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지어진 오래된 단독주택을 최근 리노베이션 했다면? 주변 집과는 상당히 다른 ‘첨단 외모’가 쉽게 연상된다. 그러나 최근 정이삭 건축가와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대표 홍진표)가 리노베이션한 서울 연희동 ‘N작가 주택’은 주변 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인상은 수수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드는 이 집의 장면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Scene #1 – 나무 기둥이 받쳐주는 옛 정자 같은 느낌
집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조선 시대 정자에서 옮겨온 것처럼 보이는, 공간의 중심에 자리한 원목 기둥이다. 원목 기둥을 중심으로 목재들이 벽과 천장으로 퍼져 나가고, 나무 책장, 평상으로 이어진다.
원목 기둥을 적용한 과정에 대해 정이삭은 “처음에는 철제 보강을 떠올렸지만 ‘꼭 철제여야 하나?’ ‘집 안에서 철제가 노출되는 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나?’ 하는 고민 끝에 목조 구조보강을 구상하게 됐다. 보는 철골을 썼고, 받치는 기둥은 나무를 썼다. 받치는 힘은 목재가 충분하다고 느꼈고, 휨에 버티는 능력은 목재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철제를 이용한 구조계산은 흔하기에 쉽게 할 수 있지만, 원목 기둥이 받칠 수 있는 항력 계산을 하느라 보통 집의 두 배 정도는 더 구조 계산을 해야 했고, 그만큼 더 비용이 들어갔다. 이런 노력 끝에 완성한 실내는 원목의 편안함이 가장 큰 특징이다.
Scene #2 – 표정이 4개인 앞마당
마당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처마가 길게 뻗어나온 제1 마당, 그리고 처마가 짧은 제2 마당이다. 제1 마당과 거실 사이엔 폴딩도어가 설치돼, 폴딩도어의 개폐에 따라 실내와 야외가 한 공간이 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구조다. 제2 마당 쪽으로는 실내에서 실외로 이어지는 평상 같은 목재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창호를 닫으면 평상의 실외 부분은 한옥의 툇마루 같은 모습이 된다. 창호를 열면 실내와 마당에 걸쳐 평상이 길게 펼쳐진 형태가 된다. 거실과 마당이 이렇게 연결되면서 이 집 마당은 4개의 표정을 갖는다.
리노베이션 이전에 이 앞마당은 거의 갈 일 없는 공간이었다. 한국 건물 특유의 ‘최대주의’ 탓에 외벽은 최대한 밖으로 빼내 지어졌고, 좁게 남은 마당엔 물건이 조금씩 쌓이면서 주인이 가지 않는 공간이 돼 있었다. 두 건축가는 외벽을 더 집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러면 실내가 좁아지지만, 앞에서 말한 폴딩도어를 통해 실내와 실외를 연결시킴으로써 건축주는 결과적으로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하게 됐다. 예전 외벽이 있던 흔적은 천장에 남아 이 집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킨다.
홍진표 대표는 “외벽을 조금 안쪽으로 들이면서 외부 공간을 더 확실하게 쓸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실내와 실외가 단절된 공간이었지만, 이제 하나의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가용 면적이 넓어졌다”고 소개했다. 정이삭은 “인간은 자연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벌레나 온갖 사나운 동물로부터 안전하길 바란다. 그래서 표정이 다양한 건축이 결국은 좋은 건축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cene #3 - “내가 제일 잘났다” 아니라 이웃과 함께
집에 관한 한 ‘최대주의’가 한국에서 통용되지만, N작가 주택 리노베이션은 그렇지 않았다. 리노베이션 설계 시점에 마침 건축법 완화가 있었고, 일조권 제한이 완화되면서 N작가 주택은 기존의 9m 높이에서 10m까지 높여 지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N작가 주택의 키가 커지면 뒷집의 조망권은 그만큼 침해되고. 언덕으로부터 가지런히 내려오는 집 지붕들의 라인 역시 망가지게 된다. 최종적으로 주택의 키는 뒷집의 난간 높이에 맞춰 1.5m만 높아졌다. 정이삭은 “뒷집의 조망권이 공사 이전과 이후가 같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전했다.
Scene #4 – 50년 묵은 이웃 벽돌로 치장한 뜻은?
리노베이션 이후에도 N작가 주택의 외모가 이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는 벽돌도 큰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초에 지어진 집다운, 낡은 벽돌이 집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은 원래 벽돌로 치장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벽은 드라이비트라는 단열재로 둘러싸였다. 리노베이션을 위해 단열재를 걷어내고 옛 벽돌이 드러나자 건축주는 “너무 개운하다”고 좋아했고, 그래서 새 벽돌로 치장을 준비하는 중 별난 계기가 생겼다.
정이삭은 “산 너머 자주 다니는 길에 아파트 재건축이 시작됐다. 거기 벽돌을 가져다 쓰면 기존 벽돌 벽과 비슷하게 통일감도 줄 수 있을 거고, 또 자원도 재활용하니 좋은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주도 너무 좋다고 동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철거 현장의 옛 벽돌을 가져다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철거 현장에선 귀찮아했고, 설득 끝에 하루 허가를 받아 헌 벽돌을 가져왔다. 그리고 옛 벽돌에서 모르타르를 제거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쳤지만, 50년 묵은 옛 벽돌로 벽을 마감하는 새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다.
Scene #5 – 기능과 멋 다 살린 이중 선홈통
50년 묵은 벽돌로 외벽을 둘렀지만 외모가 온통 옛날식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처마에서 내려오는 알루미늄 색 홈통은 첨단 분위기를 풍긴다. 두 줄기의 홈통에 대해 정이삭은 “저 자리에 기둥이 필요한데 또 물길도 필요하니, 물길과 기둥이 조형적으로 결을 함께하면서 잘 들어갔으면 좋겠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저런 형태가 나왔다”고 소개했다.
'이름 없는 나머지의 건축’ 철학
에이코랩 건축사사무소는 ‘이름 없는 나머지의 건축’이라는 건축 철학을 밝힌 바 있다. 그에 대해 정이삭은 “우리는 식물을 꽃 모양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사실 꽃봉오리는 작고 이파리, 뿌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가 늘 주인공으로 여기는 어떤 메인이 있고 그것으로만 기억하지만, 사실 꽃이 잘 피려면 줄기와 이파리가 건강하고 배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99% 나머지의 역사를 우리가 계속 이런 식으로 홀대하고 1%의 꽃만 중시하면 그 꽃도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나머지’까지 보겠다는 의지, 그리고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다”는 철학을 실천한 N작가 주택은 그간 급성장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버려온 ‘우리 것’들을 적극 되돌아본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