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대한항공,‘업사이클링’에 꽂히다…퇴역 항공기가 ‘한정판 굿즈’로 재탄생

항공기, 담요, 정비복, 유니폼… 뭐든 되살린다

정의식 기자 2024.12.10 10:54:52

보잉 747-400 항공기 자재로 만든 네임택과 골프 볼마커. 사진=대한항공

‘업사이클링(Up-cycling)’은 개선한다는 뜻의 영어 단어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을 합친 단어다.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새활용’이라 번역된다. 지난 2012년 8월 22일 국립국어원 제8차 말다듬기위원회 회의에서 ‘업사이클링’의 순화어로 제시된 용어다.

대한항공은 ‘업사이클링’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1위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분야에 진심이다. 거대한 항공기를 해체해서 나오는 자재를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해, 구명조끼, 기내담요, 정비복, 유니폼 등 온갖 물품들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조금은 과도한듯한 업사이클링 노력을 살펴봤다.

시작은 지난 2021년 1월 HL7530(보잉 777-200ER)을 업사이클링한 네임택(Name Tag)이었다. 1997년 3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약 23년간 1만6903번의 비행, 10만682시간 동안 세계의 하늘을 누비다 퇴역한 실제 항공기 동체 표면의 로고 부분만 잘라 제작했다. ‘Korean Air’라고 씌여진 그 부분의 표면이다.

네임택이 출시된 후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로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임에도 판매 개시 1시간 만에 4000개 한정 수량이 완판됐다.

 

HL7721 항공기(보잉 777-200ER)을 해체해 만든 네임택과 골프 볼마커. 사진=대한항공)

예상 이상의 인기에 고무된 대한항공은 그해 9월 HL7461(보잉 747-400)의 자재로 만든 네임택과 골프 볼마커를 출시했고, 2023년 5월에는 HL7715(보잉 777-200ER), 지난 9월에는 HL7721(보잉 777-200ER)이 같은 방식으로 ‘새활용’됐다.

네임택이 인기를 모은 이유는 뭘까? 일단은 알루미늄 합금 두랄루민(Duralumin) 소재로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점과 사용된 동체 부분에 따라 하늘색·파란색·빨간색 등 색상이 다르게 적용된 점, 각 제품에 일련번호를 새겨 희소가치를 높인 점 등이 MZ세대의 관심을 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여행의 설렘과 추억을 기억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방향성이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로고를 한층 더 키워 항공사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고, 기종과 기번을 새겨 업사이클링 굿즈의 의미를 더하는가 하면, 선착순 한정 수량으로 이름과 연락처를 각인해주는 서비스를 진행한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골프 볼마커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항공 로고와 기종·기번을 새긴 디자인은 활용된 동체 부분에 따라 다양한 색상이 랜덤으로 적용됐으며, 뒷면에 자석 기능을 추가해 사용자들의 편의를 높였다.

담요, 구명조끼, 유니폼… 소재는 끝이 없다

동체 뿐만이 아니다. 동체와 함께 폐기물로 버려질 운명이었던 여러 기내 물품들도 새로운 굿즈로 재탄생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2월 대한항공은 재사용이 어려워진 기내 담요를 소재로 물주머니(핫팩) 커버를 임직원이 손수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기내 담요 업사이클링’ 봉사 활동을 실시했다.

비행기 내에서 사용되다 훼손된 담요를 활용, 핫팩의 온도를 오랜 시간 따뜻하게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하는 커버를 만드는 작업에 임직원 200여 명이 적극적으로 참여, 한땀 한땀 정성스러운 바느질로 270여개 핫팩 커버를 완성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커버들은 핫팩과 함께 서울특별시립 돈의돈 쪽방상담소를 통해 서울 종로구 거주 독거 어르신 및 취약 계층에 전달됐다.

 

노후 구명조끼로 제작된 화장품 파우치. 사진=대한항공

이듬해인 2023년 2월에는 기내에서 사용된 노후 구명조끼를 친환경 업사이클링 화장품 파우치로 제작·판매하고 수익금을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구명조끼를 소재로 제작된 파우치 속엔 친환경 뷰티브랜드 원오세븐의 여행용 클렌저, 미스트, 수분크림, 비누, 샴푸, 마스크팩 등 총 6종의 스킨케어 제품을 담았다.

업사이클링 파우치는 소재의 선정 뿐 아니라 상품의 제작까지도 친환경적으로 이뤄졌다. 모든 제작 공정은 100% 태양광 발전으로 운영되는 공장에서 이뤄졌으며, 폐 구명조끼의 세탁 또한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여 제품의 생산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을 최소화했다.

이어 8월에는 운항승무원과 객실승무원이 반납한 유니폼을 활용해 500개의 의약품 파우치를 제작하고, 직원들의 기부를 통해 마련한 필수 의약품을 담아 강서노인종합복지관과 인천용유초등학교에 기부했다.

의약품 파우치 제작에는 승무원들이 충분히 입고 반납한 헌 유니폼이 활용됐으며, 파우치에 들어간 구급 의약품 구매비용은 임직원들의 기부로 마련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폐기된 기내담요를 활용하여 안전방재모 500개를 제작, 강서소방서에 기부했다. 기부된 안전방재모는 강서소방서가 운영하는 소방안전교실의 지진체험교육에서 교보재로 사용되며 교육에 참여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제공됐다.

“업사이클링 가치 전파하겠다”

지난 11월 대한항공은 낡은 정비복을 활용해 정비사용 드라이버 파우치 2000개를 제작했다. 신규 유니폼을 배포하며 회수한 정비복들을 폐기 처분하지 않고 정비사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으로 재탄생시킨 것.

드라이버는 현장 업무를 하는 정비사들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필수 아이템이다. 드라이버 파우치는 드라이버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분실 위험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낡은 정비복으로 제작된 정비사용 드라이버 파우치. 사진=대한항공

파우치 디자인에는 실사용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드라이버 2개를 수납할 수 있으며, 파우치 겉면에는 바지 벨트에 장착할 수 있는 버클을 추가했다. 드라이버를 갖고 다니기 용이하게 함으로써 정비사들의 업무 효율을 높일 전망이다. 파우치 제작은 글로벌 업사이클링 전문 기업 ‘누깍’이 맡았다.

앞으로도 대한항공은 폐항공기 자재 및 다양한 노후제품들을 활용해 다양한 업사이클링 굿즈를 선보일 계획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자원을 재활용해 환경 보호에 기여하고, 항공기와의 추억을 가진 고객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업사이클링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항공업계에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전파하고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문화경제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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