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 찾아 가는 길 (1)] 개성에서 임진나루 건너 강원도로 첫걸음

이한성 옛길 답사가 기자 2024.01.16 09:20:34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그는 풍운아였다.

조선초 1435년(세종 17년)에 성균관 옆 반궁리(泮宮里)에서 태어나 1493년(성종 24년) 59세의 나이로 만수산(萬壽山) 무량사(无量寺)에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그의 생(生)에 많은 날들은 길 위에 있었다.

어려서부터 말보다 글을 먼저 익히고 시재(詩才)가 뛰어나 세종 임금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오세신동(五歲神童)으로 불리던 그는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이른바 癸酉靖亂) 소식에 충격을 받아 과거를 때려치우고 승려의 행색으로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19세(1453년) 때였다. 59세가 되던 해(1493년) 충청도 무량사에서 숨을 놓을 때까지 간간이 머물기는 했지만 그의 방랑은 계속되었다.

그의 행적은 달리 기록된 것이 없는데 그의 시(詩) 길을 따라가면 어렴풋이 그 행적을 알 수 있다. 관서(關西: 평안 남북도)를 돌고 금강산을 유람하고 관동(關東: 강원도)을 돌고 호서(湖西: 충청 남북도)와 호남(湖南: 전라 남북도)을 돌더니 경주 금오산(金鰲山: 남산)에 한동안 머물고 명주(溟州: 강릉)와 양양에 머물기도 했다.

 

임진강의 모습. 사진=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리는 후인들은 흩어져 있던 그의 글을 모아 매월당집(梅月堂集)을 묶었다. 시와 한문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 그리고 불교에 관한 글들인데, 이제부터 매월당의 시를 따라 그가 지나간 길을 더듬으려 한다. 이른바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이며 유관서록, 유관동록, 유호남록, 유금오록이다. 관서(關西) 지방은 통일 후 찾아가기로 하고 관동지방(關東地方)으로 나선 매월당의 길을 찾아 나서 보자.

매월당이 관서 지방 방랑을 끝내고 개성 송림사(松林寺)를 떠나 관동(關東)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임진강을 건너는 일이었다. 25세가 되던 해(1459년) 봄이었다.

임진나루를 건너며

물가 향그런 풀 마침 시들었다 피는데
오리는 봄 물에 떠 유유히 꽉꽉대네
노(櫓) 소리 부드러워도 놀래 날아가니
지는 해는 서쪽 바다 쪽 상기도 남았구나

渡臨津
汀洲芳草正萎萋。鳧泛春波自在啼。柔櫓一聲驚起去。夕陽猶在海門西。

 

임진강변 나루터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 사진=이한성 옛길 답사가
정선 작 ‘임진적벽’.

그는 아마도 장단에서 임진나루를 건너 파주 땅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이른 봄 오리들은 아직 북으로 날아가지 않고 임진강을 유유히 헤엄치다가 뱃사공 노(櫓) 소리에 놀라 날아올랐다. 560여 년 전 임진강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임진강변의 반구정. 사진=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은 나루를 건너자 언덕 위 정자에 올라 봄 강을 바라본다. 아마도 화석정(花石亭)이거나 장산(長山), 조금 멀리 갔다면 반구정(伴鷗亭)에 올랐을 것이다. 떠도는 여정이지만 마음은 한가롭다. 후세에 겸재는 이곳의 풍경을 임진적벽이라는 이름으로 그렸다.

임진나루 언덕 정자에 올라

버드나무 강 언덕 작은 정자에
오르니 맑은 흥 가득하구나
물결은 제 절로 철썩이고
사람 그림자는 너울거리네
바위ㅅ가 낮은 곳 물고기는 어리蓮을 불어내고
물가를 노니는 기러기는 모래에서 장난치네
이 저녁 어디에서 피리를 불까?
부는 곳은 틀림없이 저 푸른 구름 속

登臨津岸亭
柳岸江亭小。登臨淸興多。波聲自瀺灂。人影正婆娑。磯淺魚吹荇。汀遙雁弄沙。夕陽何處笛。吹斷碧雲窠。

 

임진강변의 화석정. 사진=이한성 옛길 답사가

떠도는 나그네지만 매월당의 마음은 신선(神仙)이다.

고리작(高麗적)에도, 매월당의 후세에도 이곳 임진나루와 고랑포, 임진강과 정자들을 읊은 시(詩)들이 많고도 많다. 고려 이규보의 시 한 편 보고 가자.

임진강을 건너며 / 이규보

조각배로 날아가듯 강을 건너니 물기가 서늘하게 옷깃을 적시네
푸른 강 언덕에 한 쌍 백로 서있고 파란 하늘 어디로 돛배는 가는고?
산은 붉은 해를 품고 강마를 나무에 나직하고 바람은 파도 몰아 낚시터에 부딪네
처음 동문 나설 적 쓸쓸했는데 강 건너니 더욱 쓸쓸함 더하네

渡臨津 /李奎報

扁舟駕浪疾於飛 水氣凄涼逼客衣 綠岸有時雙鷺立 碧天何處一帆歸 ​
山含紅日低村樹 風卷銀濤碎釣磯 初出東門尙怊悵 渡江無奈益依依

이규보는 왜 쓸쓸했을까? 왕성(王城)을 떠나가는 남행 길, 그는 그랬나 보다.

임진(臨津)은 우리 곁에 있던 강(江)이었다.

이제는 우리보다 일본 사람들이 노래로 더 많이 부르는 강이 되었으니 그것도 아이러니하다. 이랑은 ‘임진강’으로, 가또(加藤)은 ‘임진가와(臨津河)’로 기타를 치며 부른다. 유튜브 한 번 들어야겠다.

머지않은 날 이곳 임진나루가 우리 시대에 남북의 길로 열리기를 기원하며 이제 매월당의 길을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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