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다음포털의 댓글이 살아났다. 이날 이전만 해도 다음포털 뉴스의 댓글은 로그인을 한 뒤에야 겨우 볼 수 있었지만, 이제 뉴스를 열면 바로 댓글이 보이게 바뀐 것이다. 무려 2년만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어느날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뉴스 댓글이 2년만에 부활한 것처럼 느껴진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최종 선고를 발표하기 하루 전에 다음포털이 이런 결정을 내렸으니, 두 조치 모두가 그간 막혔던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음포털이 뉴스에 대한 댓글을 ‘자동 노출’에서 ‘선택 노출’로 변경한 때, 그리고 그 이후에 한국에선 많은 ‘입틀막’이 있어 왔다. 입틀막은 대통령경호처 요원들에 의한 물리적 입틀막뿐 아니라 공무원에 대한 ‘심리적 입틀막’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공무원에 대한 ‘심리적 입틀막’의 전형적 모습은 이런 장면에서 관찰됐다. 대통령 관저 등에 대한 정부 예산의 무단 전용 혐의를 잡고 기자가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 질문 공세를 펼 때, 담당 공무원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기자의 눈만 바라보는 그런 장면들이다. “할 말은 무척 많지만 지금 말할 수 없는 내 입장을 기자 당신도 알지 않느냐”고 말하는 듯한 바로 그런 공무원의 표정이었다.
할 말은 많으나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이제 4월 4일 오전 11시를 기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입의 백화제방(百花齊放: 모든 꽃이 일제히 피어남)’이 펼쳐지겠지만, 반대로 기각되면 공무원들은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도 영원히 입을 닫아야 할 것 같다. 당장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1일 오전 헌재의 선고일 예고로 국민의 피로-긴장 정도가 확 낮아졌지만, 그 이전만 해도 ‘헌재가 아예 선고를 안 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정국이 극도로 긴장했었다. 헌재의 선고일 발표 이전, 즉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간 상태에서 1일 아침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의 발언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겁내지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김어준 앵커가 온갖 시나리오들, 즉 헌재가 최종 선고를 아예 하지 않을 경우에의 대비책을 언급하자 한 전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겁내지 말고, 논리대로 하면 된다. 너무 불안해하고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 계획은 다 서 있다. 치밀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극우 반공 세력들에게 나라를 팔 것인가. 국민을 다 죽일 것이냐.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대검 감찰부장 때 경험했다. 언론들은 침묵했고, 청와대-정치권도 침묵했다. 윤 당시 검찰총장 측은 환호했다. 힘은 국민들에게 있다”고.
상황이 엄혹해지면 대개의 사람들은 입이 험해진다. 말을 통해 불안을 가라앉히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불안한 상황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럴 때 해야 할 일로 한 전 부장은 ‘겁내지 말고 논리대로 하면 된다’는 자신의 소신을 말한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소신은, 그가 대검 감찰부장이 되면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나홀로 맞상대’ 했던 행적에서 증명된다. 그의 책 <검찰의 심장부에서>에 당시 흐름이 소상히 나와 있다.
당시 법무법인 율촌의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한동수는 책 머리말에서 자신이 감찰부장이 된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한 사람의 힘’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중략) 감찰부장 공모에 지원했다. (중략) 검찰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태풍의 눈이자 검찰의 심장부인 대검찰청에 혼자 뛰어들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개혁성향을 가진 것으로 믿고 그와 함께 검찰개혁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부임 첫날부터 윤 총장이 원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혼자 뛰어들었다’는 부분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할 일이 뭔가를 찾아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공적인 일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있었”던 그(가톨릭 신자)가 고해성사를 하자 신부님은 “기쁘게 사세요”라고 말해줬고 이 신부는 곧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2019년 7월 22일, 법률신문에 ‘대검 감찰부장 공모’ 광고가 실린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취임 3일 전이었다.
가족의 반대도 무릅쓰고 그가 지원서를 대검에 접수하자,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최강욱 전 의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최 비서관은 “나이가 맞지 않은데, 지원한 것 맞습니까? 경력에 어울리는 특허청장도 아니고 왜 이런 자리를 지원했습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의외의 지원이었다. 별난 ‘나홀로 소신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책 속 ‘나 혼자서’ 이야기들
대검에 들어가니 윤 당시 총장은 한 감찰부장을 부장회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역대 감찰부장은 대검 부장회의에 참석해왔는데 한 부장의 참석은 제한된 것이었다.
채널A와 한동훈 검사가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았던 이른바 ‘검언유착’에 대한 한 부장이 감찰을 시작하겠다고 하자, 윤 당시 검찰총장은 책상에 자신의 두 발을 올린 채로 한 부장을 맞았다. “조사해”라고 반말로 답한 윤 총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 부장 쪽으로 바짝 다가왔고, 한 부장은 당시 상황을 “윤 총장의 덩치는 무척 크다. 순간 나를 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협적이었다”고 책에 썼다.
총장의 이런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판사 사찰 문건을 작성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논리대로' 진행했다.
이른바 ‘판사 사찰 의혹 문건’에 대한 내용도 그의 책에 있다. 서울대 법대 후배로부터 우연히 ‘판사 사찰’ 문건을 받은 한 부장은 이를 8개월 넘게 캐비넷에 잘 간직하고 있다가, 2020년 11월 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 심사가 이뤄질 때 이 문건을 들고 법무부로 향한다. 이른바 추-윤 갈등 당시였다. 그는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불러달라”고 했고, 이 문건을 전달한다. 박 감찰담당관도 놀랄 정도의 행동이었다.
당시에 대해 한 전 부장은 “나는 나를 던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제보하지 않았다면 판사 사찰 문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감찰부장이었지만 감찰을 할 수 없는 여건이었으니 내부고발자로서 공익신고를 한 것이다”라고 썼다.
책 앞머리의 제목 ‘한 사람의 힘’
그의 책에는 ‘한 사람의 힘’이라는 제목이 책 앞부분에 나온다. 검찰 개혁을 하겠다고 감찰부장이 된 것, 윤 검찰총장에 홀로 맞선 것, 부장이면서도 대검 부장회의에 못 들어가고 따돌림을 받은 것, 판사 사찰 문건을 폭로한 것 등등이 모두 ‘한 사람의 힘’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는 1일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겁내지 말고 … 불안해 할 필요 없이 … 치밀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등의 말을 했다. 실력 있는 자로서 그는 “나를 던지기로 결심”했고 행동했다.
입틀막의 시대가 끝날지 아니면 영원히 계속될지의 갈림길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한 전 부장이 보여준 ‘한 사람의 힘’이 앞으로 여기저기서 계속 터져나올지 아닐지가 무지무지하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