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와 최고가 만났다.”
한국 대표 작가인 고(故) 김환기와 남아메리카의 프리미엄 와인 ‘돈 멜초’의 만남은 이 문장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 롯데백화점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대표작이 담긴 와인을 9월 초 선보여 화제가 됐다. 바로 돈 멜초 와인 레이블에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입힌 아트 스페셜 에디션 ‘돈 멜초 2021 김환기 우주’. 300병 한정 판매로 진행된 1차 물량은 뜨거운 관심 속 완판을 기록했고, 롯데백화점은 인기에 힘입어 10월 7일, 2차 물량을 선보였다.
최고의 예술·와인의 만남 뒤엔 ‘롯데백화점’과 ‘환기재단’, 글로벌 와인그룹 ‘비냐 콘차 이 토로’의 협업이 있었다. 특히 롯데백화점에서는 예술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아트콘텐츠팀’, 주류 전문 인력 소믈리에가 소속된 ‘와인앤리커팀’이 각각의 역량을 발휘해 예술과 와인의 만남이 조화롭게 이뤄지도록 호흡을 맞췄다.
아트콘텐츠팀의 이민지 팀장을 만나 이번 아트 컬래버레이션과 관련해 보다 자세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아트콘텐츠팀은 롯데백화점 마케팅 부문에 속한 조직으로, 백화점 전사에 관련한 아트 마케팅 및 갤러리 운영, 라운지 전시 등에 대한 전반적인 임무를 맡고 있다.
- 롯데백화점과 김환기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올해 와인 출시에 앞서 2021년에도 환기재단·환기미술관과 협력해 김환기의 작품 ‘우주(Universe)’를 모티브로 한 대형 미디어 큐브를 잠실 롯데월드타워 광장에 설치하며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고객에게 소개한 바 있죠. 당시의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롯데백화점은 예술을 통해 보다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아트 마케팅을 과거부터 활발하게 전개해 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2021년 환기재단, LG와 협업해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LG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미디어 큐브에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당시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6층 아트홀에서도 연계 전시를 열며 김환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죠.”
- 이후에도 환기재단과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위한 관계를 지속해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올해 와인 출시를 위한 제안 및 구체적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부터 희소성 있는 프리미엄 가치를 겸비한 롯데백화점의 단독 컬래버 상품 ‘엘 익스클루시브(L Exclusive)’를 준비했는데요. 이때 와인 컬래버 또한 진행했습니다. 박선기·하태임 작가와 협업해 이탈리아의 ‘미켈레 키아를로’ 와이너리와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명품 와이너리 ‘앙드레 뤼통’과 협업한 와인을 한정 수량으로 출시했는데, 내·외부에서 모두 호응을 얻으며 와인 컬래버 프로젝트는 엘 익스클루시브 섹션의 한 프로젝트로 자리를 잡았죠. 당시 환기재단에도 컬래버 제의를 했으나, 아쉽게도 성사되지 않았어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엘 익스클루시브를 준비하면서 환기재단 측에 지속적인 접촉을 했고, 이번엔 기쁘게도 성사됐습니다.
앞서 진행됐던 2021년 미디어 큐브 전시를 비롯해 생전 예술을 향해 끝없이 도전했던 김환기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취지에 함께 공감한 것이 이번 아트 컬래버 성사의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 아트 컬래버 과정에서 롯데백화점 내부의 아트콘텐츠팀, 와인앤리커팀도 협업했죠. 각각은 어떤 역할을 담당했나요?
“아트콘텐츠팀은 프로젝트에 맞는 작가를 선정하고, 기획 의도에 맞게 작가와 와인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김환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이기에 보다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했어요.
약 2년여에 걸쳐 환기재단을 설득해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고, 김환기 작가 작품의 가치가 와인과 만나 더 극대화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에 작품 원작의 비율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와인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기존 돈 멜초 와인 레이블의 비율을 수정하는 방안을 비냐 콘차 이 토로에 제안했어요. 기존 레이블 비율은 가로보다 세로 비율이 더 긴 편인데, 와인에 담길 작품 이미지는 정사각형 형태라 이미지 일부가 잘릴 우려가 있었거든요. 와이너리 측에서 이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작품 이미지를 온전히 살리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엔 아트 컬래버 와인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영상을 제작해 잠실 미디어큐브, 본점 외벽 미디어에 상영하고, 백화점 내에 ‘김환기X돈 멜초’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는 등 프로모션 활성화 방안도 계획했습니다.
와인앤리커팀은 와이너리의 명성, 국가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해 작가에 맞는 와인을 선정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최고의 작가’에 맞는 ‘최고의 와인’을 탐색했고, 그 결과 비냐 콘차 이 토로 그룹의 최상위 레인지이자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최고의 와인인 돈 멜초를 이번 프로젝트에 걸맞은 와인으로 추천했어요. 작품을 레이블에 담을 와인으로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100점 만점에 99점을 획득한 ‘돈 멜초 2021’을 선정했습니다.
돈 멜초 측에서 아티스트 컬래버가 이번이 처음이라 걱정하기도 했는데요. 와인앤리커팀이 이 걱정을 상쇄할만한 근거로, 한국 최고의 작가인 김환기와의 컬래버라는 점, 그리고 한국 롯데백화점 한정 단독 출시 프로모션 등을 내세우며 와이너리를 적극적으로 설득했습니다. 이처럼 와이너리와 협업을 확정한 시작 단계부터 와인 제작, 입고 및 판매까지 와인 출시의 전반적인 과정을 와인앤리커팀이 담당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아트 레이블 와인으로 김선우 작가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바론 리카솔리가 협업한 와인 세트도 내놓았는데요. 와인앤리커팀은 이 와인 출시를 위해 전문 소믈리에가 이탈리아 현지에 방문해 오크통에서 숙성중인 와인을 시음하는 ‘배럴 테이스팅’을 통해 해당 프로젝트를 위한 와인을 선정해 오기도 했습니다.”
- ‘돈 멜초 2021 김환기 우주’를 장식한 ‘우주’는 어떤 작품이고, 이 작품 이미지를 선정한 이유는?
“이번 아트 레이블에 인용된 작품은 김환기 작가의 대표작인 ‘우주(Universe) 5-Ⅳ-71 #200’로,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역사상 최고가인 132억 원에 낙찰되기도 한 화제의 작품입니다. 무수한 점들이 모여 화면을 구성한 전면점화 작품으로, 별들로 가득한 푸른 우주가 화면에 담겼죠.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하게 두 폭으로 이뤄져 있어 두 그림을 나란히 세우면 254x254cm의 정사각형 형태를 이룹니다. 각각의 화폭은 서로의 상반된 화면의 조형어를 엄격하게 존중하면서도 공간의 심도를 조화롭게 확장시키며 김환기 추상철학의 정수를 잘 보여주죠. 작가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해당 작품을 선정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 이번 아트 컬래버를 통해 노린 시너지 효과는 무엇이었나요?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작가와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돈 멜초 와인의 만남은 예술 그리고 와인을 사랑하는 각각의 애호가들 모두에게 특별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또한 김환기 작가의 거대한 우주를 와인 레이블에 모두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 담긴 작가 작품의 정수를 롯데백화점 고객에게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이는 좋은 반응으로도 이어졌어요. 1차 물량은 완판을 기록했고, 10월 7일 롯데백화점 전점에 그랜드오픈 론칭한 2차 물량 역시 상당수의 물량이 예약 판매되는 성과를 올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아트 와인 출시가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 특히 ‘돈 멜초 2021 김환기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최고와 최고의 만남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고 봅니다. 김환기는 워낙 전설적인 작가이고, 돈 멜초 또한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와인이죠. 각각의 업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만남은 아트 컬래버 영역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아트 컬래버를 통해 ‘김환기 작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또 작가의 예술세계와 연관된 스토리텔링도 많은 관심을 받은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환기 작가는 생전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이번에 아트 레이블을 입은 돈 멜초 2021 빈티지는 15개월 동안 프랑스 오크배럴에서 숙성됐습니다. 또한 생전 김환기 작가는 일기에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고 적을 정도로 애주가로, 와인을 즐겨 마시며 창작 활동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래서 와인과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우러졌죠. 이런 이야기들이 아트 컬래버에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보다 사람들의 흥미를 끈 것 같아요.”
- 와인 출시와 더불어 백화점 내에 팝업도 진행했죠. 팝업 구성에서 특히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팝업 시안 역시 김환기와 돈 멜초의 컬래버인 만큼 양측의 정체성을 골고루 담아 보여줘야 하기에 여러 차례 소통과 수정 과정을 거쳤어요. 팝업 왼쪽 공간은 김환기 작가의 ‘우주’ 전면점화를 반영해 3D로 구현했습니다. 이처럼 오른쪽 공간이 예술적인 측면을 보여줬다면, 오른쪽 공간은 와이너리의 상징색인 진회색의 느낌을 테마로 살렸고, 떼루아(와인을 생산하는 데 영향을 주는 토양 등의 조건)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입체적인 질감 표현에도 신경 쓰며 와인의 정체성을 보여줬습니다. 팝업 공간을 통해서도 많은 예약 문의가 이어졌어요.”
- 김환기의 우주와 돈 멜초의 세계가 만나는 미디어 영상도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 미디어 큐브와 롯데백화점 본점 외벽에 설치된 미디어에서 선보였죠. 이 영상의 주안점은 무엇이었고, 어떤 효과를 거뒀나요?
“미디어 큐브의 특성상 상업적인 영상과 주류 이미지 상영 불가, 15초 제한 등 여러 제약이 있었어요. 이 가운데 ‘김환기X돈 멜초’ 와인 컬래버에 대한 내용은 전달해야 했기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죠. 하지만 2021년 잠실 광장에 미디어 큐브가 처음 세워졌을 때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 선례가 있었고, 이 미디어 전시 이후 잠실 광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상을 제공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기에, 다시 한 번 같은 곳에서 김환기 작가의 작업 세계를 선보이면 더 큰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감사하게도 이번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영상은 우주 작품을 중심으로 이뤄졌어요. 우주는 김환기 작가가 고향의 푸른 바다와 하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인데요. 전면점화로서 삼라만상의 우주, 고향인 전라도 신안 섬들의 바다와 밤하늘을 그리며 작가만의 조형 감각으로 표현한 작품인 만큼 이를 먼저 잘 보여주고, 돈 멜초 와이너리가 있는 밤하늘의 별들이 우주 작품으로 변환되면서 자연스럽게 김환기 작가의 우주 작품으로 변형되는 연출로 마무리했습니다.”
- 롯데백화점은 아트콘텐츠팀과 자체 유통 인프라를 지녔기에 이를 활용한 아트 컬래버를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번 아트 컬래버 외에 또 진행했던 대표적인 아트 컬래버 사례가 있다면?
“지난해 롯데백화점 PB(자체브랜드)부문과 함께 일본 유명 디자이너 미하라 야스히로와 국내 유명 아티스트 5명(이형구, 이광호, 그라플렉스, 275c, 문연옥)과 컬래버 전시를 진행하면서 상품도 제작했어요. 패션계 거장과 국내 아티스트들의 만남으로 관련 업계의 관심을 보두 받았고요.
상생의 의미를 살려 뜻 깊었던 아트 컬래버도 있었어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침체된 명동 상권을 살리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서울시 중구와 협력해 2022년 진행했습니다. 당시 그라플렉스 작가와 컬래버해 명동길 바닥부터 건물 옥상까지, 명동 전역을 ‘명동 페스티벌’을 상징하는 캐릭터 ‘미응이’로 물들였습니다. 미응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굿즈들을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서 행사 기간 동안 판매했고, 관련 조형물도 설치했어요. 이 명동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으로, 올해 5월에도 진행했습니다. 올해엔 롯데백화점이 자체 개발한 ‘킨더유니버스’ 캐릭터 조형물로 명동 거리를 꾸몄어요. 내년엔 다시 작가와의 컬래버로 명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아트 컬래버를 이어갈 계획이에요.”
- 아트 컬래버가 활발한 시대에 롯데의 아트 컬래버가 지닌 특별함은?
“롯데는 다양한 협업을 보여줄 수 있는 백화점, 호텔, 쇼핑 등의 계열사가 많습니다. 백화점 내에도 여러 전문 팀이 있고요. 한 예로 롯데웰푸드(당시 롯데제과)와 손잡고 이동기 작가의 대표작 ‘아토마우스’를 초콜릿 아트로 선보이기도 했어요. 백화점 측에서 유명 현대작가 9인과 협업해 만든 아트 빼빼로를 전시하기도 했고요. 서로가 잘 할 수 있는 전문 분야를 살려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얻었죠.
이런 작업들을 단기간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이어왔어요. 그 세월 동안 조금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꾸준하게 공간을 두고 고객을 위한 예술 기획 전시, 관련 상품 개발 등을 이어왔고, 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또한 이어져 왔죠. 롯데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그 목표가 이 활동들을 이어왔고, 롯데만의 차별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아트 컬래버가 있다면?
“백화점에 속한 아트는 컬래버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백화점이 다루는 다양한 상품군과 아트의 만남을 시도해볼 수도 있고, 백화점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으며, 타 팀과 협업해 여러 브랜드와의 컬래버도 진행해볼 수 있죠. 이를 통해 작가들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상생의 의미도 살릴 수 있고요.
이번 아트 컬래버를 비롯해 그간 롯데백화점이 진행해온 여러 성공 사례를 디딤돌로, 다양한 팀에서 아트 컬래버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케팅적·예술적 관점 모두를 고려해 회사와 작가, 고객 모두가 만족할만한 컬래버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앞으로도 백화점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롯데백화점만이 할 수 있는 컬래버를 이어가려 합니다.
현재는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에서 열리고 있는 갈리나 먼로 개인전, 그리고 롯데문화재단 롯데뮤지엄에서 준비중인 전시와 연계해 백화점 차원에서 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올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에 다시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