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인류세 시대 뮤지엄의 역할은?... 아르코미술관×창작산실 협력 전시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

조주현 큐레이터 기획, 참여작가 8명/팀이 제안하는 새로운 형태의 탈-인류세 뮤지엄

안용호 기자 2025.06.27 19:53:49

전경 1층. 사진=아르코미술관

아르코미술관은 지원 사업 연계 전시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부서 간의 협업 그리고 또 외부 기관과의 협업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창작산실이라는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시각 지원 사업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다. 이번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는 아르코미술관과 창작산실의 협력전시다.


전시는 특히 탈-인류세 시대 뮤지엄의 역할에 주목한다.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행성적 차원으로 사고하는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다. 탈-인류세, 즉 행성적 차원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보면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된 시간 즉 지질학적 시간에 위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인류세라고 할 때 이전 지질 세대와 구분해 인간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친 시대를 지칭한다. 탈-인류세는 결국 이 시대를 벗어나 지질학적인 연대를 표시하는 개념으로 최소 수백만 년에서 수천만 년에 이르는 그런 진폭을 가진 시간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명종과 존재들을 성찰하며, 새로운 서사 형식을 발명하는 감응의 공간인 ‘탈-인류세 뮤지엄’을 제안한다. 예술, 과학, 신화, 생태적 상상력을 교차하여 인류세 이후의 세계를 사유하고, 공존을 위한 뮤지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전경 2층. 사진=아르코미술관

뮤지엄은 근대 지식 생산과 시민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며 인종차별과 불평등의 체제를 지원해 왔다. 이번 전시는 르네상스 이후 서구 사회의 상징으로 건설된 뮤지엄이 어떻게 인종차별과 불평등의 체계적 형태를 지원해 왔는지 밝히는 동시에, 뮤지엄이 다른 종류의 세계 만들기에 앞장서야 함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는 2025 시각예술 창작산실 다년지원사업에 선정된 조주현 큐레이터가 기획했으며 총 8명의 국내외 작가/팀이 참여한다. 전시 참여작가 8명/팀은 김정모(한국), 안가영(한국), 안데스(한국), 안정주(한국), 장은만(대만), 전소정(한국), 천경우(한국), 하이조로익/디자이어즈(인도)이다.

조주현 큐레이터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핵심 감각으로 찬미와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찬미라는 것은 남아 있음에 대한 윤리적 태도로, 세계의 지속성과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실천적 감응이다. 애도는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려는 감각적 시도이며, 존재의 부재를 다시 감각화하려는 윤리적 선택이다. 하나는 소멸하는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남은 것을 감각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탈인류세 뮤지엄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동시에, 인간 아닌 존재들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요청한다”라고 설명했다.

김정모, 〈당신의 발 밑에서_설치 전경_디테일〉, 캔버스 위에 발자국, 가변크기, 2021. 사진=아르코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김정모 작가의 ‘당신의 발 밑에서’를 만난다. 작가는 관객들이 전시장에 들어서며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깔린 흰 캔버스를 밝도록 유도했다. 하얀 바닥 위에 찍힌 발자국은 캔버스 위로 특정한 형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서울시 보호 야생생물로 지정된 조류, 포유류, 곤충류, 어류, 식물, 양서, 파충류 등 55종의 동식물이다. 작가는 개발로 인해 본래의 삶의 터전을 잃고 사라진 존재에 대해 탐구하며 비인간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서 맺게 되는 관계의 다층성을 감각하게 한다.

하이로조익/ 디자이어즈의 작품은 시와 음악, 사운드 설치를 결합해 새의 시선을 통해 생태적 기억과 다종적 존재론을 다룬다. 네 대의 스피커에서 각각의 악기 소리가 흘러나오며, 새의 시선을 빌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한다.

천경우, 〈버드 리스너〉, 퍼포먼스와 설치, 2021. 사진=아르코미술관
천경우, 나무들을 위한 노래 #1, #2, 2채널 영상, 사운드, 2023. 사진=아르코미술관

천경우 작가는 ‘경청’을 중심 주제로 새소리 듣기, 노래하기 등 참여형 설치와 퍼포먼스를 통해 비인간 존재와의 소통과 생태적 감각을 탐색한다. ‘나무들을 위한 노래’는 두 명의 어린이가 식물을 향해 구전되는 노래를 인도 소수 언어로 불러주는 장면으로 구성된 2채널 영상이다. 이 장면은 말이 아닌 방식의 소통 가능성을 보여준다.

안가영, 〈KIN거운 생활 쉘터에서〉, 시뮬레이션 게임, 인터렉티브, 싱글 채널 프로젝션 스크린, PC, 마우스, 플레이타임 12분-480분, 2021-2022. 사진=아르코미술관

게임처럼 보이는 안가영 작가의 ‘KIN거운 생활:쉘터에서’는 일반적인 게임 구조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기 쉬운 존재들에게 주목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게임의 정복자가 아닌 ‘쉘터의 손님’으로서, 타자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리듬에 맞춰 관계 맺는 방식을 제안한다.

_안데스, 〈지질학적 베이커리〉, 복합설치, 2019-2025. 사진=아르코미술관

‘지질학적 베이커리’는 안데스의 작품으로 지구의 형성과 빵 굽기 사이의 연결 고리를 상상하는 독창적이고 유머러스한 예술 프로젝트이다. 빵을 굽는 원리를 알면 지구의 지층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엉뚱하면서도 날카로운 가설을 던진다. 작가는 베이킹을 요리 기술이 아닌 물, 불, 흙, 공기의 작용이 어우러지는 지구 형성 과정으로 간주한다.

전소정, 안정주, 야고(스틸 이미지), 단채널 4K 영상,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2022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아르코미술관

안정주 작가와 전소정 작가의 공동 작업인 ‘야고’는 제주도 가파도에서 경험한 응축된 에너지를 소리로 표현한 영상 작품이다. 작가는 희귀종이 된 구상나무를 보여주면서 미생물, 식물, 바람 과의 교감과 해양생태계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전소정의 작품은 AR과 VR을 활용해 이주 식물의 생태와 데이터를 시각화하며, 식민성과 생태를 둘러싼 속도, 이동성, 경계의 감각을 실험적인 디지털 조각으로 제시한다.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팬데믹 이후 아르코미술관이 꾸준히 추진해온 기후위기 관련 담론과 예술 실천을, 인류세 연구에 매진해온 외부 연구자 및 기획자들과 함께 더욱 심화·확장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소재한 아르코미술관에서 6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열리며, 화~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고 입장료는 무료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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