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매년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협력하여 세계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오스트리아 레오폴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총 191점을 엄선하여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을 11월 30일(토)부터 개최한다. 세기 전환기 비엔나를 무대로 자유와 변화를 꿈꿨던 예술가들을 한 자리에서 소개하며, 1900년대 비엔나가 가지는 문화사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비엔나 1900년대’를 종합적으로 조명
레오폴트미술관은 오스트리아 모더니즘 미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이를 수집한 루돌프 레오폴트(1925-2010)와 엘리자베트 레오폴트(1926-2024)의 소장품 약 5,200점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이 소장품은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와 같은 오스트리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비엔나 1900년대의 사회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적 장르를 포괄한다.
이번 특별전은 레오폴트미술관 소장품의 핵심 ‘비엔나 1900년대’를 폭넓게 소개하고자 기획됐다. 특히 회화 작품들을 포함하여 포스터, 그래픽 디자인, 드로잉, 사진, 가구, 공예품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품으로 미술, 음악, 디자인, 건축 등 다방면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보여준 비엔나 1900년대를 조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레오폴트미술관과 수개월 간 기획 회의를 거쳐 한국의 대중에게 소개할 전시 구성안을 새롭게 마련했다. 초기 기획안과 가장 큰 차이점은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해 공예품 약 60점을 추가한 것이다. 이로써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예술적 장르를 통합하고자 했던 비엔나 1900년대 예술가들의 철학을 다채롭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전시 개막 후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12월 2일(월) 오후 2시부터 한스 페터 비플링어(Hans-Peter Wipplinger) 레오폴트미술관장의 전시 연계 특강이 예정되어 있어, 레오폴트미술관의 역사와 1900년대 비엔나에 대한 이야기가 특별히 소개될 예정이다. 미술사연구회와 공동주최하는 전시 연계 학술대회는 같은 장소에서 12월 13일(금)에 개최한다.
새롭게 보는 세기 전환기 비엔나
국립중앙박물관은 2022년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을 소개하며, 오스트리아의 600년의 역사를 선보였다. 전시는 한때 유럽을 호령했으나 19세기 위기를 맞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비엔나 대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명령한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로 끝맺었다.
이번 전시는 대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이 비엔나 예술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고 비엔나를 어떻게 유럽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향력을 기억하는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에서 세기 전환기라는 짧은 시기에 기존 예술의 틀을 깨고 혁신의 중심이 된 새로운 비엔나를 만난다. 특히 그동안 구스타프 클림트를 ‘황금의 화가’로만 알았다면, 이 시대 예술가들의 구심점이 되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혁신가 클림트’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클림트 세대가 실레 세대에게 전한 이야기
전시는 프롤로그와 함께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프롤로그부터 3부까지는 비엔나 예술계에 등장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1897년 창립된 비엔나 분리파의 역사와 이념, 그리고 비엔나 분리파의 철학이 반영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소개하는 ‘앞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후 4부와 5부는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표현주의적 경향과 특징들을 살펴본다. 클림트는 기존의 틀을 깨고 예술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비엔나 예술계가 모더니즘으로 전환하도록 이끌었다. 이번 전시는 앞 세대가 후 세대에게 남긴 예술적 유산과 그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프롤로그, 비엔나에 분 자유의 바람’에서는 비엔나 대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명성을 얻은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소개한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화법을 구사하던 클림트가 인물화에서 다양한 구도를 실험하고 인상주의와 같은 유럽 미술의 영향 속에서 점차 ‘클림트다운’ 특징들이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준다.(도1)
‘1부 비엔나 분리파, 변화의 시작’은 비엔나 분리파가 추구한 다양성을 소개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고자 한 클림트의 철학은 비엔나 분리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비엔나 분리파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의 보수성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 특정 양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1부에 소개되는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도2), 잡지 ‘성스러운 봄’의 표지 디자인, 우표 디자인과 판화 등은 이들이 추구한 다양성과 예술적 통합을 지향한 목표 의식을 보여준다.
‘2부 새로운 시각, 달라진 오스트리아의 풍경’은 비엔나 분리파의 개방성을 다룬다. 클림트는 비엔나 분리파에 속한 예술가들에게 오스트리아 밖에서 일어나는 예술 운동을 충분히 경험할 것을 주문했다. 이 과정 속에서 유럽을 풍미하던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오스트리아의 풍경(도3)도 새로운 시각에서 그려졌다. 각종 분야의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었던 비엔나의 사회적 배경을 함께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한다.
‘3부 일상의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은 예술적 장르를 허물고자 설립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들은 일상적인 물건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다양한 재질의 공예품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도4) 디자인 공방 초기에는 장식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지만, 1900년경 영국의 예술공예운동의 영향으로 점차 기하학적인 미학을 담는 간결한 디자인으로 변화했다. ‘장식’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과 달라진 디자인적 관념을 3부에서 함께 소개한다.
‘4부 강렬한 감정, 표현주의의 개척자들’에서는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실레는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교수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료들과 ‘신예술가그룹’을 창단한다. 이들의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세 번의 전시회에서 강렬한 표현주의적 경향을 선보이며 비엔나 예술계에 세대 교체를 알렸다.(도5) 표현주의로 두각을 드러낸 리하르트 게르스틀과 오스카 코코슈카가 4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소개된다.
‘5부 선의 파격, 젊은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는 에곤 실레의 대표작들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5부에서는 실레의 작품 세계를 ‘정체성의 위기,’ ‘모성,’ ‘검은 풍경화,’ ‘에로티시즘’ 등의 주제로 집중 탐구한다.(도6) 실레 스스로 탐구한 독보적인 표현 방식은 현재 그를 비엔나 1900년의 대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세계 최대 에곤 실레 컬렉션을 보유한 레오폴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에필로그, 예술에는 자유를’에서는 에곤 실레가 그린 전시의 첫 번째 작품 ‘원탁,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도7)를 영상으로 다시 만난다. 클림트가 사망한 직후에 그려진 이 포스터에는 클림트와 실레의 특별한 관계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비엔나 예술계의 변화를 이끈 두 예술가의 특별한 이야기로 전시를 끝맺으며, ‘예술의 자유’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총체예술’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회
‘총체예술’은 이번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개념이다. 비엔나 분리파가 추구한 ‘총체예술’을 전시장에서 구현하여 관람자들에게 종합적인 감상을 선사하고자 했다. ‘제14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도8)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을 주제로 열렸다.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들은 조각, 회화, 디자인, 음악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담은 ‘총체예술’을 구현했다. 1부에서는 이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소개하여 ‘총체예술’에 대한 개념을 직접 감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비엔나의 분리파 전시관, 제체시온(Secession)에서 볼 수 있는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을 특별하게 만날 수 있다.
비엔나 분리파의 ‘총체예술’은 디자인 공방에 이르러 일상과 예술을 통합한, 변화된 의미의 ‘총체예술’을 보여준다. 3부에서는 공방 문으로 들어가며 이들의 철학이 담긴 각종 공예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공방에서 제작한 가구들(도9)과 벽지 디자인과 스테인드글라스 공예, 바닥 무늬까지 실내디자인으로 구현한 ‘총체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연출했다. 일상의 모든 요소를 예술로 승화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비엔나 1900년의 예술가들이 쫓은 꿈
모든 일에는 언제나 시작이 존재하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이후에 비로소 부여된다. 예술계의 기득권이 보수주의를 강조할 때, 예술의 자유를 외치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예술을 선보이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다’는 표현 역시 결과론적인 평가이다. 우리는 현재 그들의 도전을 예술의 흐름을 바꾼 선구자이자 ‘비엔나 1900년’의 대표 예술가로 평가한다. ‘비엔나 1900년’의 진정한 의미는 이들의 노력으로 ‘시대에 맞는 예술’과 ‘예술의 자유’를 찾은 것이다. 19세기 말 예술가들의 도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김재홍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양한 방면에서 세계 박물관과의 연결망을 구축해 오고 있다. 그간 성실히 쌓아 온 전시 역량을 바탕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국외에 알리는 동시에, 외국의 문화유산을 우리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것 역시 박물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로 1900년대 비엔나와 꿈꾸는 예술가들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