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예술위 아르코미술관, ‘접촉지대’로서의 미술관을 논하다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전

김금영 기자 2024.10.16 13:17:26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전 1층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의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의 만남, 개입, 상황들이 벌어지는 ‘접촉지대’로서의 미술관을 만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이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전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잠시 중단됐던 국제교류전의 일환이기도 하다.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관장은 “이번 전시는 2022년부터 시작한 국제협력 프로젝트로, 스위스 취리히를 기반으로 출판 및 기획 활동을 하는 비영리 조직 ‘온큐레이팅’의 도로시 리히터, 로날드 콜프 큐레이터와의 협력 주제 기획전”이라고 소개했다. 온큐레이팅은 온큐레이팅 저널과 전시 공간을 운영하며, 자료나 컬렉션을 인식론적 차원에서 연구하고 공간적으로 해석하는 큐레토리얼 실천과 전시의 형식 실험을 통해 동시대 현대미술의 비평적 담론 새산에 주력하는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어 임 관장은 “아르코미술관은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접촉이 뜸해진 이후 미술관의 새 의제를 탐구하며 미술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일상의 관계를 재설정하며 관계망을 재정비, 확장해 왔다”며 “이 취지를 고려한 전시를 온큐레이팅과 함께 개발했다”고 부연했다.

마야 민더의 작업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재개된 국제교류전을 통해 아르코미술관 공간은 다양한 사연과 배경 속 살아온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접촉지대가 됐다. 취리히, 베를린, 싱가포르, 서울, 제주 등에서 활동하는 시각예술, 공연예술 기반의 작가 11명(팀)이 참여해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관람객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기를 유도하는데, 여기서 ‘스코어’를 활용한다. 이번 전시명에 담기기도 한 스코어는 음악, 시, 안무, 시각예술 등에서 행위나 연주, 퍼포먼스를 위한 가이드와 설명의 수단을 뜻한다. 간단히 말해 음악을 만들 때 악보와도 같은 개념이다.

엘리자베스 에베를레의 '빅 시스터'는 관람객이 일정 거리 이상으로 다가오면 눈을 뜨고, 인식된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의 방향을 바꾼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이 형식을 1960년대 “예술은 곧 삶”이라는 플럭서스 운동의 이벤트 스코어 연장선상에 두고 있다. 전시엔 거창한 지시가 등장하진 않는다. 다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평범한 행동들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이 창작한 지시문, 매뉴얼 등의 스코어를 관람객이 행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단지 눈으로 작품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창작 활동에 관람객이 적극 참여하도록 이끈다.

 

즉, 관람객은 간단한 일상생활의 행동을 행하면서 예술의 창작에 일조하게 되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스코어의 활성화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접촉하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목적을 둔다.

전시 참여 작가들은 퍼포먼스, 안무, 사운드, 영상설치에 기반한 출품작으로 초대를 통한 환대 가능성, 다른 존재와의 공생 만들기, 공동과 집단의 힘,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공동체의 포용에 대해 탐구한다.

작가들의 작업이 하나의 음표가 돼 전체의 악보를 그리다

여다함의 '향로'는 향이 연소하며 피어오르는 연기의 향연을 위대한 무대가 된다. 사진=김금영 기자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손윤원은 아이를 키우면서 들었던 아기의 옹알이 음성을 전자음악 사운드로 출력해 내밀한 관계들의 신호를 만들고, 이 사운드를 매개로 낯선 이가 바닥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초대한다. 안무가, 드라마투르그,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3인(김재리·임지애·장혜진)으로 구성된 탠저린 콜렉티브는 2020년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상에서 진행한 ‘얽힘 레지던시’를 통해 예술가 26인에게 안부를 전하고 연결을 도모하기 위한 스코어를 고안해 개인과 공동의 상호 의존성을 실험한 작업을 보여준다.

‘도래하는 공동체를 위한 작은 프로젝트’는 예술, 예술가, 그리고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 모종의 활동을 작동시키고 해석하는 수단으로 스코어를 활용한다. 나탈리 슈틸니만과 슈테판 스토야노비치로 구성된 작가 듀오는 신진 예술가의 시선에서 예술계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상호의존적 관계와 다학제적 접근으로 예술과 사회 사이의 경계를 실험한다.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전 2층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마야 민더는 요리, 바이오해킹, 퍼포먼스, 미디어 설치를 통해 음식에 관한 이야기, 진화론적인 생물학, 관계적 미학에 대해 다루며, 생태적 사유 안에서 집단적 스토리텔링과 지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엘리자베스 에베를레의 ‘빅 시스터’는 관람객이 일정 거리 이상으로 다가오면 눈을 뜨고, 인식된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데, 관람객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한, 영상 속 눈과 관람객은 서로를 끊임없이 응시하게 된다.

여다함의 ‘향로’는 향이 연소하며 피어오르는 연기의 향연을 위대한 무대가 되는데, 춤추는 연기는 사물에 내재된 움직임과 안무의 가능성을 관람객과 접촉하도록 이끈다. 취리히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시각 예술가 팔로마 아얄라의 ‘가라오케 리딩’은 테하나 파틀라체 시인이자 작가, 문화이론가인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사유를 따라 관람객이 함께 노래하고, 읽고, 듣고,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형식으로 안잘두아의 시를 재구성한다.

'플럭스 어스 나우' 영상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김태리와 전인으로 구성된 야광은 젠더에 대한 고정된 재현과 개념을 전복하고 배반하는 시각언어를 통해 비가시화된 퀴어 존재를 드러낸다. 사회 실험 형식의 참여형 퍼포먼스와 단발적인 행위를 중심으로 작업해온 산 켈러는 5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를 다룬 비디오 에세이를 통해 그간의 협업 과정, 수행 활동, 그리고 우연과 일시적 참여를 유도했던 다양한 시도들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넷을 주요 매체로 활용하는 예술 콜렉티브 !미디엔그루페 비트닉은 디지털 공간에서 시작해 현실 세계로 확장되며, 의도적으로 기존의 통제를 벗어나 사회적 구조나 매커니즘에 도전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온큐레이팅 저널을 소개하는 섹션. 사진=김금영 기자

이 밖에 이번 전시엔 플럭서스는 무엇이고, 누구를 말하며,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소개하는 ‘플럭스 어스 나우’ 영상을 비롯해 온큐레이팅 저널을 소개하는 섹션도 마련돼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들은 전시장에 모여 하나의 악보를 연주하는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이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 과정에 관람객도 역할을 하게 된다.

임근혜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다양한 예술 주체와 관객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는 접촉지대로서의 미술관의 기능을 성찰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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