창출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고 있는지를 이 사회에 묻고 있다.
돌봄의 의미를 선행적 돌봄과 후행적 돌봄과 나누어 규정한다고 할 때 최강야구의 사례는 ‘선행적 돌봄’에 속한다. 노인을 약자와 타의적 배려의 대상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년층이 자신의 본연의 역할과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치 않은 독립적 객체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년층은 일정 수준의 건강 수준을 유지하도록 환경적 조건과 사회적 동기를 부여받는다. 또한 사회적 집단 내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사회적 동물로서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노년층의 소득 창출 활동을 비롯해 재능 기부, 자기 계발, 문화 취미 활동 등으로 실현할 수 있다.
반면, 후행적 돌봄은 선행적 돌봄의 후속적 개념이다. 선행적 돌봄에도 불구하고 노령인구가 불가피하게 경험하게 될 신체적 한계 등으로 자발적 의지에 의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사회적 활동이 어려운 단계에 진입할 경우 이를 보조할 사회적 시설 및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간병인 시스템을 비롯해 요양 시설 사업, 보조기기 및 의료기기, 보장 서비스 등이 이 영역에 속한다.
돌봄 경제의 현주소…후행적 돌봄에 초점
각각의 영역에서 민관은 어떠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는지를 분리해 살펴본다.
선행적 돌봄 차원에서 금융업계는 디지털화되는 사회적 흐름에서 노년층이 소외되지 않고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서비스 등을 우선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9월 26일 서울시 중구 소재 장충체육관에서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주최하는 ‘2023 서울 시니어 스마트 페스타’에 참여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2023 서울 시니어 스마트 페스타’는 어르신들의 스마트기기에 대한 접근 기회를 강화해 어르신들과 동행하는 스마트 복지를 실현하고자 진행하는 사업으로 이날 행사에는 어르신 약 2500명이 참석했다.
현장에 방문한 어르신들은 스마트 기기 경진대회, 스마트 골든벨 등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상설부스에서 스마트 건강, 스마트 돌봄 등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신한은행은 상설 부스에 ‘시니어 스마트 연금라운지’를 설치해 연금 수급 고객을 위한 모바일 전용 ‘연금 라운지’ 서비스를 소개했다. 또한 모바일 금융 앱 교육용 콘텐츠 ‘신한 쏠(SOL) 쉬운 가이드’도 함께 안내해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 고객들이 쉽게 디지털 금융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신한은행은 ‘ESG 상생 프로젝트’를 통해 상생금융 차원에서 고령층 고객을 위해 매월 복지관에 방문해 금융 서비스 및 교육을 제공하는 ‘찾아가는 시니어 이동점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니어 고객에게 실질적인 디지털 금융교육 및 기기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금융교육센터 ‘신한 학이재’도 운영하는 등 사회의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선행적 돌봄 영역은 개발 초기 단계로 노인층과 여러 세대가 기존에 형성된 사회 테두리 내에서 교류를 하거나, 노년층이 사회 기능의 일부로서 자아를 실현하는 경제적 패러다임 창출, 관련 기업 전략은 아직 개발이 미미한 상황이다.
반면, 현재 민관의 노년층을 위한 돌봄 경제 개발 방향은 후행적 돌봄에 우선 초점이 맞춰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커뮤니티케어추진팀장은 ‘돌봄경제 키운다’ 보고서를 통해 “정부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건강관리, 의료, 요양, 돌봄 등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받으며 살던 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 통합 돌봄’,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커뮤니티케어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규 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서비스 제공 방식의 혁신에 대한 요구가 첨단 융복합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5G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보조기기와 돌봄기술(care technology) 개발, 서비스 제공 업무 영역의 디지털화는 보건복지 영역에 첨단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토교통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12월 14일 화성동탄 택지개발사업지구 내 의료복지시설용지에 ‘헬스케어 리츠’ 사업에 참여할 민간사업자 공모에 나섰다. 헬스케어 리츠로 개발될 부지는 화성동탄2 지구 약 5만6000평(18만6487㎡)의 의료복지시설 용지다. 민간사업자는 헬시니어주택을 비롯한 의료ㆍ업무ㆍ상업ㆍ문화ㆍ주거 등을 복합 개발하게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헬스케어 리츠는 국내에서는 처음 도입되지만, 미국의 경우 125조 원 규모의 시장으로 고령화 시대를 맞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험업계는 저출산·고령화로 수입보험료 감소 등 경영환경이 악화하자 요양사업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노령층을 위한 독자적 공간 창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양상이다.
삼성생명은 내년 1분기 요양사업 계획을 확정 짓기 위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삼성 노블카운티를 운영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신규 요양시설 설립과 시니어 관련 보험상품, 건강관리 서비스 상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B라이프생명은 올해 10월 도심형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KB골든라이프케어'를 자회사로 편입하며 요양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2025년엔 서울 강동·은평빌리지, 경기 광교빌리지 등 3곳을 추가해 2년 후 총 6개의 시니어 케어 인프라를 갖출 계획이다.
신한라이프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노인복지주택 단지(실버타운) 조성에 나섰다.
코레이트자산운용과 시니어 케어 서비스 전문운영사 케어닥은 12월 18일 시니어 주거 개발 및 운영사업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사는 주거 시설을 시작으로 시니어 부동산 전반에 대한 투자 및 개발 전략을 마련하고, 초고령 사회에 부합하는 투자와 서비스 제공을 이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80~90세에 진입하면 요양 서비스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노년층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요양시설과 서비스 공급을 검토해야 한다"며, "보험사들의 진출로 양질의 요양시설이 빠르게 확충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후행적 돌봄이 창출할 사회경제적 가치는 고령화 사회에 따라 불가피하며, 또 주요한 신사업 영역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다만, 이같은 발전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요소는 노령층이 자발적이고 독립적 객체로서 사회적 활동을 전개하는 선행적 돌봄 사업의 공동 발전이다.
이를 배제한 채 후행적 돌봄 경제에만 의존할 경우 돌봄의 대상인 노년층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약자이자 돌봄이라는 경제 행위의 도구화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선행적 돌봄과 후행적 돌봄을 함께 발전시킬 경우 액티브 시니어로서 노년층이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효과를 1차적으로 창출하고, 2차적으로 후행적 돌봄의 경제적 유익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결국 고령화 사회로의 변화에서 우선시해야 할 사항은 노인을 약자와 타의적 배려의 대상로 보는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액티브 시니어라는 용어가 암시하듯 신세대 노년층은 독립적 생활과 자아 성취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고령화가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이 고령화가 경제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에서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사회적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경제적 전략과 제도의 공동 개발이 필요하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