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상됐던 대로 ‘앵커링’ 작전을 국제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의 앵커링(기준점 정하기) 전략은, 그가 젊은 시절 부동산 개발업자로 성공할 때부터 써온 협상 전략이다.
예컨대 두 사람이 피자 한 판을 나눠 먹는다고 할 때 대개는 사이좋게 반반씩 나눠 먹는다. 하지만 극히 이기적인 사람은 열 조각으로 나눠진 피자 중 “내가 아홉 쪽, 너는 한 쪽”이라는 말도 안 되는 분배 조건을 밀어붙인다.
이런 무지막지한 기준 정하기는 상대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피자 테이블을 엎어버리는 상대방이 있는가 하면, 또는 “네가 한 쪽, 내가 아홉 쪽”이라며 역제안으로 복수에 나서는 상대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상대가 아홉 쪽이란 높은 기준점을 찍어버리면, 그곳이 협상의 출발점이 되기 쉽다. 그래서 약한 상대일수록 피자의 절반(다섯 쪽)을 먹는 것이 원래 자신의 ‘공평한 몫’인데도 불구하고 서너 쪽에 머물면서 “그래도 한 쪽보다는 더 먹어서 다행이야”라며 안도한다. 이런게 바로 ‘앵커링 전략’의 효과다.
이런 무지막지한 앵커링 전략에 대해서는 여러 대처법이 나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로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라는 것이 있다. BATNA는 ‘거래 실패 시를 대비한 최선의 대안’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그냥 ‘대안’이라고 번역해도 될 것 같다.
대안이 있는 사람은 협상이 강하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정치학)은 저서 ‘대통령의 협상’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예를 들어, 한 야구 선수가 A팀으로 이적하려고 연봉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이 선수를 원하는 B팀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굳이 A팀과 협상할 필요는 없다. 이럴 때 B가 A와의 협상에서 바트나가 되는데 B〉A이므로 A와의 협상은 결렬될 것이다. 그런데 이 선수가 B팀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A와의 협상에서 B라는 바트나를 활용해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을 것이다.(70쪽)
그래서 조 교수는 “내가 좋은 바트나를 만들어냈거나 가지고 있다면 상대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내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썼다.
또한 조 교수는 다음 사례도 소개했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참여정부 때 여러 국가와의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FTA를 가장 체결하고 싶었던 나라는 EU(유럽)였기에 미국과 먼저 유리한 조건으로 FTA를 체결해 바트나를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우리와의 FTA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캐나다와 먼저 FTA를 추진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 측에서 우리와의 FTA에 관심을 보였고 결국 두 나라와 모두 FTA를 추진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EU와 FTA를 추진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수출시장의 다변화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목표와도 일치했다.(71쪽)
유럽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해서 유럽에만 구애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캐나다, 미국 등을 두들기는 ‘주변 때리기’를 통해 BATNA를 확보해야 일이 성사된다는 예다.
노무현 정권 때 가동됐던 이런 협상 전략이 그 이후의 정권, 즉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권의 지난 17년간은 어땠나?
지난 14년간은 물론 특히 윤 정권 아래 3년간은, 미국과 일본에 그냥 퍼주기로 일관했을 뿐, ‘제3의 협상 상대를 끌어들여 내 입장을 강화하기’ 전략은 완전히 잊혀진 듯 보인다.
친위 쿠데타를 최종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협상이고 뭐고 다 필요없이 그냥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형님들’에게만 잘 보이기면 된다는 퍼주기 아니었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 외교 이후 전통적으로 미국과 협상할 때 한국의 BATNA는 중국, 러시아 등의 북방 국가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미국이 대(對)중국 봉쇄에 나선 이후 한국은, 특히 윤 정권은 미국보다 더 빨리 뛰쳐나가면서 “중국은 이제 끝났다”고 외쳐대는 돌격대장 역할을 자임했다. 유효한 BATNA는 이제 완전히 거덜났다.
이런 상태를 방치한 정치권, 정권은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하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하다. 당장 목전의 정치적 이익, 정권 유지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든, 국민이든 당장 코앞의 이익에만 몰두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은, 아마 언론, 그중에서도 TV에 가장 크게 주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주요 언론들 역시 코앞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어 장기적 국가 목표따위는 잊은 지 오래인 것 같다.
세계의 주요 선진국 중 그래도 유럽이 가장 안정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운영하는 바탕에는 영국의 BBC나 독일의 ARD 같은 공영방송이 큰 역할을 하는 듯하다. 독일 TV는 토론, 대담 등을 하도 많이 해서 한국인은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재미 전무’라고 한다.
한국 TV는 ‘미칠 정도로’ 재미있다. 지구촌을 휩쓰는 K팝이 나오는 원동력이 바로 재미진 한국 TV다. 반면 독일 TV는 재미없어서 미칠 지경이지만 독일 경제-정치는 세계의 모범이다. 이제 그만 재미있어야 할 단계가 온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