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국보다는 일본이 낫다? …어설픈 ‘한일연대론’을 경계한다

정의식 기자 2025.11.10 15:58:36

이재명 대통령이 10월 3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이 너무 위협적이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과 연대해서 중국에 맞서야 한다. 일본과는 비록 과거 역사로 인한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공산당과 독재자가 통치하고, 인권이 무시되는 중국보다는 낫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또래 친구의 주장이라며 전한 이야기다. 이른바 ‘한일연대론’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보수성향의 2030세대들이 머무는 정치 커뮤니티에서 많이 보이고, 자칭 ‘보수 정치인’들이 설파해온 주장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생각이 10대 청소년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건 조금 놀라웠다.

중국의 팽창을 막고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혈맹인 미국은 물론 일본과도 연대해 ‘미-일-한 동맹’을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는 이 구상은 과연 실현 가능하고, 한국에도 이익이 될까?

이 논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애초부터 출발점이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아닌 ‘공포’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공포에 기반한 판단은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 과거 조선도 비슷한 공포에 맞닥뜨렸고, ‘줄서기 외교’라는 잘못된 선택은 결국 1910년 한일병합으로 귀결됐다.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현재 한국과 일본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협력의 신뢰도는 한없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안보 분야가 심각하다. 한국이 항상 ‘하위 파트너’임을 인정하고, 굴종적으로 접근해야만 유지가 가능한 구조다.

최근의 블랙이글스 중간 급유 거부 사태에서 이런 구조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에어쇼 참가 때마다 대만 가오슝(高雄) 국제공항에서 중간 급유를 받았던 블랙이글스가 이번에는 특별히 일본 오키나와에 위치한 나하(那覇) 기지에 중간 기착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막판에 일본 측이 블랙이글스의 독도 부근 동해상 훈련을 이유로 나하 기지의 기착 계획을 중단한다고 통보해오면서 블랙이글스의 두바이 에어쇼 참가가 무산된 사건이다.

심지어 이같은 일본의 결정은 지난달 30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에 이뤄졌다. 회담에서 두 정상은 우호적으로 대담하며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기원했지만, 그 이면에선 이런 마찰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이번 나하 급유 방안이 한국과 일본의 안보 협력 발전을 상징하는 뜻깊은 이벤트 성격으로 양국 국방부에 의해 추진됐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례를 분석하면, 일본은 여전히 한국을 ‘동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고 있으며, 조금의 체면조차 세워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인 데도 “역사 문제는 덮어두고, 굴종적 협력 관계를 이어가자”는 주장은 한국인 다수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일본의 외교는 ‘공포를 활용하는 기술’에 능하다. 안보 불안을 이유로 일본의 전략에 깊이 발을 들이는 순간, 우리는 외교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남하에 대한 두려움으로 ‘친일’을 선택했던 조선 꼴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택해야 할 외교 전략은 무엇일까? 늘어난 국력에 걸맞는 자신감을 갖고, 특정 진영의 하위 파트너가 아닌 ‘중재자’ 역할을 맡는 것이다.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다자주의적 외교는 필수다. ASEAN+3, APEC, RCEP 같은 지역 협력체를 활용하고, 유럽연합(EU), 인도, 호주 등 중견국들과의 전략적 협력 강화를 통해 미·중 일방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외교는 언제나 현실과 이상 사이의 줄타기다. 일본과의 협력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두려움에 기반한 것이어선 안 된다. 일부 2030세대가 과거 역사보다 미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일면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론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냉철한 역사 인식과 장기적 비전이 함께해야만 구한말 조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문화경제 정의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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