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史①] 제일약품, ‘바쁘다바빠 제일파프’에서 ‘신약 37호’ 개발까지

전문제약사에서 신약개발 전문기업으로…3대에 걸친 도전 신화

정의식 기자 2025.04.02 14:30:57

지난 100여년간 대한민국은 수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 놀라운 혁신과 번영, 성공의 역사를 일궈왔다. 그 영광의 역사를 주도한 것은 단연 대한민국의 ‘기업’들이다. 이에 문화경제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내달리고 있는 장수기업들의 역사를 소개하는 [한국기업史]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첫번째로 소개할 기업은 제약 분야에서 3대에 걸친 도전을 이어온 제일약품이다. <편집자주>

 

서울 서초구 소재 제일약품 본사 사옥. 사진=제일약품
 

제일약품은 대한민국 제약 산업의 대표 기업 중 하나로, 1959년 설립 이후 한원석 창업주, 한승수 회장, 한상철 사장으로 이어지는 3대 경영자의 리더십 아래 성장해왔다. 이들은 각 시대의 도전과 기회를 활용해 전문의약품 중심의 제약사를 신약 개발과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혁신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한원석 창업주: 창업과 기틀 마련

제일약품의 역사는 고 한원석 명예회장의 창업으로부터 시작된다. 1959년 3월 7일 한원석 창업주는 ‘제일약품산업’을 설립하며 대한민국 제약 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당시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경제 재건이 한창이던 시기로, 의약품 수요는 증가했으나 국내 제조 기술은 미비했다. 한 창업주는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의약품 공급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소규모 공장을 설립해 기본적인 의약품 생산을 시작했다.


한원석 창업주의 경영 철학은 품질과 신뢰에 기반을 뒀다. 그는 초기 자본과 기술 부족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생산 체계를 구축하며 회사의 기반을 다졌다. 1971년 야마노우찌, 모치다, 다이치 등 일본 제약사들과 기술 제휴를 맺어 선진 제조 기술을 도입했는데, 이는 제일약품이 단순한 제조업체를 넘어 품질 높은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제일파프 신문광고. 사진=제일약품
 

1976년에는 사명을 ‘제일약품’으로 변경하고, 성인병 치료제 ‘포리감마론’을 출시하며 전문의약품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어 1980년 제일약품은 중앙개발연구소를 설립하며 독자적인 연구 역량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 창업주는 기술 도입뿐 아니라 인재 양성에도 힘써,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제일약품은 국내 제약 시장에서 안정적인 입지를 확보하며 이후의 성장 발판을 다졌다. -

한승수 회장: 성장과 전문화

1985년 한원석 창업주의 장남인 한승수 회장이 제일약품을 이끌며 회사를 국내 제약업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1980년대 초반 경영을 승계한 그는 부친의 품질 중시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연구개발(R&D)과 사업 확장에 주력해 회사의 체질을 강화했다.

 

1984년 제일약품은 ‘펭귄파스’로 유명한 진통소염제 ‘제일파프’를 출시해 국내 파스 시장에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1986년에는 KGMP(Korea Good Manufacturing Practice) 기준을 충족하는 공장을 준공하며 생산 품질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같은 해, 제일제당(현 HK이노엔)의 B형 간염 백신 ‘헤팍신B’ 유통 계약을 체결하며 백신 시장에도 진출했다. 1988년 주식을 한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자본을 확충하고, 기업 신뢰도를 높였다.

 

한승수 제일약품 회장. 사진=제일약품
 

1990년대 들어 한승수 회장은 글로벌 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그는 일본 제약사들과 합자회사 설립을 추진해 1990년 ‘한국제일제약(주)’, 1991년 ‘제일기린약품(주)’, 1994년 ‘한국야마노우찌제약(주)’를 설립하며 해외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1995년에는 제일약품 부설연구소를 설립해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했다.

1996년 제일약품은 경피 흡수형 관절염 치료제 ‘케펜텍’을 출시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케펜텍은 피부를 통해 약물을 전달하는 경피 제제 기술을 활용한 제품으로, 이후 제일파프와 함께 제일약품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으로 자리잡으며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같은 해, 제일약품은 제일메디텍(주)을 계열사로 설립하며 의료기기 및 관련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케펜텍 TV CF. 사진=제일약품
 

2000년대 초반까지 한승수 회장은 회사의 전문화를 위해 노력했다. 2000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착수하며 고령화 시대의 의료 수요에 대응했고, 다국적 제약사와의 협력을 강화했다. 한 회장의 리더십 아래 제일약품은 전문의약품 중심의 제약사로 성장했으며, 2005년 성석제 사장(전문 경영인)이 취임한 이후로도 한 회장은 전략적 방향을 계속 제시했으나 2011년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나면서 경영에서도 한발 물러났다.

성석제 사장은 한국화이자제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국적 제약사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화이자의 ‘리피토’(고지혈증 치료제), ‘리리카’(말초신경병증 치료제) 등 주요 제품을 국내에 유통했다. 이로 인해 제일약품은 2004년 2242억 원이던 매출을 2019년 6714억 원으로 약 3배 성장시키며 국내 제약업계 매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2016년 제일약품은 일반의약품 사업을 ‘제일헬스사이언스’로, 유통 사업을 ‘제일앤파트너스’로 분할하며 전문의약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지주회사 ‘제일파마홀딩스’와 사업회사 ‘제일약품’으로 인적 분할을 단행하며 경영 효율성을 높였다.

한상철 사장: 신약 개발과 글로벌 도약

한상철 사장은 고 한원석 창업주의 손자이자 한승수 현 회장의 장남으로, 2010년대 중반부터 경영에 깊이 관여하며, 2020년대 들어 신약 개발과 글로벌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운 혁신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한상철 사장은 연세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로체스터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화이자제약, 한국오츠카제약 등 다국적제약사를 거쳐 2006년 제일약품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마케팅 전무와 경영기획실 전무, 2015년 부사장에 올랐으며, 2017년부터는 제일약품의 지주회사 제일파마홀딩스의 대표도 맡고 있다. 2023년 제일약품 사장으로 임명됐다.

한상철 사장은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확대한 경영자다. 2018년 고혈압 치료제 ‘텔미듀오 플러스’, 2021년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리피토 플러스 정’ 등 개량 신약을 잇따라 출시하며 시장 경쟁력을 강화했다.

 

제일약품 한상철 사장. 사진=제일약품
 

특히 주목할 만한 성과는 신약 개발 분야에서 이뤄졌다. 2020년 한상철 사장은 신약 연구개발 전문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를 설립하며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도입했다.

그 결과, 2024년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스타프라잔(자큐보정)’이 식약처로부터 국산 신약 37호로 품목 허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자스타프라잔은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P-CAB) 계열의 3세대 치료제로, 빠른 약효와 지속성이 강점이어서 기존 프로톤펌프저해제(PPI)를 대체할 차세대 약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자스타프라잔은 제일약품 창사 이래 첫 신약이자 한상철 사장의 리더십이 결실을 맺은 상징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23년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자스타프라잔의 기술 수출로 약 17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국제적 신뢰를 얻었다.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도 원료의약품 수출로 6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2024년 12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으며, 항암제, 뇌졸중 치료제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국산 신약 37호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스타프라잔(자큐보정)’. 사진=제일약품
 

2025년 3월 30일 기준, 제일약품은 연 매출 7800억 원대의 대형 제약사로, 연구 인력은 박사급 14명, 석사급 71명을 포함한 총 109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중앙연구소와 제제기술연구소를 통해 신약 파이프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주력 제품으로 ‘로제듀오’, ‘넥실렌’, ‘란스톤 캡슐’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제품은 전문의약품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또, 신약 자스타프라잔을 중심으로 글로벌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으로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한상철 제일약품 사장이 이사회에서 공동 대표로 선임되면서, 제일약품은 전문경영인인 성석제 대표와 한상철 대표의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게 됐다. 업계는 ‘오너가 3세’로 신약 개발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한상철 사장이 전면에 나선 만큼 책임경영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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