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온라인 플랫폼 규제’ 논란… ‘독점 남용 제재 vs 역차별’ 주장 팽팽

“소비자 후생 저해 용납할 수 없어”… “국내업체만 묶어 놓고 구글 등 해외 사업자 풀어주는 격” 비판

한원석 기자 2024.01.10 11:50:00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겠다며 추진 중인 가칭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 경촉법)’을 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네이버, 카카오 같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일종의 ‘플랫폼 재벌’로 지정해 경쟁업체의 시장 진입과 사업 활동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전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IT(정보통신) 업계를 중심으로 국내 IT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 ‘플랫폼 공정 경쟁촉진법’ 입법 추진

 

지난해 12월 19일 공정위는 ’플랫폼 경촉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법은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몸집이 큰 소수의 플랫폼 기업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사전에 지정해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법안에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처럼 거대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거대 플랫폼’으로 지정된 사업자는 자사 상품 또는 서비스를 우대하거나 ‘끼워팔기’, 경쟁 플랫폼을 이용하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거래 조건을 경쟁사보다 유리하게 해달라는 등의 ‘갑질’이 금지된다.

공정위는 주기적으로 국내외 플랫폼에 관계없이 매출액과 이용자 수·시장점유율·시장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서비스별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할 방침이다. 어떤 기준에 따라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할지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포털은 구글·네이버, 메신저는 카카오톡, 동영상 스트리밍은 유튜브 등 핵심 플랫폼 기업이 지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한 언론에 “EU, 독일은 3년 혹은 5년을 주기로 지배적 사업자를 정해 독점력 남용에 대응하고 있다”며 “제정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국내 상황에 맞게 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19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 제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법안을 어길 경우 부과되는 과징금 역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이를 어긴 기업엔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보다 더욱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선 현재 관련 매출액의 최대 6%인 과징금 부과 기준을 최대 10%로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불법 행위와 관련된 매출이 아닌 전체 매출액 등으로 부과 대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소수의 플랫폼 사업자가 시장을 독식함에 따른 소비자·소상공인·스타트업의 피해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플랫폼 경촉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이를 통해 스타트업 등 다른 플랫폼들이 마음껏 경쟁하는 시장환경이 조성되면 소상공인과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에 용산까지… 정치권 플랫폼 규제 입법에 나서

윤석열 대통령(사진)이 지난해 12월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플랫폼 독과점 구조가 고착되면 소상공인들이나 소비자들이 선택의 자유를 잃게 된다”면서 “기득권이나 독점력을 남용해 경쟁을 제약하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시정 노력과 함께 강력한 법 집행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열린 민생 타운홀 미팅에서 “플랫폼이 경쟁자를 다 없애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독점한 후 가격을 인상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같은 달 28일 국무회의에서도 “독과점화된 대형 플랫폼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공정위에 지시하기도 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상정됐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러한 플랫폼 규제 법안 추진에 나선 것은 플랫폼 기업의 반칙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후 제재를 규정한 현행법으로는 이에 대한 제재가 늦게 이뤄질 수밖에 없어 이미 공고화된 독과점 생태계를 깨기 어려운 데다, 독과점으로 인한 수수료‧가격 인상 등의 피해를 소상공인이나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러한 플랫폼 규제 입법 움직임은 여의도로부터 비롯됐다. 제21대 국회가 개원한 직후인 2020년 7월 송갑석 의원이 발의한 법안부터 지난해 11월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이르기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안을 포함해 현재 20건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IT업계, “변화무쌍한 업계 상황 고려 안해” 지적

서울 시내에 배민라이더스 오토바이가 늘어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플랫폼 규제법 추진에 IT업계를 중심으로 반발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법안 준비 과정에서 IT·스타트업 업계 의견수렴이 없었던 데다, 입법 추진 발표 뒤에도 구체적인 법안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업계 등에서 먼저 지적하는 것은 정부가 IT업계의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생활에 밀접한 IT업종 중 하나인 배달앱은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기조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매출액은 2020년 1조 원에서 2021년 2조 원, 2022년 2조9500억 원으로 3조 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배달앱 이용자가 감소하면서 업계는 위축됐다. 빅데이터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배달앱 3사(배민·요기요·쿠팡이츠)의 월간활성이용자 수(MAU)는 2928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74만8000여 명) 감소했다. 한때 MAU가 3500만 명을 넘나들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매출 규모가 줄어들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법안에서처럼 ‘직전 3개 사업연도’를 기준으로 시장지배적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먼저 지정하게 되면, 이렇게 변화무쌍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업체와 해외 업체간 ‘역차별’ 우려 나와

미국 구글 사무실. 사진=연합뉴스

업계에서는 구글 등 해외 업체와 국내 업체와의 ‘역차별’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과징금 부과 기준인 매출액의 경우, 회계상으로 투명하게 드러난 국내 업체와 달리 해외 업체가 제대로 공개할 리 없어 실효적인 법 집행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22년 구글코리아의 매출은 3449억 원, 영업이익은 278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의 잇따른 지적에도 수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앱 마켓 수수료는 이번에도 매출에서 제외돼 ‘조세 회피’라는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앞서 구글코리아 측은 구글플레이의 서버가 싱가포르에 있다는 이유로 사업 매출이 싱가포르 법인인 구글아시아퍼시픽에 귀속된다며 국내 매출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명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열린 한국재무관리학회 세미나에서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2022년 구글코리아의 매출은 3449억 원의 최대 30배인 10조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면서 “구글코리아의 매출과 법인세는 우리나라 최대 플랫폼 기업 이상이지만, 정작 감사보고서상 매출 및 법인세는 중소기업 수준”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의 경우 2022년 별도기준 매출은 5조5126억 원, 영업이익 1조5538억 원을 기록해 4746억 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같은 시기 구글코리아가 낸 법인세는 169억 원으로, 최소 6조 원으로 추정되는 앱 마켓 수수료가 매출에 포함되면 법인세 규모는 약 5000~6000억 원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구글은 지난해 8월 공정위로부터 모바일 게임사들의 경쟁 앱 마켓 게임 출시를 막고 자체 앱 마켓인 구글 플레이에만 게임을 출시하도록 해 시장 경쟁을 저해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421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고, 같은해 10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47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월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제정‧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보도자료에서 “현재까지 누적된 온라인 플랫폼 분야의 법 집행 사례 등을 토대로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독과점 남용행위의 심사기준을 구체화한 것”이라며 “시장획정, 시장지배력 평가 기준 등을 제시해 법 집행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대표적인 행위 유형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예시함으로써 향후 법 위반행위를 예방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심사지침을 시행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 행정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정부 스스로가 저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거래법 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공정위가 심사지침을 발표한 지 채 1년도 안돼 (입법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뜨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병준 서울대 교수는 “현재 온라인 플랫폼법 없이도 충분히 규제하고 있는데 (입법할 경우) 사실상 국내기업만 규제하겠다는 의미”라며 “사전 규제를 하게 되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문화경제 한원석 기자>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