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브랜드를 만든다①] 젠틀몬스터, 제품 너머의 ‘기억’을 판매하다

심리 기반 공간 실험이 만든 4조원 기업 가치

김예은 기자 2025.12.04 14:35:46

누데이크 티 하우스 (NUDAKE TEA HOUSE) 내부 전경. 사진=김예은 기자

2011년 김한국 대표가 설립한 프리미엄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독창적 디자인과 파격적 공간 활용 전략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브랜드 위상을 구축했다. 이 브랜드는 안경 매장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예술적 실험의 장으로 확장하면서 오프라인 경험을 소비자의 자전적 기억으로 치환하는 방식을 통해 독자적인 브랜드 인식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성장성을 기반으로 젠틀몬스터를 보유한 아이아이컴바인드는 약 4조원 규모에 육박하는 기업 가치를 가진 회사로 성장했다. 올해 6월, 구글은 아이아이컴바인드에 1450억원을 투자하며 기업 가치를 약 3조 6000억 원으로 평가한 바 있다.


젠틀몬스터가 안경 매장을 ‘체험형 갤러리’로 재해석하며 수조 원대 브랜드로 성장한 배경에는, 제품을 압도하는 공간을 설계한 독특한 전략이 자리한다. 이 브랜드는 안경을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기억할 만한 경험’으로 전환하며, 소비자가 매장을 일종의 전시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김한국 아이아이컴바인드 대표는 “소비자는 매장 공간을 보고 브랜드의 크기를 판단한다”고 말해왔고, 이러한 신념은 젠틀몬스터의 핵심 전략 전체를 관통한다.


이 전략의 전환점은 2014년 홍대 쇼룸에서 시작된 ‘퀀텀 프로젝트’였다. 매장 테마를 25일마다 완전히 바꾸는 이 실험은 주방, 목욕탕, 세탁소 등 일상적이지만 예상 밖인 실험적 콘셉트의 공간을 36가지나 선보이며 소비자에게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 방식은 매장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기간 한정 전시로 인식하게 했고, 방문 경험이 소비자의 개인적 에피소드, 즉 ‘자전적 기억’으로 저장되도록 만들었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일상 경험과 연결된 브랜드에 더 강한 애착을 느끼는 현상을 ‘자전적 브랜드 이미지’라 부른다. 강렬한 공간에서 느낀 감정은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실제보다 더 좋은 기억을 만들어내는 ‘허위 기억’까지 유도해 브랜드 호감도를 높인다.

 

하우스노웨어 서울 매장에는 안경 제품과 대형 전시물이 함께 전시돼있어 소비자들이 이를 배경삼아 자신의 모습을 남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사진=김예은 기자

젠틀몬스터는 매장 곳곳에 설치한 특유의 조형물과 몰입형 구조를 통해 이 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했다. 소비자가 SNS에 남긴 사진과 영상은 단순 기록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기능하며, 브랜드 경험은 개인의 자아 이미지와 결합됐다.


이후 젠틀몬스터는 공간을 더욱 확장해 브랜드 세계관을 넓혀 나갔다. 스킨케어 브랜드 ‘탬버린즈’,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를 출범시키고 세 브랜드를 한 공간(하우스 도산·하우스 노웨어 서울)에 넣어 ‘시각적 은유’ 전략을 강화한 것이다.


시각적 은유란, 소비자가 눈으로 본 이미지를 통해 브랜드의 감정과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브랜드로의 확장은 젠틀몬스터가 경계를 넘나드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구축했고, 누데이크의 조형적 디저트, 탬버린즈의 실험적 오브제, 그리고 하우스 도산·하우스 노웨어 서울 내부의 육족 로봇 등은 모두 젠틀몬스터의 ‘미래·기술·예술’이라는 상징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장치로 작동했다. 누데이크의 조형적 디저트는 실험적 디자인 철학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하우스 도산·하우스 노웨어 서울에 설치된 미래형 로봇들은 브랜드가 기술과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상징으로 기능하며 제품에 혁신성과 현대성을 덧입히는 작용을 한 것이다.


소비자는 이 공간에서 향을 맡고, 디저트를 먹고, 안경을 착용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감각적이고 문화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 역시 브랜드가 소비자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하우스노웨어 서울 매장에 전시된 로봇 전시물과 제품. 제품을 압도하는 미래지향적 로봇 전시물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그 우측에 회사의 '탬버린즈' 브랜드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예은 기자

젠틀몬스터의 제품 배치 구도에 담긴 시각 전략은 일반적인 리테일 방식과도 정반대다. 보통 매장은 제품을 가장 잘 보이게 중심에 두지만, 젠틀몬스터는 거대한 설치물 속에 제품을 배치해 ‘비중심적 구도’를 만든다. 이러한 젠틀몬스터의 공간은 대비·구도·주의 분산이라는 프레임워크를 기존 시각 전략과는 반대로 적용하며 소비자의 시선을 브랜드 스토리로 이동시켰다.


젠틀몬스터의 매장은 일반적인 백화점 명품존과 달리, 뚜렷하게 대비되는 설치물을 배경으로 두어 제품에 대한 빠른 인지를 희생하는 대신 브랜드 고유의 미학을 강조했다. 안경을 설치물 일부처럼 배치하는 비중심적 구도는 소비자가 제품 기능보다 맥락적 의미를 우선적으로 탐색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설치물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은 제품 효용보다 브랜드 권위와 패션성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하우스노웨어 서울 매장에 대형 전시물과 제품이 하나의 구조화된 작품처럼 전시돼 있다. 사진=김예은 기자

 

이를 기반으로 독자적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젠틀몬스터는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덕분에 브랜드 이미지의 확장성이 더욱 강화됐다. 펜디, 몽클레어, 구글, 화웨이 같은 명품·기술 브랜드와의 협업은 젠틀몬스터 아이웨어가 고급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인식을 강화했고, 소비자는 이 파트너십의 상징적 의미를 젠틀몬스터에 그대로 투영했다.

 

이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ZMET(시각 은유를 통한 잠재 심리 분석)’ 기법이 설명하는 ‘사람은 이미지를 통해 무의식적 감정을 브랜드 의미로 연결한다.’는 것과 유사한 효과다. 소비자는 협업 브랜드가 가진 고유 이미지를 은유적 가치로 전이해 젠틀몬스터 제품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의 의미 체계는 여러 영역으로 확장된다. 젠틀몬스터는 이러한 심리적 작용을 이용해 안경이라는 기능적 제품군을 넘어 기술과 라이프스타일을 넘나드는 브랜드 확장 기반을 구축했다.


브랜드의 감각적 공간을 식음료 서비스(hospitality) 분야로 확장한 ‘누데이크 티하우스’ 역시 높은 지불의사를 이끌어내며 고급화 전략을 현실화했다. 다만 실용성이 높은 제품들에도 독특한 디자인이 선결 조건이 되다 보니, 다소 무겁고 티를 따를 때마다 잔여 액체가 흘러나오는 티팟 등은 제품의 완결성과 사용성에서 불편함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브랜드 확장 과정에서 고유의 브랜드가 갖춘 감각적 미학과 실용성의 균형적 조화의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결과적으로 젠틀몬스터는 효율성을 우선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브랜드 경험을 중점에 둔 전략을 구축했다. 회사는 다양한 국가와 공항 면세점 등에도 혁신적 시도를 담은 공간을 구축해 안경에 디자인적 은유와 비일상적 경험을 결합시켜 제품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했으며, 이는 브랜드가 초기 매출 규모를 넘어서 글로벌 팬덤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수동 하우스노웨어 서울이 위치한 성수동의 젠틀몬스터 사옥 외부 전경. 사진=김예은 기자

 

이를 통해 젠틀몬스터는 30여 개국에서 4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러한 확장은 실적에도 반영됐다. 운영사 아이아이컴바인드는 2023년에 처음으로 영업이익 1000억원을 돌파했고 2024년에는 2338억원까지 급증했다. 매출은 7891억원으로 전년 대비 29.7% 성장했으며, 영업이익은 54.7% 증가해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해외 매출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았고, 외국인 관광객의 구매까지 포함하면 매출의 60~70%가 해외 소비와 연결되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젠틀몬스터의 사례는 신생 브랜드에게 강력한 벤치마킹 모델이지만, 단순 모방은 위험하다. 공간이 브랜드 철학과 연결되지 않으면 ‘예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전시’로 소비되고, 소비자의 기억은 브랜드가 아닌 일회성 이벤트에 머무를 수 있다. 또한 무분별한 협업은 브랜드 정체성을 흐려 핵심 메시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젠틀몬스터는 이러한 위험요인을 넘어 오프라인 경험이 약화되는 시대에도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감각적 자산’을 구축해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평가된다. 친환경·지속가능성·실용성 강화 트렌드와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이 브랜드가 지금의 공간 실험과 심리 기반 전략을 얼마나 정교하게 지속해나가느냐가 향후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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