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포만화 거장 이토 준지, 한국 팬들과 설레는 만남…“공포, 충분히 즐기길”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 전시 연장 기념 내한…부산서도 전시 이어갈 예정

김금영 기자 2024.09.30 11:21:44

27일 홍대 LC타워에서 열린 팬미팅 행사에서 라이브 드로잉쇼를 진행하고 있는 이토 준지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일본 공포만화 거장 ‘이토 준지’가 내한해 한국 팬들과 만남을 가졌다.

27일 홍대 LC타워에서는 이토 준지 팬미팅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몰입형 체험전시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 연장을 기념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현장을 찾은 팬들이 그린 이토 준지의 그림 공개를 비롯해 작가가 직접 진행하는 라이브 드로잉쇼 등의 시간으로 구성됐다.

이토 준지는 ‘토미에’, ‘소용돌이’, ‘소이치의 저주일기’, ‘목매는 기구’ 등 단편부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일본을 넘어 전 세계의 독자를 매료시킨 작가다. 한국에서도 ‘이토 준지 걸작집’, ‘이토 준지 공포만화 컬렉션’ 등 만화책으로 출판돼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으며, 다수의 작품은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바 있다. 특히 ‘이토 준지 매니악’이라는 타이틀로 20여 편의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주목받았다.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는 그의 작품을 기반으로 스릴과 공포, 기괴한 상상력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몰입형 체험전시로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를 거쳐 이번엔 국내에 상륙했다. 본래 이달 8일까지 전시 예정이었지만, 전시 기획사 웨이즈비에 따르면 연일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8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11월 3일까지 연장 전시에 들어갔다. 또한 서울 전시가 끝나면 부산에서도 전시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날 전시를 직접 체험해본 작가는 “내가 만든 캐릭터가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특별했다”며 “특히 캐릭터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더 공포감이 박력 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이토 준지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그는 공포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5살 때쯤 집에서 일본 호러 작가인 우메즈 카즈오, 코가 신이치의 만화를 보고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낙서처럼 시작했다”며 “창작적 영감은 주로 일상생활에서 찾는다. 이를 위해 영화, 소설 등도 많이 보면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음악도 많이 듣는다. 특히 현실에서 설명하기 힘든 기묘하고 무서운 설정을 수수께끼처럼 보여준 다음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나만의 공포를 풀어가고 있다”며 자신이 추구하는 공포 스타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그린 수많은 캐릭터 중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에 대해서도 밝혔다. 작가는 “소이치는 내 어릴 때 모습이 반영된 부분이 있다. 스스로도 내면에 뒤틀린 점이 있었는데 이를 최대한 강조해서 풀어냈다”고 말했다. 입에 나사를 물고 다니는 소이치는 평범한 가족들 사이에서 늘 기괴한 행동으로 튀며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캐릭터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토미에라고. 토미에는 극 중 최고의 미인이자 모든 사람들을 홀리는 매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미움 받아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캐릭터다. 작가는 “토미에가 데뷔작 캐릭터이기도 해 역시 애착이 간다”며 “중학생 때 동급생이었던 친구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었는데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마치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일어나는 기묘한 상황을 그리면서 토미에 캐릭터가 탄생했다. 극 중 토미에는 아무리 죽임을 당해도 다시 살아나는데, 아름다움과 징그러움이 공존하는 오묘한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토미에와 소이치 이야기는 비정기적으로 그리고 있다. 토미에 속편도 현재 그리는 중”이라며 “두 캐릭터는 비정기적이지만 계속 그려나가고 싶다”고 말해 토미에와 소이치를 기다리는 팬들을 설레게 했다.

공포 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죽음’이라고 한다. 이는 작가의 작품 속 늘 존재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내 작품엔 유령, 귀신이 등장하지 않고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SF적인 상황들이 등장한다. 많은 것들이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그린 작품 중 개인적으로는 ‘악마의 이론’ 단편이 가장 무서웠다.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담았는데, 작품 속 주인공이 자신의 생을 마감할 곳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장면이 그리면서도 섬뜩했다”고 말했다.

몰입형 체험전시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는 11월 3일까지 연장 전시에 들어갔다. 사진은 이토 준지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소용돌이'와 관련한 공간. 사진=김금영 기자

공포 만화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전했다. 작가는 “항상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나 또한 어릴 적 무서웠지만 보면서도 즐거움을 느꼈던 공포 만화에 대한 두근거림이 아직까지도 동기 부여가 된다”며 “또한 만화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만의 새로운 호러를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그의 공포 만화는 현재 열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작가는 “은퇴가 가까워지고 있는 나이라 최대한 많은 만화를 그리려 한다. 오리지널 호러를 최대한 많이 그리고, 현재는 ‘모비딕’을 원작으로 초자연 현상을 다루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현재 준비가 조금 늦어지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엔 꼭 시작하려고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만화가 영상화되는 작업 또한 좋아한다. 1998년 토미에가 처음으로 영상화됐을 때 매우 기뻤다. 기회와 환경이 된다면 직접 제작하고 싶기도 하다”며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좋은 기회가 닿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그는 자신의 공포 만화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하며 웃으면서도 “내가 재밌겠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 항상 타협하지 않고 밀고 나갔고, 무엇이든 결코 대충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을 알아준 게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에서 내 작품과 전시가 많은 사랑을 받아 기쁘다”며 “작품 속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전시의 경우엔 그렇지 않아 안심되는 부분이 있기에 충분히 소리를 지르면서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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