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퍼플이 이달 12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원성원 개인전 ‘손이 만든 길’을 연다.
원성원은 자신의 주변에서 보고, 듣고, 겪는 이야기와 현실의 이미지를 토대로,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사진은 한순간을 담아낸 기록이 아니라, 계절과 날씨, 서로 다른 장소와 풍경을 오가며 얻은 수천 장의 사진을 정교하게 결합해 한 화면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주제에 맞는 대상과 장소를 탐색하고 자료를 수집한 뒤, 작가는 사진 속 요소를 가위질하듯 하나씩 세밀하게 잘라내고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손의 노동을 통해 화면을 완성한다. 마우스로 쉽게 이미지를 추출하고 붙여 넣을 수 있는 편집 기능을 배제한 채 그가 집요하게 만들어낸 장면은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낯섦과 긴장감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육체적 노동이기도 했는데, 작가는 처음엔 사람들이 이에 주목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자신의 머릿속의 상상력이 손의 노동보다 더 가치 있게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복적이고 집약적인 노동 행위가 단순한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축적하고 기억을 쌓으며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 이 과정들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단단하게 자라났고, 작가의 마음은 들뜬 곳에서 차분히 내려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고백이다.
이번 전시에선 이처럼 원성원이 지나온 작업의 궤적, 그가 ‘발’로 뛰고 ‘손’을 통해 만든 대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불안을 응축해 만든 작품 ‘일곱 살-오줌싸개의 빨래’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면 이미 집을 비운 엄마를 하루 종일 초조하게 기다리던 경험이 훗날 자신이 겪어온 불안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작업을 통해 그 기억을 되짚으며 자신의 상처와 마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축축하게 젖은 이불에서 일어나 엄마를 찾아 나서고, 길을 잃지 않으려 손에 실을 매단 채 헤매는 아이의 모습은 이러한 기억을 담은 상징적 장면으로 제시된다. 이 작업을 계기로 작가는 점차 작가 주변의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내면과 환경을 탐구하는 서사로 확장된다.
확장된 세계에서는 중심을 차지하는 인물도, 그림자처럼 그 주변을 배회하는 이도, 겉으로는 완전해 보이지만 내면의 결핍을 감춘 인물도 있다. 한때 큰 꿈을 품었던 평범한 가장, 주어진 몫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군상이 현실에서 길어 올린 이미지의 조각들로 구성돼 화면에 자리한다.
‘나의 시간’을 목격하는 장
작가는 평소 인간관계 속에서 느낀 사람들의 내면의 모습과 본능적인 성향을 동물과 자연의 형상에 빗대어 보여주며, 나무와 얼음, 동물과 같은 반복적인 모티프를 통해 성장과 불안, 과시와 고독, 균열과 균형과 같은 근원적인 정서를 호출한다.
특히 2017년 작 ‘타인의 풍경’ 시리즈는 이러한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언론인, 약사, IT 개발자, 교수, 금융인 등 주변의 특정 직업군을 다루며, 그들을 동물 형상에 빗대어 표현하면서도 바다와 빙산, 풀숲, 금빛 돌산과 같은 풍경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어 장면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작가는 직접 체험하지 못한 타인의 삶을 존중과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직업 세계가 지닌 구조와 현실, 그 속에 드러나는 인간적 조건을 폭넓게 탐색한다. 이때 수천 개의 세부적인 이미지들은 이음새 없이 매끄럽게 이어져 화면은 더욱 밀도 있게 구성되고, 관객은 실재하지 않는 풍경 속에서도 강한 사실감을 경험한다.
동시에 이번 전시는 변화의 지점에 선 작가의 태도도 살펴볼 수 있다. ‘자라는 돌’은 쌓여가는 돌, 이끼가 낀 부드러운 돌, 몸집이 커지는 돌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돌이라는 동일한 사물에 시간과 상상을 함께 겹쳐 놓음으로써, 자신의 성장을 다각도로 사유하려는 원성원의 시선을 보여준다.
‘기다리는 가지’는 들떠 있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낮은 곳을 향해 뻗어 나가는 가지의 이미지로, 작업의 출발점과 그 첫 마음을 되새기려는 의지를 담는다.
두 작업은 모두 머물기보다 성장과 회귀를 함께 지향하는 작가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처럼 원성원의 작업은 ‘나’와 ‘나’의 시선을 통해 본 타인, 그리고 그들이 이루어진 세계로 확장되며, 그 과정에서 파생된 발상과 호기심은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흐름은 종이 위에 색연필 등을 통해 표현된 드로잉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는 사진과는 대비되는 지점에서 또 하나의 표현적인 면모와 솔직함을 보여준다.
작가가 작품 곳곳에 심어둔 은유적인 상징들을 통해 우리는 그의 내면이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또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작가가 발견한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 기민하게 포착된 순간들, 마음속 깊이 눌러 담아 온 감정들이 쌓여 만들어낸 장면 속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의 ‘원성원’을 가장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들의 집합이 아닌, 손이 만들어낸 ‘나의 시간’을 목격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며 “그것은 나의 길이자, 단단함과 기다림이라는 근원적 경험을 모두에게 되묻는 하나의 풍경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작가 원성원(b.1972)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와 쾰른 미디어 예술대학에서 수학했다. 2025년 동강 사진상 수상전(영월, 동강사진미술관), 2023년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 시네마(제주, 한국), 2022년 뮤지엄 한미 삼청별관(서울, 한국) 2021년, 2017년 아라리오 갤러리(서울, 한국), 2014년 포드비엘스키 컨템포러리(베를린, 독일) 등 국내 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25년 임진각 평화누리, 통일촌 수매창고(파주, 한국), 서울 시립 사진미술관(서울, 한국), 2024년 포항시립미술관(포항, 한국),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청주, 한국), 2022년 수원시립미술관(수원, 한국), 2021년 경남도립미술관(창원, 한국), 2020년 광주 시립미술관(광주,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서울, 한국), 2019년 뮤지엄 산(원주, 한국), 2018년 자케타 프로젝트 룸(바르샤바, 폴란드), 2015년 CAFA 미술관(북경, 중국), 2014년 모리미술관(도쿄, 일본), 2012년 상하이 현대미술관(상하이, 중국) 등 다수의 국내 외 기관 및 미술관에서 그룹전에 참여했다.
원성원의 작품은 오스트 하우스 미술관(독일), 산타바바라 미술관(미국), 쿤스트하우스 렘페르츠(독일), 모리 미술관(일본), 국립현대미술관(한국), 한미사진미술관(한국), 서울시립미술관(한국), 경기도 미술관(한국)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돼 있다. 현재 갤러리퍼플 스튜디오에서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