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전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을 6월 17일(화)부터 8월 10일(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06호에서 개최한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두 기관의 소장품 62건을 중심으로 일본미술의 외적 아름다움과 내면의 정서를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본 중요문화재 7건을 포함해 40건을 출품한다. 이 가운데 38건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가을풀무늬 고소데(소맷부리가 짧은 기모노)>(일본 중요문화재)[도6]는 일본 장식 화풍의 대가로 알려진 에도 시대의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1658~1716)이 직접 가을풀무늬를 그려 넣은 옷으로, 도쿄국립박물관의 대표 전시품이다. 이밖에 다도 도구인 <‘시바노이오리’라 불린 물항아리>(일본 중요문화재)[도4], 일본의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를 지을 때 사용했던 <마키에 다듬이질무늬 벼루 상자>(일본 중요문화재)[도7], 전통 무대 예술인 노(能) 공연에 사용된 <노 가면 ‘샤쿠미’>(일본 중요문화재)[도9] 등 일본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주요 소장품을 폭넓게 선보인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하며 국민의 다양한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일본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아시아미술을 적극적으로 확충해 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22건 중 21건이 2000년대 이후에 입수한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일본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인 혼아미 고에쓰(本阿彌光悅, 1558~1637),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 생몰년 미상),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 나가사와 로세쓰(長澤蘆雪, 1754~1799) 등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에 개관한 아시아관 일본실에서 일본의 역사와 미술 전반을 상설전으로 소개하는 한편, 특별전과 테마전을 통해 불교미술이나 일본 전통 무대 예술인 노(能)와 같은 특정 장르나 주제의 일본미술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미술에 대한 이해와 감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미술의 안과 밖, 즉 내면에 깃든 정서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을 소개한다. 그간 일본의 미술사학자들이 쌓아 온 논의를 바탕으로, 일본미술이 지닌 네 가지 특징을 렌즈로 삼아 일본미술을 폭넓게 살펴본다.
1부. 첫 번째 시선 – 꾸밈의 열정
일본에서는 예부터 사물과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가자리(飾り)’ 즉 꾸밈의 미의식이 발달했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에 특히 꾸미는 문화가 발달하여, 귀족들은 여러 색으로 물들인 옷을 겹쳐 입고, 계절에 맞추어 각종 장식품과 가구, 병풍 등으로 공간을 호화롭게 장식하여 일상에 특별함을 더했다. 자신의 몸과 그 주변을 꾸미고자 하는 열정은 이후 여러 시대를 거치며 무사, 상인, 농민 등 다양한 계층으로 널리 퍼졌으며,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일본미술의 토대가 되었다.
1부는 일본미술을 다채롭게 채운 꾸밈의 열정에 주목한다. 선사시대의 토기 중 장식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조몬 토기부터, 17세기 이후 활발히 만들어진 채색 자기[도1], 금은 가루로 장식한 마키에(蒔繪) 칠기, 금박 위에 화려한 색으로 그림을 그린 병풍[도3], 그리고 장식적인 서체로 쓴 서예까지, 다양한 미술품 속에 담긴 꾸밈의 열정과 그 의미를 살펴본다.
2부. 두 번째 시선 – 절제의 추구
화려한 꾸밈의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일본미술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인 절제의 미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미술의 절제미에는 검소함이나 소박함과는 다른 섬세한 취향과 의도가 깃들어 있다.
2부에서는 갖추지 않은 듯 보이는 아름다움으로 다도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다도 도구와 함께 일본의 다도 문화를 소개한다. 찬란한 금빛 장식으로 성안을 가득 채운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의 무장들은 거칠고 투박한 찻잔을 아름답게 여기며 소중히 간직했다.
또한 2부에서는 간결한 멋의 칠기와 옷에서 일본미술 특유의 절제된 풍경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92~1573)부터 사찰 공방에서 제작한 붉은 칠기는 실용성과 견고함을 강조했으며,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3~1868)에는 사치 금지령으로 단정하고 간결한 옷차림을 세련된 멋으로 여겼다.
3부. 세 번째 시선 – 찰나의 감동
일본미술을 바라보는 세 번째 시선은 미술에 깃든 마음에 닿는다. 일본 문화에는 벚꽃이 피고 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듯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면서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애잔한 정서를 의미하는 ‘아와레(あはれ)’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아와레의 정서는 일본 고유의 시가인 와카(和歌)나 11세기 초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도5]와 같은 고전 문학에서 특히 돋보인다. 미술에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한 해가 저무는 가을에 잠시 꽃을 피우는 가을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아와레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하는 소재로 사랑을 받았다[도8].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8세기의 『만요슈(萬葉集)』에는 가을에 꽃을 피우는 일곱 가지 풀로 싸리, 억새, 칡, 패랭이꽃, 마타리, 등골나물, 도라지를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미술에도 이 일곱 가지 풀이 자주 등장한다. 전시에서는 가을풀이 묘사된 그림, 복식, 공예 등 미술품과 함께, 아와레를 표현한 문학 작품과 공연도 소개한다.
4부. 네 번째 시선 – 삶의 유희
비극적 서사를 가진 극인 노(能)의 막간에는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다룬 교겐(狂言)이라는 또 다른 극이 상연되었다. 이처럼 일본미술에는 ‘아와레’의 마음과 함께, 유쾌하고 명랑한 ‘아소비(遊び)’의 정서가 공존한다. 일본어로 ‘놀이’를 의미하는 아소비는 미술에서는 현실을 유쾌하게 바라보고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며 표현하는 태도로 확장된다.
4부에서는 미술 속 유희를 살펴보는 한편, 미술 그 자체를 유희로 여겨 놀이하듯 빚고 그린 미술품을 소개한다.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浮世繪)는 각종 풍속과 명소 풍경 등을 다룬 그림으로 주로 다색 목판화로 제작되었다. 여기에는 놀이와 여가를 즐기던 사람들의 일상이 생생히 담겨있으며, 우키요에를 사서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에도 시대 사람들이 즐긴 유희의 하나였다. 전통 수묵화의 틀에서 벗어나 먹의 번짐과 즉흥성을 활용해 자유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 화가 이토 자쿠추의 <수묵유도권>[도10]에서는 그림 그리는 것을 놀이처럼 여긴 화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전시 기간 중인 7월 16일(수) 오후 13시 30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전시 연계 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일본의 도자와 다도, 일본미술 속 ‘아와레(あはれ)’의 정서,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담긴 일본의 미의식, 일본 수묵화 속 유희 등을 주제로 관련 분야 전문가의 강연을 진행한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특별전은 일본미술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정서를 쉽게 이해하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은 앞으로도 양국의 문화 교류와 협력을 이끄는 중심 역할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두 기관은 문화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더욱 견고히 다져, 상호 이해와 존중의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