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귀여운 눈망울에 문어 다리를 지닌 고양이가 찾아왔다

더현대 서울·지엔씨미디어, ‘유코 히구치 특별전: 비밀의 숲’ 알트원서 선보여

김금영 기자 2024.10.29 11:04:24

'유코 히구치 특별전: 비밀의 숲'전 입구. 사진=김금영 기자

천진난만해 보이는 고양이가 울창한 숲에서 두 눈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 밝히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들여다보니 팔은 뱀, 발은 문어의 모양을 하고 있는 등 범상치 않다. 평범한 동화가 아니라 뭔가 미스터리함을 품고 있는 요상한 동화 속 세상의 주인공을 만난 기분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거북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를 자극한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구스타브’로,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마법 같은 이야기에 함께 빠져들 수 있는 그림책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구스타브는 유코 히구치의 손에서 탄생했다.

일본의 유명 아티스트인 유코 히구치의 첫 한국 전시 ‘유코 히구치 특별전: 비밀의 숲’이 더현대 서울 알트원(ALT.1)에서 내년 1월 22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과 전시기획사 지엔씨미디어가 협력해 마련한 자리다.

독특한 연출이 인상적인 '유코 히구치 특별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유코 히구치는 고양이, 꽃, 소녀, 나무 등 친숙한 주제를 바탕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결합해 귀여우면서도 기이한 요소가 공존하는 독창적인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다. 다마미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세상에서 네가 최고야’, ‘규스타브’, ‘히구치 유코 작품집’, ‘보리스 그림일기’ 등을 펴내며 활발히 활동해왔다.

이미 일본에서 열 차례 성공적인 투어 전시를 가진 바 있는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직접 엄선한 오리지널 작품, 그림책 드로잉, 포스터 디자인, 컬래버레이션 작품 등 평면 일러스트를 비롯해 인형, 미니북, 의상 등 입체 작품까지 1000여 점을 공개한다. 인형 작품의 경우 히구치의 일러스트를 인형 작가 이마이 마사요가 펠트 인형으로 재탄생시켰다. 여기에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그린 신작도 처음으로 공개한다.

'유코 히구치 특별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세밀한 묘사가 인상적인 유코 히구치의 작품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기획부터 공간 디자인 및 조성까지 작가 본인이 총괄할 만큼 애정을 쏟았다. 지엔씨미디어 측은 “작가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수많은 작품들 하나하나를 직접 설치하며 이번 전시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평면 일러스트부터 입체적 인형 작품까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과 관련된 작품.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크게 8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숲의 입구’는 전시 테마인 ‘비밀의 숲’에 걸맞게 비밀로 가득 찬 숲을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로 연출됐다. 이 섹션에선 작가의 초기 작품들을 주로 만날 수 있다.

다음으로 ‘컬래버레이션&보리스 잡화점 작품’이 기다린다. 본격 숲 속으로 들어가기 전, 다양한 브랜드와 작가가 진행한 컬래버 작품과, 작가의 갤러리인 보리스 잡화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보리스 잡화점은 작가가 2019년부터 운영해온 갤러리 겸 숍이다.

고양이 얼굴에 문어 다리를 하고 있는 독특한 형상의 '구스타브'. 사진=김금영 기자
SF적인 느낌과 과거 전통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섹션. 사진=김금영 기자

여기에 잡지 MOE, 패스트푸드 브랜드 모스버거, 화구 제조사 홀베인 등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들도 아우른다. 구스타브가 주인공이 돼 유명 화가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재해석한 ‘규티스’ 시리즈는 작가의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과 관련된 그림도 볼 수 있다.

이 공간 한켠에 숨겨진 듯한 방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이 바로 ‘비밀의 방’ 섹션이다.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그림자를 사용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전통 인형과 병풍을 배치하며 예스러우면서도 고풍적인 느낌으로 구성된 방안 창문에 우주에서 찾아온 듯한 미지의 생명체의 그림자가 움직인다. 미래적인 SF 느낌과 과거 전통적인 느낌이 묘하게 공존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평면 작품뿐 아니라 입체 작품도 다양하게 아우른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림책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해온 작가의 작업을 살필 수 있는 ‘그림책’ 섹션도 마련됐다. 도서에 포함돼 있지 않은 미공개 컷을 비롯해 ‘세상에서 네가 최고야’, ‘두 고양이’ 등 지금까지 발간된 작가의 대표 그림책 원화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작가의 정교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장이기도 하다. 한 예로 ‘좋아하게 된다면’은 부드러운 눈을 가진 악어를 사랑하게 된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따뜻하게 그려내 눈길을 끈다.

‘한국 전시 작품’은 한국 팬들을 위한 자리다. 작가가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그린 신작을 이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공간을 지나 더 깊은 숲 속으로 이어지는 듯한 통로를 지나면 ‘비밀의 숲’ 섹션이 이어진다. 작가의 상상 속 공간을 현실로 구현한 이곳엔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판타지 작품들을 전시한다.

유코 히구치의 작품엔 귀여움과 섬뜩함이 공존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어두운 미학을 집중적으로 드러내는 ‘호러’ 섹션도 자리한다. 귀여운 눈망울을 지녔지만 문어 다리를 지닌 고양이 캐릭터 구스타브처럼 귀여운 요소들이 가득한 동시에 다소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호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티브는 소녀, 달팽이, 버섯 등 평범한 요소에서 비롯돼 오히려 호기심을 자아낸다.

마지막 ‘영화 포스터’ 섹션엔 익숙한 장면들이 보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펄’ 등 유명 영화의 포스터가 작가만의 세밀한 묘사로 재탄생한 화면을 만날 수 있다.

영화 포스터 관련 작업이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구스타브' 관련 입체 조형 작업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최대한 설명을 자제한 점이 특징이다. 전시장에서도 작품마다 자세한 캡션을 적어놓진 않았다. 이는 작가의 의도라 한다. 지엔씨미디어 측은 “작가는 작품을 볼 때 어떤 정보를 주입받아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지닌 상상력을 동원해 저마다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기를 원했다”며 “밝고 사랑스러우면서 동시에 때로는 어둡고 기이한 분위기까지 아우르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동화를 써내려가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더현대 서울 ‘알트원’, 예술작품 향유 공간 자리매김

더현대 서울 '알트원' 전시장 입구. 사진=김금영 기자

한편 더현대 서울 내 전시공간 알트원은 2021년 2월 26일 더현대 서울 오픈과 함께 1호 전시를 열었다. 11호 전시 종료를 기준으로 유료 관람객 100만 명을 달성하면서 연간 약 30만 명의 고객이 찾는 예술작품 향유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알트원은 전문 전시관 수준의 항온‧항습 시설과 보안 시스템 등을 갖춘 대규모 상설 전시 공간으로, 차별화된 콘텐츠가 주목받았다. 앤디 워홀의 대규모 회고전인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을 비롯해 포르투갈 사진작가 테레사 프레이타스의 국내 최초 전시를 유치하는가 하면,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소장품 120여 점으로 구성된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를 여는 등 총 11번의 전시 동안 알트원을 거쳐간 작품만 1500여 점에 이른다.

알트원은 이번 유코 히구치 전시를 비롯해 지엔씨미디어와 성공적인 협업을 이어 왔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5월 더현대 서울 2주년을 기념해 지엔씨미디어, 프랑스 3대 미술관인 퐁피두센터와 손잡고 20세기 미술 거장 라울 뒤피의 국보급 작품 130여 점을 선보여 고객의 호응을 얻었다.

지엔씨미디어 관계자는 “MZ세대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더현대 서울에서 전시를 진행해 보니 2030은 물론 어린이와 중년층 등 다양한 연령대 관람객으로 접점을 대폭 확대할 수 있었다”며 “더 많은 대중의 일상 속에 예술작품이 존재하도록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창구가 생겼다는 점은 전시 업계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엔씨미디어 홍성일 대표 또한 “전시 내용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전시 장소가 가진 특수성도 중요하다”며 “전시장이 떡하니 홀로 존재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쇼핑도 할 수 있고, 맛집도 있으면 유동인구가 더 많다. 이런 유기적 관계가 있는 전시장이 좋다”고 짚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예술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면서 알트원이 전문 전시관에 버금가는 위상과 전시 콘텐츠 바잉 파워를 입증해 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쇼핑을 넘어 일상에 예술적 경험과 영감을 불어넣는 신개념 리테일 플랫폼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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