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동환 금융연구원 명예연구위원 “복합위기 대비해 부작용 최소화 대책 마련해야”

[경제 전문가를 만나다 ①]- “긴 호흡의 종합적인 대책 만드는 게 중요… 금융안전망 컨트롤타워 만들 때 싱가포르 테마섹 벤치마킹해야”

한원석 기자 2024.03.28 17:44:30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KIF) 명예연구위원(사진)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촬영에 응하고 있다. 사진=한원석 기자


경제 전문가를 만나 우리 경제의 이모저모에 대해 들어보는 시리즈 인터뷰 첫 번째. 김동환 금융연구원 명예 연구위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일본 동경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금융연구원에서 은행팀장, 금융정책·제도팀장, 금융산업·제도연구실장, 경영연구실장, 부원장을 역임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금융분야 전문가다. 아울러 금융위원회 심의위원,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등 수 많은 기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은행법학회 부회장, 한국금융학회 부회장 등도 지냈다.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그의 깊은 고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 지난 2022년 말 펴낸 ‘한국경제의 복합 위기 가능성과 금융안전망’ 보고서에서 한국경제의 중장기 불안요인으로 ▲성장과 고용·물가의 딜레마 ▲가계부채 문제 ▲부동산가격 거품붕괴 가능성 ▲코로나발(發) 산업구조의 지각변동 이렇게 4가지를 들었다. 보고서가 나온 지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지금 상황도 별로 다른 것 같지 않다. 어떻게 보는가?

 

“코로나발 산업구조 변동을 제외한 나머지 3가지 주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문제점을 지적하며 오랜 기간 관찰해 왔다. 이 결과 상황이 변하지 않은 게 아니라 더욱 악화되고 있다.

먼저 ‘성장과 물가의 딜레마’는 물가를 잡으려다가 성장을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보고서를 낸 때는 저물가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세계적인 인플레가 시작될 시점이었다. 중앙은행에서는 당연히 금리 인상으로 고물가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성장 동력이 크게 떨어져 저성장이 고착돼 왔다. 저성장 시대인데도 금리를 인상할 수 없고, 한편으로는 고물가 시대라 금리를 올려야 되는데 성장 동력이 꺼져서 금리를 올릴 수가 없는 이런 성장-물가의 딜레마로 인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IT기술 발전과 디지털화 진전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뤄지면서 성장을 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 ‘성장과 고용의 딜레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산업과 굴뚝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에 성장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사실 신산업이나 신기술, 첨단 기술의 제조업은 인력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통산업이 위축되면서 고용을 못하니까 경제가 발전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 성장과 고용의 딜레마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다음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 거품붕괴 가능성’은 오랫동안 계속 우려가 제기돼 왔다. 우리나라는 202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었다. 100% 넘는 나라가 세계에 몇 나라밖에 없다. 최근 가계부채 대책과 부동산 정책 남발로 한계 상황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제결제은행 자료를 인용해 2022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스위스와 호주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편집자 주)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연합뉴스

-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저출생 상황이 해결해 주고 있다는 자조섞인 분석도 나온다.

 

“‘성장과 고용의 딜레마’는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어서 저출생 상황과는 관계가 없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탈공업화’와 같은 의미로, 제조업 비중이 줄고 서비스업 비중 늘어나는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 비중이 훨씬 높다. 그런데 수출주도의 제조업은 고용유발형 굴뚝 산업에서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노동절약적인 첨단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반면, 내수 위주의 서비스산업은 생산성이 낮은 데다 노동집약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은 (첨단기술) 인력이 부족하고,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산업은 과잉취업 상황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조업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를 걸어도 고용 사정이 개선되기 어렵다.”

-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 문제는 일본의 사례를 많이 얘기한다.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하면 어떤가?

“일본에서 부동산 거품이 생겼을 때는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탈)이 튼튼한 경기 호황기에 거품이 형성되고 붕괴됐다. 반면 최근 한국경제의 기초체력과 경기상황은 과거 일본과 달리 매우 취약해 큰 거품이 형성될 가능성은 낮다.

 

다만 붕괴할 경우 그 부작용인 디플레이션이 오래갈 우려가 있다. 게다가 일본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에서 제일 임금 형평성이 좋은 나라여서 양극화 문제가 심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어떤 나라든지 중산층이 많아야 경제가 탄탄한데, 우리나라는 (여러 조사에서) 스스로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양극화 문제까지 있어 거품 붕괴시 불황이 일본보다도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KIF) 명예연구위원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한원석 기자

- 가계부채의 경우 고강도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있지만 부동산 거품 붕괴시 자산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우리나라 가계는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데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한 반면교사로 비교적 고강도(40~50%)의 LTV‧DSR 규제를 해왔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나 부채 상환능력이 40~50% 떨어지지 않는 한 가계가 파산 상태에 빠지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산이 부채보다 많더라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게 되면 자산 가치가 떨어지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급락으로 인한 자산 디플레로 시작했다. 저성장과 양극화가 동시에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경우 단순히 자산 디플레로 끝나는 게 아니고 ‘경제 전반의 디플레’로 번질 우려가 있어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또한 우리나라는 연령층별로 자산‧부채 구성이 다른데, 만약 부동산 거품 붕괴가 시작되면 자산이 많은 중장년층 이상이 더 타격을 받게 된다. 자산대비 금융부채의 비율이 중장년층보다 높은 청년‧저소득층의 경우에는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

 

-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는 금융위기와 실물위기가 상호 부정적 영향을 주고받는 ‘복합위기’의 특성을 보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금융안전망 구축을 처방전으로 제시하고 ▲자산거품 ▲가계부채 ▲디플레 대책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당국이 가장 먼저 해야할 조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자산거품이 꺼지고 가계부채 문제가 커지면 디플레로 연결이 된다. 그래서 무엇을 먼저 하냐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엮어서 종합적인 대책을 만드냐의 문제다. 세계 어떤 나라도 거품이 붕괴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자산거품에 대한 대책은 거품 붕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거품 붕괴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있다. 단기적으로 하우스‧렌트푸어 대책을 마련해 채무가구의 주거와 경제 안정을 꾀하고, 장기적으로는 자산시장을 재테크의 장으로부터 건전한 실물투자의 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부동산이 ‘소유’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이 돼야 한다. 소유의 대상이 될 경우 주택 가격이 문제가 되고, 이용의 대상이 될 때는 거기서 나오는 현금 흐름이 문제가 된다. 전세 제도가 없어지고 모두 월세로 바꾸게 되면 사람들이 굳이 자기 집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일이 없어진다. 다만 인식과 제도가 바뀌어야 되는 거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계부채 대책은 부동산거품 붕괴, 금리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있다. 저소득‧청년가구를 주요 타깃으로 부채의 구성 및 원인 등에 따라 가계부채 대책을 차별화해야 한다. 디플레 대책까지 모두 긴 호흡의 정책적 대비가 필요한 사안인 만큼 단기적‧정치적 목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세계적인 국부펀드인 싱가포르의 테마섹(Temasek) 홈페이지. 사진=테마섹 홈페이지 갈무리

- ‘신(新) 금융안전망’을 위해 자금중개기능을 직접 수행하는 정책금융기관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싱가폴 테마섹(Temasek) 같은 기관을 설립할 것을 제언했다.

“지금도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존재한다. 문제는 관할 부처가 달라 손발이 안 맞는 데다, 개별적인 정책금융기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생긴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정책금융기관만으로는 인센티브가 부족한 데다, 자원개발이나 인수합병(M&A)에 (우리나라) 정책금융기관이 들어간다고 하면 다른 나라와 통상마찰이 생길 수 있어 한국경제의 공급망 확보, 국부창출을 원활히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싱가포르의 테마섹을 벤치마킹해 전통적 정책금융기관과 차별화된 다양한 소유‧지배구조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금융과 실무를 아우르는 금융안전망 컨트롤 타워를 새롭게 만들 때 테마섹을 참고해야 된다는 얘기다.”

- 은행권이 2022년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예대마진 늘려 배불렸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은행들은 비이자수익 강화에 나서며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은행 업무범위 확대가 막혀있는 상황이다. 이에 금융규제의 기본 방향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은행의 비금융회사 주식 소유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은행 규제는 업무영역 규제와 소유 규제로 구분돼 있다. 업무영역 규제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완화되고 있는데, 상업은행이 사양 산업이 되서 비은행 업무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행 은산분리 규제는 디지털 금융혁신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의 균형발전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물론 디지털화와 관련된 영역의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업무 제휴하는 것을 완화해 주자는 것이다.

금융의 디지털화는 은행 등 금융회사가 주도하는 방식과 IT 등 비금융회사가 주도하는 방식이 있는데, 비금융회사의 은행업 진출보다는 당국의 규제‧감독을 받는 은행의 비금융회사 주식 소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금융안정성이나 건전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디지털 영역에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할 것을 주장했다. 사진=한원석 기자

- 미 연준이 올해 2분기부터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 인하에 나서더라도 금리 역전으로 인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올해 내내 동결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예측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글로벌 마켓의 동향을 보고 미국과 금리 격차가 많이 나는 것을 우려해서 상황에 맞게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려야 된다는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성장-물가의 딜레마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어 한국은행은 금리동결이란 애매한 스탠스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거나 디플레 상황이 도래해야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전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살필 것으로 본다.

미국은 거품붕괴 우려 때문에 고금리 지속은 어렵다. 다만 연착륙(soft-landing)을 위해 금리 인하 속도는 조정하거나 최대한 늦출 가능성이 있다. 빠른 금리인하는 또 다른 거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 영향으로 ‘저 PBR’주가 각광받고 있다. 당국은 이 프로그램 핵심 내용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을 개정키로 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조치’라는 옹호론과 ‘눈가리고 아웅’식 대책으로 전통산업 중심 주가 상승을 부추겨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이드라인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인프라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그 취지는 옳다. 하지만 주가상승으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어서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곤란하다. 일본도 2012년 이후 아베노믹스를 시작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지만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 한국이나 일본은 수출의존형 성장이나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경제성장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리스크 테이킹을 촉진하는 자본시장 발전이 필요하다.”

<문화경제 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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