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뽐내는 한정판②] 아픈 역사 기억하거나 오랜 역사 기념하거나… 주류 한정판

보해양조, 영화 ‘택시운전사’와 컬래버한 특별판 선보여… 페르노리카코리아, ‘더 글렌리벳’ 200주년 기념 에디션 출시

김응구 기자 2024.05.08 17:20:11

보해양조는 1980년 5월의 광주·전남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 한정판 ‘택시운전사×잎새주’를 선보였다. 사진=보해양조

지금 당장 머릿속에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한정판)’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어떤 제품이 가장 먼저 생각날까. 단연 술이다.

기업은 시즌이나 기념일에 맞춰 한정판을 선보이고, 소비자는 그 가치와 희소성에 따라 오픈런도 감수한다. 허나 한정판이라고 모두 인기를 얻는 건 아니다. 예측이 쉬운 제품은 외면받기 쉽다. 그런 이유로 기업들은 스토리에 더욱 집중한다. 왜 한정판을 내는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담은 소주 ‘잎새주’

영화 ‘택시운전사’는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사진=쇼박스

보해양조는 얼마 전 재밌는 한정판을 선보였다. 소주 ‘잎새주’와 영화 ‘택시운전사’(2017)의 컬래버 특별판이다. 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주류와 대중문화의 결합은 종종 있는 일이니. 그래도 여느 조합과 다른 건, 이 컬래버에는 한 시대를 투영하는 진한 울림이 있다.

대충 눈치챘겠지만, 이번 컬래버의 주제는 ‘5·18 민주화운동’이다. 보해양조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1980년 5월을 기억하는 매개체로 보고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용기’를 함께 기억하고자 잎새주와 택시운전사를 일체화했다.

영화는 그 당시의 광주가 배경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1937~2016)와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배우 토마스 크레치만이 힌츠페터, 송강호가 김사복 역할인 김만섭을 연기했다. 관객은 1218만6205명을 끌어모았다.

일단, 이번 한정판을 살펴본다. 기존 잎새주와 다를 바 없다. 용량 360㎖에 알코올도수 16.5도 그대로다. 단지 라벨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먼저, 녹색 바탕에 ‘택시운전사’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위에는 그보다 작은 글씨로 ‘1980년 5월, 광주로 간’이라고 쓰여있다. 붙여 읽으면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다. 그 밑에는 영화에 나왔던 ‘브리사’ 택시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라벨 맨 밑의 ‘잎새주가 잠시 자리를 내어드립니다’라는 글귀도 눈길을 끈다.

이 ‘택시운전사×잎새주’ 특별판은 광주·전남 지역 한정 출시 제품이다. 4~5월 두 달간 판매한다. 보해양조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선 판매 계획이 없고, 음식점·주점은 거래 도매업체를 통해서 받을 수 있다.

보해양조는 내친김에 이벤트까지 기획했다. 4월 27일 프로축구 광주FC의 홈구장인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이곳을 찾은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현장 이벤트를 진행했다. 광주·전남 지역민과 함께 5월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의 행사다.

먼저, 구장 게이트2 쪽에 마련한 이벤트 부스에선 영화에 등장하는 브리사 택시의 실제 모델로 꾸민 포토존을 운영했다. 아울러 부스 방문객 대상의 포춘쿠키 추첨이나 경기 중 하프타임 이벤트에 당첨된 관객에겐 브리사 피규어를 제공했다. 이 중 하프타임 이벤트 당첨자에겐 광주FC 선수의 사인이 담긴 브리사 피규어를 증정했다.

보해양조는 이 이벤트를 프로야구 경기장으로도 옮겨 진행한다. 5월 중 기아 타이거즈 전용 구장인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광주축구전용구장 때와 비슷한 이벤트를 펼칠 계획이다.

영화 속 택시 모델과 똑같은 브리사 피규어는 프라모델 제작업체 아카데미과학의 ‘문방구 시리즈’ 중 하나다. 원래는 빨간색 브리사이고 꽤 인기 있는 제품이지만 이번 한정판을 위해 영화 속 택시와 같은 초록색 브리사로 특별히 제작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와 컬래버한 ‘잎새주’ 라벨에는 영화 이름과 택시 ‘브리사’를 새겨넣었다. 사진=보해양조

말이 나온 김에 브리사 얘기도 하고 넘어간다. 기아산업(지금의 기아)이 1973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한 소형 세단이다. 투도어(two door)의 픽업트럭도 있었다. 원형 모델은 일본 내수형 자동차 ‘마쓰다 패밀리아(マツダ ファミリア)’다. 브리사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산들바람’이라는 의미다.

브리사는 택시운전사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픽업트럭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과거 회상 장면에서 소독차로 등장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영화화한 ‘1987’(2017)에도 나왔다. 재밌는 건 거리 시위 장면에서 초록색 브리사 택시가 잠깐 등장하는데, 택시운전사의 바로 그 택시다.

택시운전사가 2017년 8월 2일, 1987이 그해 12월 27일 개봉이다. 택시운전사와 1987에 나왔던 브리사는 당시 전두환 정부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단종됐다. 또 송강호가 주연한 ‘마약왕’(2018)에선 택시운전사의 그 택시를 은색으로 도색해 다시 한번 등장시켰다.

5월이다. 며칠 후면 18일이다. 광주·전남인들, 아니 우리 모두에게 이보다 더 의미 있는 한정판이 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서두에 적었던 ‘재밌는 한정판’이라는 표현은 ‘묵직한 한정판’으로 고쳐 써야겠다.

 

브랜드 역사가 200년? 기념할 만하지

페르노리카코리아는 ‘더 글렌리벳’ 200주년을 맞아 한정판 ‘더 글렌리벳 12년 200주년 에디션’을 출시했다. 사진=페르노리카코리아

싱글몰트위스키 ‘더 글렌리벳(The Glenlivet)’이 올해로 브랜드 출시 200주년을 맞았다. 인간의 수명보다도 훨씬 긴 이 위스키를 기념하는 건 당연한 일. 해서, 페르노리카코리아는 4월 중순 더 글렌리벳의 브랜드 헤리티지와 혁신의 여정을 기리는 한정판 ‘더 글렌리벳 12년 200주년 에디션’을 출시했다.

그럼, 더 글렌리벳은 어떤 위스키일까. 주류 애호가라면 더 이상 새로울 것 없겠지만 위스키 초심자를 위해 간략히 소개한다.

설립자는 조지 스미스(George Smith). 1824년 첫선을 보였으니 올해로 꼭 200년째다. 불법 증류가 성행하던 1800년대 초 싱글몰트의 메카인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에서 합법적인 증류 면허를 취득한 최초의 증류소다.

 

뛰어난 품질과 명성 덕분에 당시 더 글렌리벳을 모방하는 증류소가 적지 않았다. 대개 브랜드 이름에 ‘글렌리벳(Glenlivet)’이란 단어를 끼워 넣는 식이었다. 그런 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브랜드 이름 앞에 ‘유일’ 또는 ‘단 하나의’라는 뜻의 정관사 ‘The(더)’를 붙이기로 했고, 법원으로부터 상표등록인증을 받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더 글렌리벳의 200년은 우물, 증류기, 숙성, 이 세 가지가 만들었다. 물론, 앞으로도 변함없을 예정이다.

스페이사이드 스페이강 유역의 증류소 안에는 ‘조시(Josie)’라는 이름의 우물이 있다. 더 글렌리벳은 이곳의 광천수로 만든다. 보통의 지하수와 달리 미네랄이 풍부해, 보리에서 당분을 추출하는 과정인 매싱(mashing)의 촉진을 돕는다. 이후 발효과정에서 효모를 추가하면 그 당분은 독특한 향미를 갖는다.

조지 스미스는 몸통이 넓고 목이 긴 호롱불 형태의 증류기를 개발했다. 넓은 몸통은 효모 간 상호 작용을 촉진시켜 풍부한 과일 아로마를 추출하고, 긴 목을 통해선 불순물과 잡맛이 제거돼 더욱 섬세한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의 ‘더 글렌리벳’ 증류소는 위스키 숙성에 필요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사진=문화경제 DB

증류소는 위스키 숙성에 필요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해발 900피트가 넘는 이 지역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북부에서 가장 추운 곳이며, 1년 내내 일정한 기온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인공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12년급 이상의 싱글몰트 숙성을 위한 최적의 웰-에이징(well-aging) 환경을 제공한다. 아울러 깊은 풍미를 위해 일일이 손수 선별한 오크통만 사용한다.

이번 한정판 에디션은 200년 동안 쌓아온 더 글렌리벳만의 블렌딩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제품이다. 더불어 퍼스트 필(100% first-fill) 아메리칸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만을 담아 신선한 과일 향에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하고 강렬한 풍미가 특징이라고 페르노리카코리아 측은 설명했다.

주목할 건 또 있다. 이번 에디션에 적용한 패키지 아트워크도 특별하다. 앞서 페르노리카는 200년간 이어진 더 글렌리벳의 여정을 주제로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에 전 세계 42개국 아티스트들이 400개 넘는 디자인을 출품했다. 당선작은 콜롬비아 보고타의 ‘스튜디오 베르디(Berdi)’ 디자인이 선정됐다.

페르노리카코리아 미구엘 파스칼 마케팅 총괄전무는 “브랜드 출시 200주년을 맞은 더 글렌리벳은 독보적인 풍미와 훌륭한 품질의 위스키를 만드는데 항상 진심이었기에 긴 여정 동안 많은 싱글몰트 팬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미구엘 파스칼은 특히 “더 글렌리벳은 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기준을 세우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기반을 뒀다. 그래서 더 글렌리벳에게 올해는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의 200년을 내다보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정판은 어제도 나왔고 오늘도 나오며 내일도 나올 예정이다. 끝이 없다는 얘기다. 반기는 이가 있으니 꾸준하다. 이젠 가치의 시대다. 한정판에도 가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픈 역사를 담고 아주 오래된 역사를 기념한다. 한정판도 스스로 진화하는 중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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